십오 년 전의 마지막 줄

그때의 나에게 (2)

블로그를 정리하다가 또 하나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것은 더 오래된 것이었다.

사무실을 열기도 한참 전,

어떤 전환점 앞에 서 있던 시기에 쓴 글이다.

당시의 사정은 적지 않겠지만,

돌이켜 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래 꿈꿔오던 자리에 마침내 서 있다고.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걸어가 보겠다고.

틀린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중간에 방법을 바꿔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마저 과정이라고.


마지막 줄에는


여기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

이라고 써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걸 좋아했다.


국어 시간이 제일 좋았고,

독후감 숙제가 숙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방학이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뭔가를 읽고 거기에 대해 끄적거리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글로 먹고 사는 직업을 택했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 수 있으니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매일 쓴다. 그 점에서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내가 쓰고 싶은 종류의 글은 아니다.

업무용 문서에는 기한이 있고 목적이 있고 상대방이 있다.

정해진 형식 안에서 정확한 문장을 만드는 일이다.

거기에 나의 생각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아침에 모니터를 켤 때 느끼는 감정은

설렘이 아니라 의무감에 가깝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어느 순간 글쓰기가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지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를 위한 글을 쓰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루가 끝나면 어깨가 뻣뻣했고 머리는 비어 있었다.

남은 에너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생각 없이 뭔가를 보다 잠드는 것 정도였다.

내일이면 다시 같은 하루가 시작될 테니까.

그렇게 십 년이 넘게 지났다.




그날은 우연히 오후가 통째로 비었다.


예정된 일이 빠져서 할 일 없이 블로그에 들어갔고,

오래된 페이지들을 넘기다 저 글을 만났다.

날짜를 보고 계산을 했다. 십오 년 전이었다.


스크롤을 올려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문장이 짧고 힘이 들어가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쓰지 않을 표현이 여러 개 보였다.

누가 봐도 풋풋한 글이었다.

약간의 과장도 섞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문장들 앞에서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 사람은 정말로 저렇게 느꼈다.

불안하면서도 걸어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결심을 어딘가에 적어두었다.


당시의 나는 이것을 누가 읽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 순간의 마음을 남겨둔 것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남았기 때문에

십오 년 후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글을 다시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때였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었다.

업무가 아닌 글을 조금씩 써보자는 정도.

대단한 것을 쓰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다만 지금의 마음을 어딘가에 남겨두고 싶었다.

십오 년 전의 내가 했던 것처럼.


쓰는 순간에는 그저 현재일 뿐인 문장이 시간이 지나면 다른 것이 된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기록이라 하기엔 거창하고,

일기라 하기엔 남에게 보여주는 곳에 올렸으니.

아무튼 그것은 남았고, 가장 뜻밖의 순간에 도착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쓸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온수가 나오지 않던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