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나는 분명 행복했다
일기를 쓴다.
꽤 오랜 버릇이다.
항상 매일 쓰지는 않지만
어느 시기에는 거의 매일 작성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렇고.
어제 우연히 1년 전 오늘의 일기를 들춰봤다.
그리 길지 않은 문장이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역시 옛말은 틀리지가 않네.
이래서 인생은 살 만하다보다."
읽는 순간 멈칫했다.
1년 전의 나는 분명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업무다이어리를 뒤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휴대폰 메시지와 카카오톡을 꼼꼼히 뒤졌다.
특별한 대화는 보이지 않았다.
구글 포토를 열어봤다.
평범한 일상의 사진들만 몇 장 있을 뿐이었다.
원드라이브, 네이버 마이박스까지 뒤져봤지만
그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밤이 깊어졌다.
잠은 오지 않고 궁금증만 커졌다.
1년 전 오늘,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는 대개 나쁜 일은 오래 기억한다.
심지어 수십 년이 지나도 그날의 감정까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좋았던 순간들은 이렇게 쉽게 잊혀진다.
마치 물에 떨어뜨린 각설탕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런데 묘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1년 전의 나는 분명 무언가 좋은 일을 경험했고,
그것이 "인생은 살 만하다"는 문장으로 남았다.
지금의 내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과거에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행복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스며들어 우리 안에 조용히 쌓이는 것.
나쁜 기억들이 날카로운 가시처럼 박혀 있다면,
좋았던 순간들은 부드러운 이불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일지도.
1년 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그날의 나는 분명 행복했고,
오늘의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삶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좋은 날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는 것을.
언젠가 또다시 오늘의 일기를 읽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때의 나는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순간 내가 살 만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니까.
새옹지마.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고,
남는 건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뿐이다.
p.s. 이 글을 쓰는 지금. 벌써 밤 11시가 넘었다.
내게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얼른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