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uichi Sakamoto - "solari"
그 해 가을, 나는 행운일기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세무사 사무소를 연 지 4년째 되는 해였다.
경영은 어중간한 상태였다.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이.
행운일기는 어떤 책에서 배운 것이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운에 관한 책이었는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매일 밤 자기 전에 그날 있었던 행운을 적으라고 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좋다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렇게 쓰라고 했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나는 사무실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미사용 수첩을 꺼냈다.
거래처에서 연말에 받은 판촉물이었다.
표지에 보험회사 로고가 박혀 있었고,
비닐 커버가 씌워져 있어서 손가락에 약간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다.
행운을 기록하기에 어울리는 수첩은 아니었지만,
새로 사러 가기는 귀찮았다.
10월이었다.
사무실 건물 뒤편 은행나무가 아직 초록이었다.
바람이 불면 잎사귀들이 건조한 소리를 냈다.
10월 7일.
'오늘 국세청 민원실에서 번호표를 뽑았는데 대기가 세 명뿐이었다.
보통은 이십 분 이상 기다리는 곳이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10월 9일.
'거래처 박 사장이 결산 자료를 제때 보내주었다.
작년에는 세 번이나 독촉해야 했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10월 14일.
'점심에 갈비탕을 먹었는데 고기가 많았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처음 몇 주 동안은 그런 것들이 의외로 쉽게 발견되었다.
행운일기를 쓰는 시간은 대개 밤 11시쯤이었고,
나는 사무실 책상 위의 스탠드만 켜놓은 채 그날의 일을 더듬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스탠드의 좁은 원 안에서는 찾기가 수월했다.
11월이 되자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가, 이내 앙상해졌다.
사무소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어느 시점부터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침에 출근해서 문을 열면 전날까지와는 뭔가 다른 냄새가 났다.
환기가 안 된 방에 여러 사람의 감정이 하루치씩 쌓인 냄새.
내가 전화를 받으면 경리 직원이 고개를 돌렸다.
그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전에도.
나는 뭔가를 말해야 했다.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저녁이 되어 모두 퇴근하고,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으면
복도 쪽 형광등이 간간이 깜빡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해야 할 말들을 떠올렸다.
정확하고 단호한 문장들.
그런데 아침이 되면 그것들은 증발해버렸다.
밤에 만든 것들은 아침까지 남아 있지 않았다.
행운일기에 적은 것들도 마찬가지였는지는 모르겠다.
11월 3일.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11월 11일.
'퇴근길에 지하철 좌석이 하나 비어 있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11월 18일.
수첩을 펼쳤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비닐 커버 위에 손가락 자국만 남았다.
5분쯤 빈 페이지를 바라보다가 덮었다.
11월 22일.
'프린터 토너가 다 떨어지기 직전에 알아챘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12월.
건물 현관에 조화로 만든 크리스마스 리스가 걸렸다.
누가 걸었는지는 모르겠다.
매년 같은 자리에 같은 리스가 걸렸다.
연말 결산 시즌이었다.
거래처에서 전화가 많이 왔고, 나는 바빴다.
사무소의 공기는 여전히 이전과 같지 않았지만
나는 바쁨 속에서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수첩은 서랍 안에 있었고, 서랍은 닫혀 있었다.
12월의 페이지는 백지였다.
12월 29일.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수첩을 꺼냈다.
사무실 전체의 불은 이미 꺼져 있었고, 스탠드만 켜 있었다.
창밖에서 간간이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빈 페이지 위에 이렇게 썼다.
'올해가 끝나간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쓰고 나서 한참 동안 그 한 줄을 내려다보았다.
수첩을 덮지 않은 채.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그 글씨는
10월에 쓴 것들과 똑같은 펜으로 쓴 것인데도
어째서인지 다르게 보였다.
새해가 되었다.
나는 그 수첩을 서랍에 다시 넣었다.
새해에는 새 수첩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심시간에 사무실 근처 문구점에 들러 수첩을 하나 샀다.
아무 로고도 없는 검은색 수첩이었다.
비닐 커버도 없었다.
매끈한 표지가 손에 서늘하게 닿았다.
그리고 1월이 지나고 2월이 지나는 동안,
새 수첩은 한 번도 펴지지 않았다.
3월 어느 날, 사무실을 정리하다가
서랍 안쪽에서 보험회사 로고가 박힌 수첩이 나왔다.
옆에는 검은색 새 수첩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나는 손때가 묻어 비닐 커버가 흐릿해져 있었고,
하나는 처음 산 그대로였다.
나는 옛 수첩을 펼쳐 가을의 기록들을 읽었다.
국세청 대기 인원, 갈비탕의 고기, 비가 오지 않은 날, 프린터 토너.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
'올해가 끝나간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그 한 줄을 읽었을 때
목구멍 안쪽이 아주 미세하게 조여왔다.
나는 수첩을 덮었다.
두 권을 나란히 서랍에 넣고 서랍을 닫았다.
바깥에서는 공사 소리가 들렸다.
3월이었다.
은행나무 가지 사이로 흐린 빛이 지나가고 있었고,
아직 잎은 나지 않았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면.
https://youtu.be/n6OqLXvri3M?si=QaLSeL2H2lXC2DQ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