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mp it up! 내 청춘의 한 자락

번거로움이 필요한 이유

광안리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어느 오락실 앞을 지나게 되었다.


유리문 너머로 익숙한 기계 하나가 보였다.

'펌프 잇 업'이었다.


2023년 버전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아직도 이 게임기가 나온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잠시 망설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게임을 시작하자 낯선 곡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내가 아는 노래는 몇 곡 없었다.


그래도 하나를 골라 발판을 밟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다리가 아파왔다.

게임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면서 생각했다.


정말 늙었나 보다.



'펌프 잇 업'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음악에 맞춰 다섯 개의 발판을 밟는 게임이었다.


다른 게임기들이 자리에 앉아서 하는 정적인 방식이었던 반면,

이 게임은 몸을 움직이는 동적인 방식이었다.

나는 그 차이가 좋았다.


당시 Konami의 Dance Dance Revolution도 있었고

아무래도 그 게임을 '상당히' 참고한 것으로 보였지만

일단은 '아는 노래'가 나오니까.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문제는 인기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대기 시간이 '너무너무너무' 길었다.


관찰 끝에 나는 밤 열두 시가 넘으면

사람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에는 도서관도 오락실도

모두 24시간 문을 열고 있었기에

도서관에서 새벽 두 시까지 시간을 보낸 후

오락실에 들러 저 게임을 몇 판 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아. 당시 게임비가 1판에 500원이라는 고가였는데

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때로는 점심을 굶기도 했다.

살면서 이 정도로 뭔가에 몰두해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뭐. 하여튼.



졸업 후 몇 년이 지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오락실에서 그 게임기를 다시 만났다.

버전도 곡도 달라져 있었지만

게임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이 게임에 빠져들었다.



당시 나는 혼자 살고 있었고

집에 빈방이 하나 있었다.

게임을 하려면 오락실까지 가야 했고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 번거로움이 싫었다.

나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다.

중고 오락기를 파는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낸 후

대학 시절 내가 했던 버전의

오락실용 펌프 잇 업을 구입했다.

오래된 구형이라 기계가격은 백만 원 정도였다.

다만 오락실용이라 무게가 엄청났다.

운반비로 백만 원이 더 들었다.


게임기가 집에 도착한 날, 나는 행복했다.

좋아. 옛날처럼 매일 플레이하겠어.

다시한번 여기 있는 곡들을 전부 마스터하겠어.

그렇게 다짐했다.



한 달. 딱 한 달이었다.

처음에는 퇴근 후 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게임을 했다.

좋아했던 곡들을 플레이할 때는

옛날 생각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플레이 횟수가 줄었다.

게임기가 있는 방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흥미가 뚝 떨어졌다.

스스로 벌인 일이기에 억지로 다시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수록 더 하기 싫었다.


결국 구입한 지 일 년 후,

이십만 원을 들여 고물상에 넘겼다.



얼마 전 직원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살이 쪄서 실내사이클을 구입했는데

한 달을 못 넘기고 빨래걸이가 되었다고.


그 순간 펌프 잇 업 생각이 났다.

당시 기계를 구입하지 않고

오락실에 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는 좀 더 오래 그 게임을 즐기지 않았을까?

이렇게 뒤늦게, 쉰이 되어서야

다시 추억에 사로잡히지 않고 말이다.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번거로움이

열정을 지속시키는 요소가 아닐까 싶었다.



광안리 오락실을 나와 다시 바닷가를 걸었다.

다리는 여전히 아팠다.

게임기 앞에서 발판을 밟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새벽 오락실에서, 빈방에서, 그리고 오늘 광안리에서.

같은 게임이었지만 매번 다른 의미였다.


처음에는 유행이었고,

두 번째는 회귀였고,

세 번째는 확인이었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도달하기까지의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가 열정을 식히지 않고 오히려 지속시킨다.


펌프 잇 업은 여전히 광안리 오락실에 있다.

나는 가끔 그곳을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매번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시간은 지나버렸고

나 역시도 나이를 먹어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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