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층 - 그녀가 돌아오던 밤에 관하여
메시지는 오후 세 시에 왔다.
"내려간다."
이 네 글자였다. 마침표도 없었다.
나는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차단이 풀려 있었다.
이쪽에서 풀지 않았으니 저쪽에서 먼저 푼 것이다.
열흘이 아니라 2주 반이었다. 정확히 18일.
나는 세고 있었다. 세지 않으려고 했지만 세어졌다.
예전이라면 "알겠어"라고 답했을 것이다.
아니, "조심히 와"라고 했을 수도 있다.
안도감이 밀려오고, 몸의 긴장이 풀리고,
그제야 밥맛이 돌아오는. 그런 순서.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핸드폰을 뒤집어 화면이 바닥을 향하게 놓았다.
보고서 작성을 계속했다.
수치를 입력하고, 도면을 확인하고, 차음 등급을 계산했다.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움직였지만 머리의 절반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려간다"가 무슨 뜻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 이 도시로 온다는 뜻이다.
그리고 오면 내 집에 온다는 뜻이다.
이 도시에서 그녀가 갈 곳은 내 집뿐이었으므로.
오후 네 시. 답을 하지 않은 채 한 시간이 지났다.
추가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도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불안했다.
화를 내거나 재촉하는 편이 차라리 익숙했다.
나는 모니터 속 도면을 바라보았다. 아파트 벽체 단면도.
콘크리트와 석고보드 사이의 공기층이 흰색으로 비어 있었다.
벽과 벽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공간.
나는 저장 버튼을 누르고 컴퓨터를 껐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가끔 떠올린다.
그리고 그때마다 빚이라는 단어가 함께 따라온다.
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몇 년에 걸쳐 모든 것을 갈아 넣고 있던 무렵이다.
나는 소모된 상태였고, 그녀는 그 틈으로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불러들였다.
무너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어떤 목소리든.
문제는 내 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상황을 말했고, 그녀는 알면서도 곁에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분쟁의 여파가 그녀에게까지 닿았다.
상대측이 그녀의 존재를 알아냈고, 그녀는 원치 않는 곤란에 휘말렸다.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겠다.
다만 그것은 상당히 오래 이어졌고,
그녀의 시간과 일상에 적지 않은 피해를 남겼다.
비용은 내가 감당했지만, 돈으로 메울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빚이 있었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빚은 관계 안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작동했다.
다툴 때마다 그녀는 같은 말을 꺼냈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고.
나는 그 말 앞에서 매번 멈추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적어도 일부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과를 해도 그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한 번 갚으면 다음 것이 왔다.
그 다음 것을 갚으면 또 그 다음 것이 왔다.
어느 시점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 빚에는 만기가 없다.
하지만 깨닫는 것과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분쟁이 정리되고 한동안은 좋았다.
그녀와의 시간이 나를 살아가게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일요일 오후의 기억이 있다. 아마 봄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내 집 거실바닥에 앉아 과일을 깎고 있었다.
사과였는지 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칼을 쥔 손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고,
껍질이 한 줄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창밖에서 오후의 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그녀의 손등 위에 놓여 있었다.
그때 나는 이 사람과 오래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그 빛과 그 손과 그 껍질의 곡선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다.
그 기억은 지금도 진짜다.
하지만 진짜인 것과 충분한 것은 다른 문제였다.
한 장면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 하나로 관계 전체를 지탱할 수는 없다.
과일 껍질은 결국 끊어지게 되어 있다.
끊어진 뒤에 남는 것은 과일이 아니라 칼을 쥔 손의 기억뿐이다.
오후 다섯 시에 사무실을 나왔다.
그녀가 이 도시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개 저녁 일곱 시에서 여덟 시 사이다.
고속버스로 세 시간 남짓.
세 시에 메시지를 보냈으니
여섯 시에 출발했다면 아홉 시쯤. 좀 더 일찍 출발했다면 일곱 시쯤.
나는 집에 가지 않기로 했다.
문을 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집에 없는 것. 그 편이 안전했다.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결국 열게 될 것이다.
몇 달 전처럼. 그 전처럼. 또 그 전처럼.
그 패턴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코트 깃을 올리고 걸었다. 사무실에서 집과 반대 방향으로. 목적지는 없었다.
3월의 밤이었다.
해가 진 뒤 바람이 차가워졌지만 걷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거리에는 퇴근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식당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있었고,
편의점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사이를 지나갔다.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채.
강변 산책로까지 걸어갔다. 이십 분쯤 걸렸을 것이다.
벤치에 앉았다. 강물이 어둡게 흐르고 있었다.
수면에 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옆 벤치에 낚시 가방을 내려놓은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낚싯대는 펴지 않은 채였다. 그냥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남자가 말을 건넸다. 별 이유 없이.
"이 시간에 여기 앉아 있는 사람은 대개 두 종류입니다."
나는 돌아보았다.
"물고기를 기다리는 사람과,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사람."
"저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쪽인 것 같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쪽이 낫지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나란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누구인지, 왜 낚싯대를 펴지 않고 앉아 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가 없었다.
남자가 자리를 떴는지, 아직 앉아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강물을 보고 있었다.
혼자 앉아 있는 저녁이 무서웠다.
가까운 사람이 없다는 감각이 몸 안 어딘가를 눌렀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것만이었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될 일이었다.
그녀에게 갚지 못한 것.
그녀의 일상에 내가 남긴 자국.
그것들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미안한 것과, 내 인생을 담보로 갚아야 하는 것은 같은 일인가.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질문을 떠올린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부재중 전화 네 통. 전부 그녀였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강물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에서 배의 기적 소리가 낮게 울렸다.
전원을 껐다.
열한 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앞 복도에 아무도 없었다.
문 앞에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초인종이 울린 흔적도 없었다.
그녀가 왔다 간 것인지, 아예 오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신발을 벗고 불을 켰다.
방은 아침에 나간 그대로였다.
싱크대 위의 꽃무늬 머그컵도 그대로. 욕실의 수건도 그대로.
샤워를 하고 이를 닦고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하나.
나는 아직 여기 있다는 것.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지나가는 소리였다.
나는 귀를 기울이다가, 이불을 끌어올렸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잠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