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모를 위험을 막기위해, 우리는 얼마나 무거운 것들을 끼우고 다니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이 왜 이렇게 무겁지?
아침 출근길,
주머니 속 휴대폰의 무게가 유난히 신경 쓰였다.
말 그대로 '휴대'폰인데,
휴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무게일 텐데.
왜 이렇게 무거운 걸까.
다시 보니 휴대폰에 뭔가가 붙어 있었다.
다름 아닌 케이스.
그것도 꽤 두툼한 녀석이었다.
나는 하나하나 떼어냈다.
먼저 투명한 케이스를 벗기고,
그 안에 끼워져 있던 카드를 빼냈다.
아. 역시.
케이스를 벗긴 휴대폰은 너무도 날렵했다.
그리고 가벼웠다.
손안에서 미끄러질 것 같은 매끈함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원래 이렇게 멋진 녀석인데 말이지.
언제부터 저 케이스를 끼워서 사용했던가.
아마 이 휴대폰을 처음 구입한 날부터였을 것이다.
혹시나 떨어뜨려서 액정이라도 나가면 돈이 많이 드니까.
뭐, 그런 논리였다.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다.
액정 파손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다.
그걸 고려하면 케이스 같은 건 필요 없지 않을까.
언제 올지 모르는, 아니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그 '위험'을 막기 위해,
매일같이 저 무게를 감수하며 다니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일까.
물론 케이스 사용 여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깊이 생각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냥 남들의 의견에 휩쓸려서,
습관적으로 케이스를 사용해온 것이 아닌가 싶다.
휴대폰 가게 직원이 "케이스는 필수입니다"라고 했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케이스를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일단 케이스를 벗기고 써보기로 했다.
손에 쥔 휴대폰이 너무 이쁘고 가벼워서 좋았다.
주머니 속 무게도 확연히 달라졌다.
다만 재질 때문인지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신경이 쓰였다.
혹시 떨어뜨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이틀째 되던 날, 나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케이스 없는 휴대폰을 사용하면서
나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는 것을.
걸으면서 휴대폰을 보지 않게 되었고,
테이블 위에 놓을 때도 천천히 내려놓게 되었다.
케이스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오히려 더 신중해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 삶에도
이런 '케이스'들이 많이 끼워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를 실패를 대비한 과도한 보험들.
언젠가 있을지 모를 불행에 대비한 걱정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두려움.
우리는 그것들을 '대비'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그저 무게만 더하는 '케이스'인지도 모른다.
물론 대비는 필요하다.
보험도, 계획도, 안전장치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무게 때문에 정작 지금 이 순간의 가벼움을 잃어버린다면.
혹시 모를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의 날렵함을 포기한다면.
그건 합리적인 선택일까.
케이스를 벗긴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휴대폰을 떨어뜨린 적은 없다.
언젠가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때 가서 액정이 깨진다면,
그건 그때 가서 고치면 된다. 보험도 있고.
중요한 건,
그동안 매일 감수했던 그 무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주머니가 가벼워졌고, 손안의 감촉이 좋아졌다.
그리고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어쩌면 이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두꺼운 케이스로 둘러싸는 것보다,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두려움이라는 케이스를 벗어던지면,
우리는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더 가벼워진다.
물론 때로는 넘어질 수도 있다.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벼움으로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나는 여전히 케이스 없는 휴대폰을 사용한다.
가끔 미끄러질 것 같아 조마조마하지만,
그래도 이 가벼움이 좋다.
그리고 이따금씩 생각한다.
내 삶에서도
이렇게 벗어던질 수 있는 '케이스'들이 또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