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오늘은 아름다웠다

U2 - Beautiful Day

U2 - Beautiful Day

오늘 하루가 잘 흘러가지 않았다.


상담이 예상보다 길어졌고, 서류가 밀렸고, 점심을 걸렀다.

오후엔 전화 두 통을 받았는데 둘 다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퇴근길 도로는 막혔고, 집에 돌아왔을 때 딱히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날이 있다.

특별히 재난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어딘가 빠져나오기 어려운 날.

아무도 잡아두지 않았는데 꼼짝도 못 한 채 하루가 지나버린 느낌.


씻고 나서 유튜브 뮤직을 열었다. 리스트가 열리고 플레이 되었다.

오래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U2의 것이었다.


처음엔 그냥 기분 좋은 팝송이라고만 생각했다.

제목도 제목이니까.

Beautiful Day. 아름다운 날이라니.

밝고 경쾌하고, 뭔가 잘 되는 날의 노래.


그런데 가사를 좀 더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화자는 막혀 있다.

도시엔 자기 자리가 없고, 도로도 막혀 있고, 아무것도 나아가지 않는다.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줄 누군가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것도 흐릿하다.

목적지 없이 길 위에 있다. 진흙탕 속에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한다. 오늘은 아름다운 날이라고.


처음엔 억지로 들렸다. 위장된 긍정주의 같아서.


근데 아니었다.


노래 후반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없는 것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아니야.

(What you don't have, you don't need it now)


처음 이 가사를 들었을 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오늘 밤엔 좀 다르게 들렸다.

없다는 것이 결핍이 아닐 수 있다는 말.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들은,

어쩌면 지금 이 자리에 없어도 되는 것들이라는 말.


그 노래에서 아름답다는 말은 상황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데도,

지금 이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홍수가 다 지나고 나서야 색이 돌아온다는 것. 그걸 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노래의 아름다운 날은 다음 단계가 아니다.

이 망가진 자리, 이 막힌 오후, 이 고요한 귀가길 자체가

아름다운 날이라는 거다.


그 생각이 들자 뭔가 좀 달라졌다.


꼬인 하루가 달라진 게 아니라,

그걸 보는 시선의 각도가 조금 달라진 것이다.

나쁜 것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나쁜 것들 사이에서 오늘 하루가

그래도 지나갔다는 사실을 잠깐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이걸 희망이라고 부르기엔 좀 이르다.

뭔가 나아질 거라는 예감도 없고,

그러려는 의지도 지금 당장은 강하지 않다.

그냥 오늘 하루가, 이렇게 끝났다.

그게 전부다.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몸을 조금 가볍게 했다.

무언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내일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오늘이 오늘로 끝났다는 것을,

그 사실 하나를 조용히 받아들인 것뿐인데.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감각이 내일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아마 또 비슷하게 시작하겠지.

막히고, 늦어지고, 예상이 빗나가고.


하지만...


https://youtu.be/co6WMzDOh1o?si=byw_6iOt3oRMiD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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