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서랍에 대하여
그것은 결혼 6년 차의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6년과 4개월.
숫자를 세는 것은 내 직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무의식적으로 기억하는 편이다.
나는 세무사였다.
도시 외곽의 상가 건물 3층에 사무실이 있었고,
직원 두 명과 함께 일했다.
의뢰인은 대부분 자영업자들이었다.
음식점, 학원, 병원, 작은 공장.
그들의 매출과 비용을 정리하고,
세금을 계산하고,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장부에 기록된 숫자들은 명확했다.
들어온 돈이 있고, 나간 돈이 있다.
그 차이가 이익이거나 손실이다.
복잡해 보여도 구조는 단순하다.
하나를 더하면 하나가 늘고,
하나를 빼면 하나가 줄어든다.
하지만 내 집의 장부만은 달랐다.
아내와 결혼한 것은 서른네 살 때였다.
늦은 편이었다.
사무실을 열고 자리를 잡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연애 기간은 짧았다. 반년쯤.
누군가의 소개로 만났고, 특별히 극적인 일은 없었다.
다만 함께 있으면 조용했다.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게는 중요했다.
결혼식은 간소하게 치렀다.
하객은 양쪽 합해 60명 남짓이었다.
피로연이 끝나고 하객들이 빠져나간 뒤,
아내는 테이블 위에 남은 꽃다발을 집어들며 웃었다.
작고 빠른 웃음이었다. 꽃잎이 한 장 떨어졌다.
그녀가 그것을 줍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을 나는 기억한다.
왜 그것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돈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돈의 흐름이었다.
결혼 초부터 생활비는 전적으로 내가 부담했다.
아내도 일을 했다. 프리랜서로 뭔가를 했는데,
무슨 일인지 자세히는 묻지 않았다.
수입이 들쑥날쑥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것은 괜찮았다. 내 수입이 충분했으므로.
매달 급여에서 생활비를 건넸다.
처음에는 300만 원이었다.
반 년이 지나 400이 되었다.
1년이 지나 500이 되었다.
이유는 그때그때 달랐다.
물가가 올랐다거나, 보험료가 늘었다거나.
나는 묻지 않았다.
내가 다루는 의뢰인들의 장부에서는
1원 단위까지 추적하면서,
정작 내 집안의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내를 믿었다기보다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확인하면 무언가가 드러날 것 같았고,
드러나면 대처해야 했고,
대처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 에너지를 쓸 여유가 없었다.
부동산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결혼 2년 차 무렵이었다.
아내가 저녁을 먹다가 말했다.
재개발 지역에 괜찮은 물건이 나왔다고.
지금 들어가면 몇 년 안에 두 배는 된다고.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했다.
직업상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의뢰인들 중에 그런 식으로 돈을 번 사람도 있었고,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세금 문제로 찾아오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절박한 표정을 짓는 부류가 바로 그들이었다.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팔리지 않는 물건을 안고 매달 수백만 원씩 은행에 바치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신중한 편이었다.
아니, 신중하다기보다는 두려운 쪽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좀 이르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아내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그 변화를 나는 알아챘지만, 알아채지 못한 척했다.
그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한 달에 한두 번씩 같은 주제가 돌아왔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나중에는 점점 직접적으로.
재개발. 분양권. 갭투자.
단어들이 저녁 식탁 위에 놓였다가 치워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매번 같은 대답을 했다.
여유가 생기면 생각해보자고.
대출을 무리하게 받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금 우리 형편으로는 아직 이르다고.
그때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의한 것인지 포기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3년 차에 접어들 무렵,
아내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말했다.
물 소리에 섞여 들려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듣지 못했다.
"뭐라고?"
수돗물을 잠그고 아내가 돌아보았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대출. 당신 이름으로 내야 한다고. 내 신용으로는 안 돼."
나는 소파에 앉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엌의 형광등이 그녀의 뒤에서 빛나고 있었다.
표정이 역광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3억."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억이면 매달 이자만 백만 원이 훌쩍 넘었다.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내는 구조라면
그 돈은 해마다 고스란히 은행으로 들어가고,
내 통장에서는 빠져나갈 뿐이었다.
"생각해볼게."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아내는 고무장갑을 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이.
결국 대출을 받았다.
내 이름으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지금 다시 되짚어보면 잘 모르겠다.
한 번의 큰 결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작은 양보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있었다.
마치 의자 다리가 하나씩 짧아지듯이.
처음에는 기울어진 것도 모르다가,
어느 날 불현듯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처럼.
대출이 실행되고 나서
아내의 일상에 새로운 것이 하나 추가되었다.
토요일이 되면 아내는 거실 바닥에 서류를 펼쳐놓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등기부등본, 지적도, 부동산 중개업소의 명함들.
형광펜으로 숫자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노란색 형광펜이었다.
그 손이 빠르게, 거의 확신에 차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부엌에서 물을 따르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저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강의를 들은 것도 아니다.
주변 누군가의 말 몇 마디와, 아마도 유튜브 영상 몇 개.
그것으로 수억 원의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확신.
나는 그런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의뢰인의 장부에서 100만 원이 맞지 않아도
원인을 찾을 때까지 퇴근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수억 원이 오가는 투자를
형광펜 밑줄 몇 개로 결정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뭘 봐."
나는 물컵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4년 차.
두 번째 물건이었다.
이번에는 추가로 4억을 더 받아야 했다. 역시 내 이름.
아내가 찾아낸 물건이었고,
아내의 지인이 추천한 물건이었다.
나는 그 지인을 만난 적이 없었다.
합산 7억.
매달 빠져나가는 이자가 300만 원에 육박했다.
급여에서 생활비를 빼고 이자를 빼면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당신은 몰라도 돼. 내가 알아볼게."
그 말에 무언가 반론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왜 하지 않았는지.
아마 싸우기가 싫었을 것이다.
싸우면 며칠간 집안이 얼어붙었다.
그 차가움을 견디는 것보다는
서류에 도장을 찍는 편이 더 쉬웠다.
5년 차가 되자 세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에는 5억이었다.
"마지막이야. 이것만."
나는 식탁에 앉아 계산을 했다.
머릿속이 아니라 실제로.
냅킨 뒤에 숫자를 적었다.
세무사의 습관이었다.
총 대출 12억.
연이자 대략 5천만 원.
월로 나누면 420만 원 남짓.
내 월 실수령액에서 생활비를 빼면
이자를 겨우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겨우. 여유는 없었다.
비상금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명의가 하나 더 필요해."
아내가 그렇게 덧붙였다.
"형제가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외아들이라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불편한 것이었다.
명의를 빌릴 사람이 없다는 뜻에서.
부모님 이야기도 나왔다.
결혼할 때 도움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고.
다른 집은 어떻다더라. 누구네 부모는 얼마를 해줬다더라.
나의 부모는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주셨다.
하지만 아내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나는 냅킨 위의 숫자들을 바라보았다.
깨끗하게 정렬된 숫자들.
사무실에서라면 이 숫자를 보고 의뢰인에게 말했을 것이다.
위험합니다. 유동성이 없습니다. 처분이 안 되면 끝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뢰인의 장부가 아니라 내 삶이었다.
냅킨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세무사라는 직업은 남의 숫자를 정리하는 일이다.
의뢰인의 장부를 펼치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
어디서 벌고, 어디서 쓰고,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나는 그것을 읽는 데 능숙했다.
그런데 내 삶의 장부는 열어보지 못했다.
아내가 어디에 얼마를 쓰는지,
그 투자가 실제로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이자 외에 원금은 줄어들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물어보면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왜 그런 걸 물어봐?"
그 한마디 앞에서 나는 매번 입을 다물었다.
6년 차 어느 날,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세금 신고 시즌이었다.
의뢰인의 매입·매출 자료를 대조하는 작업이었다.
숫자가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 표시하고,
빠진 영수증을 요청하는 메모를 적었다.
그날 오후, 한 의뢰인의 자료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매출은 꾸준했는데 비용 항목에 설명할 수 없는 공백이 있었다.
분기마다 수백만 원이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디에 쓰인 것인지 영수증도 기록도 없었다.
나는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부분 확인이 필요합니다. 매입 근거가 없는 지출이 있어요."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의뢰인이 말했다.
"아, 그건… 집사람 쪽이에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나는 수화기를 쥔 채 가만히 있었다.
모니터 화면의 스프레드시트를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정렬된 행과 열.
그 안에 메울 수 없는 빈칸이 있었다.
X. 알 수 없는 변수.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빈칸이 내 장부에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의문은 잊을 만하면 돌아왔다.
밤에 불을 끄고 누우면 천장이 어두웠다.
옆에서 아내의 숨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고른 숨소리.
그녀는 잠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숫자를 셌다.
내가 번 돈.
집에 가져다 준 돈.
대출금.
이자.
생활비.
그 모든 숫자들을 더하고 빼면 답이 나와야 했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방정식의 어딘가에 그 X가 있었다.
아내에게도 수입이 있었다.
정확히 얼마인지는 몰랐지만,
일을 하고 있으니 무언가는 들어올 것이다.
그 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한 번.
"그건 내 용돈이야."
그것이 대답이었다.
생활비도, 대출 이자도, 투자 비용도
모두 내 급여에서만 나갔다.
그녀의 수입은 그녀의 것이었다.
나의 수입은 우리의 것이었다.
그 비대칭을 나는 6년 동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의문은 매번 같은 형태로 찾아왔다.
잊을 만하면 불쑥.
또 잊을 만하면 또 불쑥.
마치 낡은 배관에서 새는 물처럼.
틈을 메워도 다른 곳에서 다시 새어나오는.
어느 밤, 잠이 오지 않아서 부엌으로 나갔다.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싱크대 위에 청구서 봉투가 쌓여 있었다.
대출 이자 고지서. 카드 명세서. 관리비 고지서.
모두 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봉투를 하나 집어들었다.
대출 이자 고지서였다.
잔액이 적혀 있었다.
원금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6개월 전에 본 숫자와 거의 같았다.
이자만 내고 있었다.
매달 수백만 원의 이자를 은행에 지불하고,
원금은 한 푼도 갚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숫자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투자라면, 투자의 목적은 무엇인가.
투자란 미래의 수익을 위해 현재를 감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감수에는 끝이 있는가.
언제 수익이 돌아오는가.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는가.
없다면 이것은 투자가 아니라 무엇인가.
나는 봉투를 내려놓았다.
물컵을 싱크대에 놓았다.
부엌의 형광등을 껐다.
어둠 속에서 냉장고만 낮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해 가을, 나는 사무실에서 수첩을 꺼냈다.
평소에 업무용으로 쓰는 수첩이었다.
보험 회사 로고가 박힌, 받아놓고 쓰지 않던 것.
나는 빈 페이지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의문을 글자로 적었다.
적고 나서 잠시 그 한 줄을 바라보았다.
글자로 보니 생각보다 짧았다.
6년 동안 머릿속에서 돌고 돌았던 것이
겨우 한 줄이라는 사실이 어째서인지 허탈했다.
그 아래에 더 적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빚만 쌓이고.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고.
이게 과연 부부인가.
그냥 내가 번 돈 내가 관리하고 살면 안 되는 건가.
적으면서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
의뢰인의 자료를 정리하듯이
사실만을 나열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을 때는 조금 달랐다.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건너편 건물의 유리창에 저녁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평범한 가을 오후였다.
하지만 나는 수첩을 덮고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의뢰인의 장부를 펼쳤다.
그날도,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나는 사무실에 출근하고 숫자를 정리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가 밥을 먹었다.
아내와 마주 앉아.
별다른 대화 없이.
가끔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소리를 지르고, 문을 닫고, 혼자 방에 들어갔다.
그러면 며칠간 집안이 얼어붙었고,
나는 그 어색함이 싫어서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다.
매번 같은 순서.
폭발, 침묵, 사과, 원상복구.
어느 순간 그녀가 그 순서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기다리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굴복한다는 것을.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불안해졌다.
이 반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불안.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투었다.
역시 돈 문제였다.
이번에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겼다.
옷 몇 벌. 세면도구. 노트북.
평소에 쓰던 것들만.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신발장 위에 아내의 형광펜이 놓여 있었다.
노란색. 뚜껑이 열린 채로.
그것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뒤에서 아내가 무언가를 말한 것 같았다.
정확히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문을 열자 바깥 공기가 차가웠다.
12월이었다.
소송이 진행되었다.
부동산은 아내에게 갔다.
빚도 함께 갔다.
12억의 대출, 거기에 딸린 모든 것이 그쪽으로 정리되었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상태로 돌아왔다.
통장에 얼마 남지 않은 잔고.
소액의 빚.
8평 남짓한 작은 원룸.
6년 동안 벌었던 돈이 어디로 갔는지
나는 끝내 알지 못했다.
장부가 없었으므로.
내 이름이 적힌 장부는 있었지만,
그 안의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 X는 끝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제는 풀 필요가 없어진 것 같았다.
이사를 하고 나서 일주일쯤 지난 어느 저녁이었다.
원룸 바닥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흰 밥 위에 볶음김치와 계란 프라이.
숟가락으로 밥을 퍼 올렸다.
목에 걸리지 않았다.
6년 동안 저녁을 먹을 때마다
목구멍 어딘가에 걸려 있던 것이 사라져 있었다.
편의점 도시락이었지만 밥이 넘어갔다.
설거지랄 것도 없었다.
일회용 용기를 접어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손을 씻고, 창가에 섰다.
바깥으로 주차장이 보였다.
가로등 하나가 주황색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아래 빈 주차칸들이 줄지어 있었다.
숫자가 떠올랐다.
지금 내 통장에 남은 잔액.
다음 달 월세.
사무실 임대료.
직원 급여.
그 숫자들은 빠듯했지만, 적어도 선명했다.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의 흐름이
처음으로 온전히 내 것이었다.
내 장부였다.
빈칸이 없는, 내 장부.
나는 불을 끄고 이불을 펴고 누웠다.
원룸의 천장은 낮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
잠이 오기 전에 하나만 생각했다.
내일 출근하면 의뢰인의 장부를 열 것이다.
숫자를 정리하고, 누락된 것을 찾고,
보이지 않는 흐름을 가시화할 것이다.
그것이 내 일이다.
다만 이제는, 퇴근하고 돌아올 집에서
같은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바깥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12월의 바람이었다.
창틀이 미세하게 덜덜 떨렸지만
방 안까지 들어오지는 않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