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로 뛰어들다.
몇 년 전부터 내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던 게 있었다.
"나는 디지털 노마더로 살 거야!"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를 했다. 끝없는 야근, 밤샘에 지쳐 우울감이 극에 달해 도망치듯이 나와버렸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프리랜서였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 불규칙적인 수입을 잘 운영할만한 경제적 관념이 없었던 나는 엄청나게 쪼들려 당장이라도 길바닥에 나앉는 상상을 하며 매일 걱정했다. 그리고 지인의 제안을 받아 스타트업 파운더(Founder)가 되었다.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바로 급여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프리랜서라는 직업이 나에게 줬던 극도의 불안감이 떠올라 '이것보다는 낫겠지!' 하며 뛰어들었다. 첫 달은 급여를 받지 못했지만 다행히 그다음 달부터는 받았다. 생각했던 만큼의 연봉은 아녔어도 사막의 오아시스급 존재감을 주었다.
2년 동안 스타트업에서 매우 다양한 일을 했다. 그리고 2년 사이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회사는 큰 성장을 하지 못했지만 직원이 몇 명 더 늘어났다. 나는 개인적인 일로 이사를 하고 회사도 더 비전 있는 곳으로 이사하면서 3분 거리 사무실이 왕복 3시간 거리가 되었다. 나에게 가장 큰 변화는 대표로부터 나의 업무 방식에 대한 제제가 들어왔다는 점에서 시작됐다. 이사를 하고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자 효율을 중시하는 나는 재택근무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컴퓨터만 있으면 되는데 어디서 어떻게 일하든 나는 나의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감당해야 할 직원이 늘어난 대표는 생각이 달랐다. 직원들의 형평성과 회사 운영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나의 희생을 제안했다. 4개월 동안은 주 5일을 출근해주길 바랬다. 약속된 4개월이 지나가고 나는 7개월 동안 왕복 3-4시간 거리를 운전하며 회사를 다녔다. 코로나라는 아주 대단한 역병이 돌아도 회사는 재택을 하지 않았다. 결국 거의 모든 직원들이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 동안 업무가 중단됐고 회사에 큰 타격이 오게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급등하는 유류비, 오가는 시간이 아까웠던 나의 불만은 점점 커졌다. 이런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았고 결단을 내려야 했다. 몇 번의 면담 끝에 지금은 주 4회 출근, 1회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다. 출근을 하는 날은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새벽에 일찍 나가서 오후 3-4시쯤 퇴근할 수 있다. 그토록 원했던 재택근무가 시작된 주에는 정말 너무나도 기뻤다! 집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 내려서 바로 컴퓨터를 켜고 앉는 그 짜릿함이란...
지금 나의 출퇴근 시간은 재택근무 덕에 주 15시간에서 주 12시간으로 줄었지만 어느 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타트업의 시작을 함께했다는 것, 대표가 좋은 분이라는 것 때문에 회사에 계속 남으면서 함께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회사의 구조를 생각하니 주 5일 재택근무가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회사는 계속해서 나의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서운할 것도 없다. 냉정하게 보면 회사는 원래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에 대한 나의 불만이 계속 커졌다. 가장 큰 불만은 재택근무를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사무실에 꼭 있어야 하는 게 아닌데 주 4일을 출근해야 하는 게 제일 싫었다.
'뭐가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내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살고 있나? 내가 정말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나?'라는 물음에 나는 '아니'라는 대답만 나왔다. 즉, 제일 큰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내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지 않는 삶을 선택해서 온 결과가 지금 나의 삶인데 다른 사람, 조건 탓을 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뭐지?'라는 물음에 '아직 모르겠는데. 일단 이건 아닌 것 같아.'라는 대답이 들린다면 길을 수정해야 한다. 나는 2년 동안 회사가 변화를 거듭하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주 5일 정해진 시간 동안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 벌 수 있는 돈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별로다. 일은 주 8시간이면 충분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차 타고 캠핑 다니고 사업, 언어를 위한 공부를 하면서 더 크게 성장하고 싶다. 그게 내가 꿈꾸고 이루고 싶은 행복한 삶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그러게.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방법이 분명히 있다는 거니까.
"디지털 노마더로 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