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음향 설계사의 목요일
목요일 오전,
나는 신축 오피스텔 현장에서 바닥 충격음을 측정하고 있었다.
열두 층짜리 건물의 9층이었다.
아직 입주 전이라 복도에는 시멘트 가루 냄새가 남아 있었고,
창문 틀에 붙어 있는 보호 비닐이 바람에 바스락거렸다.
나는 표준 충격원—지름 이십오센티미터의 고무공—을
바닥에서 1미터 높이까지 들어올린 뒤 떨어뜨렸다.
둔탁한 소리가 빈 방에 퍼졌다.
아래층에서 소리를 수음하고 있을 보조 기사에게 무전을 넣었다.
"수음 완료했습니까."
"완료요."
"데시벨 얼마 나옵니까."
"43입니다."
기준치는 45. 나는 수첩에 수치를 적었다.
함께 온 시공사 현장소장이 헬멧을 벗으며 물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괜찮은 기준이 다릅니다."
현장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더 묻지는 않았다.
내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서른아홉이고, 건축 음향 설계 일을 한다.
건물의 소음을 차단하는 벽과 바닥을 설계하는 것이 직업이다.
말하자면 소리와 침묵 사이의 경계를 긋는 일이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벽의 두께를 계산하고, 공기층의 간격을 정하고,
차음재의 종류를 고르는 것이다.
항구가 보이는 도시의 원룸에 혼자 산다.
몇 년 전까지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삶이 어떤 경위로 무너졌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
긴 분쟁이 있었고, 끝났을 때 나는 상당히 소모된 상태였다.
남은 것은 작은 방 하나와,
그 방 안에서 다시 만들어야 할 일상이었다.
현장에서 돌아와 사무실에 앉았다.
오후 두 시. 보고서를 써야 했다.
화면에 도면을 띄워놓고 수치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벽 이백 밀리미터, 공기층 오십 밀리미터,
석고보드 이중 시공. 차음 등급 52데시벨.
집중이 안 되었다.
그녀와 연락이 끊긴 지 열흘째였다.
서로 차단한 상태.
전화도, 메시지도,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물론 내가 보낸 것도 없었다.
원인은 사소했다. 매우 사소했다.
그녀의 집은 이 도시, 직장은 다른 도시이다.
그녀가 다른 도시로 올라간 그날 밤,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에 들러서 부엌의 바나나껍질을 처리해 달라고 했다.
그날따라 나는 몸이 좋지 않았다.
열이 나고 목이 깔깔했다. 감기몸살초기.
그래서 일치감치 퇴근해서 약을 먹고 누으려던 참이었다.
'미안하지만 내일 아침에 가면 안될까?'
'오늘 좀 해줘. 바나나껍질 놔두면 날파리가 생긴단 말이야
금방 다녀올 수 있잖아?'
가려면 갈 수 있다. 내 집과 그녀의 집은 1km 조금 안되는 거리에 있으니까.
하지만 막 약을 먹고 이불을 덮고 누운 참이다.
그리고 지금은 겨울. 아무리 바나나껍질이라 한들 몇 시간 만에 날파리가 생기진 않는다.
'그냥 내일 새벽에 다녀올께'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그게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감기기운이 있다고. 약 먹고 누웠다고.
무엇때문에 몸이 좋지 않냐고 그녀는 물었다.
한 달 가까이 그녀와 함께 지낸 뒤라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가 갑자기 화를 냈다.
자기 핑계를 대지 말라고.
그건 당신이 자기 관리를 잘 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솔직히 황당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뭐라고 말할 기력이 없었다.
그 뒤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이런 종류의 침묵에 익숙하지 못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익숙해질 수가 없다.
가까운 사람과 관계가 틀어지면 내 일상 전체가 흔들렸다.
예전부터 그랬다. 그 전에 함께 살았던 사람과도 그랬다.
다투면 며칠 동안 출근도 못하고 술을 마셨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 밀려왔고,
그 느낌은 아주 구체적이었다.
가슴이 눌리고, 밥맛이 사라지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내가 먼저 연락했다. 잘잘못과 상관없이.
이 상태를 빨리 끝내야 했으므로.
그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시간을 끌면 결국 내가 무릎을 꿇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멋지게 이용하곤 했다.
지금의 그녀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녀도 먼저 손을 내밀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태도가 달라졌다.
차단하고, 침묵하고, 기다렸다.
이번에 나는 먼저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후 다섯 시에 사무실을 나왔다.
해가 일찍 기울어 거리는 벌써 어둑했다.
3월이었지만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코트 깃을 올리고 걸었다.
사무실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 정도 걸린다.
그 이십 분 동안 나는 대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길가의 간판을 읽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을 내려다보거나.
그런 식으로 머릿속을 비워두려고 한다.
하지만 그날은 잘 되지 않았다.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우유를 샀다.
저녁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고,
간식이라고 부르기에는 쓸쓸한 조합이었다.
계산대에서 직원이 "봉투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괜찮습니다" 하고 답했다.
그것이 오후 내내 내가 사람과 나눈 대화의 거의 전부였다.
집에 들어서면 신발을 벗고 불을 켠다.
좁은 현관, 좁은 부엌, 좁은 방. 열 평 남짓한 공간이다.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고, 둘이 지내기에는 턱없이 좁다.
그런데 그녀는 여기에 거의 매일 왔다.
다른 도시에서 일이 없는 기간에는—그리고 그 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이 방에 와서 머물렀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빈둥거리다가,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을 먹으러 나가고,
돌아와서 또 빈둥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나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야 했고,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안 놀아준다고 투덜거렸다.
그녀의 수건이 욕실에 아직 걸려 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그녀가 쓰던 컵이 하나 있었다.
꽃무늬가 그려진 머그컵.
나는 그것들을 치우지 않았다.
치울 이유가 분명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거기 있는 것이 편하지도 않았다.
볼 때마다 뭔가가 목구멍 근처에서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것.
삼각김밥을 먹고 우유를 마셨다.
설거지랄 것도 없었다.
비닐 포장을 쓰레기통에 넣고 손을 씻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앉았다.
조용했다. 저녁 일곱시의 원룸은 조용했다.
위층에서 누군가 걷는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렸다.
뚜벅, 뚜벅. 그리고 멈추었다.
그녀를 만난 것은 몇 년 전이다.
분쟁이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그 경위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 정도만 말해두겠다.
나는 그녀에게 빚 같은 것이 있었다.
금전적인 빚이 아니라, 좀 더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빚이다.
그것이 이 관계를 오래 붙잡아두었다.
내 잘못도 있었고, 그 잘못의 여파가 그녀에게까지 닿았다.
그녀는 그 텅 빈 시간을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가 바뀌었다.
그녀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생활비 명목으로 빌려간 돈도 있었다.
내 방에 매일 왔지만 그녀의 집에는 나를 들이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하려 하면—여행이든, 투자든, 운동이든—늘 비아냥거렸다.
자기는 그런 것들을 다 해봤는데 의미 없다고.
다투면 먼저 차단하고 침묵했다.
그리고 다툴 때마다 같은 말이 돌아왔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고.
처음에는 미안했다. 실제로 내 잘못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사과를 해도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예전에도 겪었던 어떤 관계와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으므로.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열흘째 아무 연락도 없는 이 원룸에 앉아 있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정말 아무도 없는 것보다 나았는가.
그녀가 여기 있을 때 나는 편안했는가.
그녀가 떠난 뒤에 무너지는 이유는 정말 그녀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없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무서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아직 갚지 못한 무언가가 나를 붙잡는 것인가.
답은 알고 있었다. 아마.
하지만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밤이 되었다.
이를 닦고 불을 끄고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어둠은 아무 모양도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불안했다.
형태가 있으면 그래도 이름을 붙일 수 있는데,
형태 없는 것에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었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몸이 굳었다. 반사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는 내 문 앞을 지나 멀어졌다.
다른 집 사람이었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몇 달 전의 일이 떠올랐다. 새벽 두 시쯤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나는 이불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초인종이 멈추더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쾅, 쾅, 쾅.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어, 나야.
나는 왜 열어야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열지 않으면 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경찰이 올 수도 있었다.
실제로 전에 한 번 경찰에 연락한 적도 있었다.
문을 열었다. 그녀는 들어왔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일방적이었지만.
내가 자기 인생을 망쳤다고 했다.
나 때문에 몸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하면 더 격해질 것을 알았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손을 댄 적은 없었지만,
그 경계가 언제 무너질지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지금도 밤에 소리가 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또 왔나. 또 벨을 누르나. 또 문을 두드리나.
그 공포는 그녀가 올라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몸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었다.
직업상 나는 소리를 차단하는 벽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콘크리트의 밀도, 공기층의 간격, 차음재의 두께.
그런 것들을 조합해서 소리가 넘어오지 않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 원룸의 얇은 벽은,
그리고 그 얇은 문 하나는, 아무것도 막아주지 못했다.
복도의 발소리도, 초인종 소리도,
새벽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잠들기 직전, 나는 내일 오전에 제출해야 할 차음 설계 보고서를 떠올렸다.
침대 옆 바닥에 서류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 벽 단면도가 들어 있었다.
콘크리트, 공기층, 석고보드.
세 겹의 층이 겹쳐진 단면.
소리를 막는 것은 벽의 두께만이 아니라,
벽과 벽 사이의 빈 공간이기도 하다.
소리는 고체를 통과하지만 공기층에서 감쇠된다.
빈 것이 막아주는 셈이다.
나는 그 단면도를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빈 것이 막아주는 것.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었다.
머리가 무거웠고, 생각이 또렷하지 않았다.
복도는 조용했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잠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