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은 성실하다

뜨거웠던 사내에게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오래된 파일 하나를 열었다.

5년 전 구정에 쓴 일기였다.


가슴이 설렌다.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문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올해의 목표는 명확하다, 라는 선언으로 시작해서

믿는 방향을 또렷하게 적어두고 있었다.

40대 중반의 사내가 저런 글을 쓰고 있었구나.

좀 민망하다. 하지만 대견하다.

어쨌거나 저 사람은 저렇게 뜨거웠다.




묘한 것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저 방향 자체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부적인 것들은 물론 많이 달라졌다.

당시 같이 있던 사람은 떠났고,

조직의 형태도 규모도 바뀌었다.

하지만 뼈대는 그대로다.

어쩌면 당시 저런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의 일들이 벌어진 건지도 모른다.

같이 있던 사람과는 생각이 완전히 달랐으니까.

나는 수익의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고 여겼고,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

갈림길에서 나는 저 방향을 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가 지난 5년이다.


대가는 싸지 않았다. 아니, 엄청났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한번 죽었다가 깨어난 것 같다.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에 쓰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그 일들 중 상당수는 내가 자초한 것이었다.


고결한 목표를 유지한다고 해서

언제나 이기는 것은 아니다.

내 신념이 옳다고 해서

세부적인 전투에서 승리가 보장되지도 않는다.

이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달랐다.

옳다는 생각이 어딘가에 눌러앉아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을 풀게 만들었다.

준비를 덜 하게 만들었다.

상대방의 움직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쪽이 정당하니까 결국은 이길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


나중에야 알았다.

그게 가장 위험한 종류의 나태함이라는 걸.

옳다는 확신 위에 올라서면 내가 서 있는 곳만 밝고,

상대가 서 있는 곳은 어둡게 보인다.

그 사이에 상대는 움직인다.


법언 중에 '불법은 성실하다'는 말이 있다.

부당한 쪽이 오히려 더 철저하게 준비한다는 뜻이다.

상대방이 정말 부당했는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입장이 다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다.

그쪽이 나보다 성실했다.

나는 내 정당함에 기대어 게을렀다.

그리고 졌다. 여러 번.


정당함을 갖고도 지는 경험은 독특한 쓰라림이 있다.

분하다거나 억울하다는 감정과는 조금 다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 그게 전부다.


내가 더 성실했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만신창이가 되긴 했다.

그동안 쌓아둔 것들의 상당 부분이 날아갔다.


일어나는 것 자체가 힘든 아침들이 있었다.

천장의 얼룩을 세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뭘 위해 이걸 계속하는지 모르겠는 밤들이 있었다.

포기할 수도 있었다. 정말로 그만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 그러지 않았는지를 물으면 명쾌한 대답은 없다.

그냥, 아직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느 시점부터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조금씩 수월해졌다.

그냥 어느 날 문득, 천장의 얼룩을 세지 않고

일어나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게 회복이라면 회복이었다.


상처는 깊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만한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여전히 내 손에 남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기에 쓰지 않겠다.

다만 그것만 남아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전부 잃어본 뒤에야 알았다.




5년 전의 일기를 다시 읽고 나서,

한동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목표를 세웠던 사람은 아직 여기 있다.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도착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들떠 있던 자리에 침착함이 들어섰고,

확신이 있던 자리에 경계심이 들어섰다.

정의롭다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배웠다.

그 위에 성실함을 덧입히는 중이다.


아직 덧입히는 중이다.

5년의 대가가 충분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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