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이 된 말들에 대하여
https://youtu.be/ZsmKNTdf4ng?si=4_MZ0r0QFVCkEkBN
오래된 OST를 듣다가 멈췄다.
역습의 샤아(逆襲のシャア).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처음 본 게 고등학생 때였으니 삼십 년도 더 됐다.
음악은 지금 들어도 이상하게 무겁다.
단순한 향수가 아니었다.
뭔가 자꾸 지금과 연결되는 느낌이 있었다.
한참 듣다가 생각했다. 그 무게가 어디서 오는지.
오래 버티는 의뢰인이 있다.
합의 조건이 이미 나와 있다. 상대방도 동의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그런데 이쪽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면 말한다.
내가 옳기 때문이라고.
그 말을 처음에는 빨리 정리했다.
옳고 그름이 지금 무슨 상관이냐고.
조건을 보라고. 현실을 보라고.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그 말을 너무 빨리 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 변호사와 마주 앉아 있을 때의 일이다.
상대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듣고 있었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메모를 멈췄다는 걸 알아챘다.
손이 멈춰 있었다.
상대의 말이 더 이상 받아 적을 것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이미 다음 할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분쟁을 오래 다루다 보면 패턴이 보인다.
합의가 잘 되는 사람과 잘 안 되는 사람의 차이는
조건의 유불리가 아니다.
상대방의 말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차이다.
합의가 잘 되는 쪽은 상대의 말을 정보로 받아들인다.
저쪽이 저렇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파악하면 협상의 여지가 생긴다.
안 되는 쪽은 다르다. 상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확히는, 들어오기는 하는데 정보로 처리되지 않는다.
그냥 소음이 된다. 제거해야 할 소음.
그 순간부터 협상은 끝난다. 테이블에 앉아 있어도.
역습의 샤아에는 샤아 아즈나블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인류가 지구에 안주한 채 타락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강제로라도 우주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행성을 지구로 떨어뜨리려 했다.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진단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인류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
그 구조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 부분은 맞았다.
그런데 그는 끝내 설득을 시도하지 않았다.
설득은 상대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샤아는 그 전제를 버렸다.
상대는 틀렸거나 아직 모르는 것이다.
기다릴 이유가 없다. 강제하면 된다.
확신이 어느 지점을 넘으면 그렇게 된다.
선한 의도도 예외가 아니다.
샤아가 무서운 건 그가 틀려서가 아니다.
그가 자신이 옳다는 것을 너무 오래, 너무 깊이 믿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쌓이는 동안 상대의 말은 조금씩 소음이 되어갔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폭력적이 된 게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그렇게 됐을 것이다.
그게 더 무섭다.
내가 명백히 옳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상대가 억지를 부리고 있고, 논리도 없고,
그냥 버티고 있는 것이 보일 때.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
그때 나는 어떻게 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듣기를 멈춘다.
형식적으로는 듣고 있다.
고개도 끄덕인다. 메모도 한다.
그런데 상대의 말이 정보로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이미 결론을 가지고 있고,
그 결론을 확인하는 것들만 골라 받아들이고 있다.
나머지는 소음이다.
이상한 것은, 그 상태에서도 나는 내가 잘 듣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상대가 말을 마치면 나는 바로 반박한다.
빠르고 깔끔하게. 그것이 내가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실제로는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결론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골라내고 있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내가 하는 말을 설득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그것은 설득의 형태를 한 통보다.
상대가 움직이지 않으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러지.
그 순간 나는 이미 샤아와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규모가 다를 뿐, 구조는 같다.
요즘...뉴스를 보면 같은 장면이 보인다.
각자 자신이 옳다고 말한다.
각자 상대가 먼저 시작했다고 말한다.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져도 말은 오가지 않는다.
오가는 것은 각자의 결론뿐이다.
그러니 테이블은 형식이 되고, 소음은 계속 쌓인다.
샤아가 소행성을 밀어붙인 것도
그 끝에 있는 장면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매일 그 어느 지점의 어딘가에 서 있다.
내가 하는 말이 설득인지 통보인지.
상대의 말이 정보인지 소음인지.
그 경계를 나는 그때그때 알고 있는가.
OST는 계속 흘렀다.
나는 한동안 그냥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