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숙 씨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남편보다 두 시간 일찍이었다.
시어머니보다 세 시간, 시아버지보다 네 시간 빨랐다.
이 사실을 명숙 씨는 십육 년 동안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면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지 않았다.
아무도.
명숙 씨의 하루는 밥 짓는 일로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위가 좋지 않아 잡곡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결혼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때부터 명숙 씨는 두 개의 솥을 올렸다.
하나는 시부모를 위한 흰쌀밥,
하나는 남편과 자신을 위한 잡곡밥.
이 일을 십육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간이 세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짜다고 했다.
같은 국이었다.
명숙 씨는 각자의 그릇에 담기 전에 국자를 바꿨다.
시아버지 쪽에는 간을 더 하고,
시어머니 쪽에는 물을 조금 더 넣었다.
이것도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고안한 방법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눈치채지 못했으니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명숙 씨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알아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명숙 씨가 처음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결혼 오 년 차 무렵이었다.
시어머니의 생신상을 차리던 날이었다.
명숙 씨는 사흘 전부터 준비했다.
시장을 세 번 봤고, 갈비찜을 두 번 다시 만들었다.
처음 것은 고기가 질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의 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생신상이 나왔다.
시어머니는 젓가락으로 갈비를 한 점 집더니 시누이를 보며 말했다.
"야 이거 원래 이 집 스타일이 이래."
시누이는 웃었다.
명숙 씨는 부엌으로 돌아가 설거지를 했다.
수돗물 소리가 꽤 커서 다행이었다.
그날 밤 명숙 씨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냥 더 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잘했다.
달라지지 않았다.
남편은 명숙 씨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명숙 씨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설령 알았다 해도,
남편은 명숙 씨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달라고 한 적도 없었고,
두 개의 솥을 올려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명숙 씨 혼자서 결정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명숙 씨가 깨달은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늦게 들어와 밥을 차려달라고 했을 때,
명숙 씨는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갔다.
그러다 어떤 지점에서 멈췄다.
자신이 지금 화가 났는지, 안 났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웠다.
너무 오래 참아온 탓에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밥을 차렸다. 남편은 먹었다.
명숙 씨는 앉지 않았다.
이듬해 봄,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명숙 씨가 알게 됐다.
그날도 명숙 씨는 두 개의 솥을 올렸다고 했다.
습관이란 그런 것이다.
분노가 목까지 차 있어도 몸은 먼저 일어난다.
그 후 명숙 씨의 분노가 터진 것은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시누이가 명절에 늦게 왔다는 것,
남편이 리모컨을 제자리에 놓지 않았다는 것.
그런 것들이 계기였다.
주변 사람들은 명숙 씨가 갑자기 이상해졌다고 했다.
명숙 씨 자신도 설명하지 못했다.
이혼 조정기일을 앞두고 명숙 씨의 진술서를 읽었다.
그것은 십육 년 치 새벽의 기록이었다.
두 개의 솥, 두 개의 간, 두 번 만든 갈비찜.
명숙 씨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날짜까지는 아니어도 순서와 맥락은 정확했다.
상대방 측 변호사가 물었다.
그 일들이 누군가의 요청으로 한 것이냐고.
명숙 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니라고.
그럼 왜 했느냐고 물었다.
명숙 씨는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명숙 씨는 이혼했다.
조정이 성립하던 날, 조정조서에 서명을 한 후 명숙 씨가 말했다.
이제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되겠다고.
웃지 않고 한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십육 년 동안 새벽 네 시에 혼자 일어나던 명숙 씨를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두 개의 솥을 올리던 명숙 씨를.
그 수고가 의미 있으려면,
최소한 상대방도 알고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