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라는 것의 무게는 그냥 이 정도 밖에 안되는게 아닐까?
오른쪽 손목이 아팠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다가 문득 느꼈다.
컵을 들 때, 문을 열 때, 키보드를 칠 때마다
미세하게 찌릿한 감각이 왔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픈 건 아니었다.
그저 '아, 지금 손목이 아프구나' 하고
인식할 정도의 통증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꽤 불편했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던 손목의 존재가 갑자기 선명해졌다.
물을 따를 때도, 책장을 넘길 때도,
손목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켰다.
마치 누군가 내 팔에 작은 깃발을 꽂아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손목 통증에 신경을 쓰는 동안,
최근 며칠 동안 나를 괴롭히던 머리 아픈 것들이
잠시 사라진 느낌이었다.
결정하지 못하고 미루던 일들.
풀리지 않는 관계의 문제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밤마다 뒤척이게 만들던 그 모든 것들.
손목이 아픈 동안만큼은 그것들이 멀어져 있었다.
나는 손목을 천천히 돌려보았다.
여전히 아팠다.
하지만 이 통증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건 명확했다.
원인도, 위치도, 정도도 분명했다.
언젠가는 나을 것이고,
낫지 않으면 병원에 가면 된다.
단순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생각보다는 별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고민이라는 것의 무게가,
고작 이 손목 통증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 아닐까?
해결할 수 없어 보이던 문제들이
사실은 단지 해결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 아닐까?
손목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참으면 더 아파진다.
반면 머릿속 고민들은 달랐다.
끝없이 부풀어 오르고, 변형되고,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냈다.
밤이 되면 더 커졌다가
아침이 되면 조금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데 무거웠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파스를 꺼내 손목에 붙였다.
시원한 느낌이 스며들었다.
이렇게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도
나는 이틀 동안 그냥 아파하기만 했던 것이다.
고민도 그랬다.
해결책은 간단한데, 나는 계속 아파하기만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디어 조금씩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들은 쌓여간다.
그때그때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손목처럼, 어느 날 갑자기 아파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아플 것이다.
며칠 전부터 미뤄두었던 전화를 걸었다.
답장하지 않았던 메시지에 답을 보냈다.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일에
'예' 또는 '아니오'라고 말했다.
하나씩 지워나갔다.
손목은 여전히 조금 아팠지만, 머리는 가벼워졌다.
생각보다는 별거 아니었다. 생각보다는.
창밖으로 늦가을 햇살이 들어왔다.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나무들은 거의 다 비어 있었지만,
그래서 더 가벼워 보였다.
나는 손목을 한 번 더 천천히 돌려보았다.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어제보다는 나았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