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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원 Jun 29. 2021

새벽은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_1

삼키지 못한 밤의 오프닝



초등학교 4학년. 45평 남짓한 넓은 집에서 세 가족이 촛불 하나로 몇 개 월을 버텨야만 하던 때가 있었다. 저녁 7시가 되면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일찍 해가 졌다. 우리는 어스름 해질 때쯤이면 각자의 방이 아닌 거실로 나와 촛불 주변을 에워싸고 앉았다. 얼굴에는 주홍빛이 일렁이었고 서로의 눈에 비친 불빛에 의지한 채 날이 밝을 때까지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티브이를 보는 대신 밀려있는 손빨래를 했다. 물먹은 빨래를 들어 올릴 때마다 작은 어깨는 옷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고꾸라졌다. 빨아도 계속 나오는 거품은 우리 가족이 처한 현실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차가운 물에 두 손 이 얼얼할 때면 가늠할 수 없는 엄마의 고통을 떠올리며 더 깊숙한 곳까지 두 손을 뻗었다.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저녁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저녁은 외식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았고 어두운 집 대신 선택한 곳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큰 대형마트였다. 하루살이가 밝은 빛을 보면 달려들듯이 우리는 대형마트가 보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가장 크고 번쩍이는 빛을 향해 달려갔다. 마트가 문을 닫으면 우리는 다시 컴컴한 집으로 들어가 그을린 심지에 불을 붙여야 했다. 엄마의 자는 얼굴에는 밤보다 더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엄마의 고단함을 알리는 코골이가 들리면 그제 서야 눈을 뜨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떠올리며 몸부림쳤다. 침묵과 씨름하는 밤은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 사람인지 알기에 충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없는 넓은 집을 떠나 마음껏 불을 켤 수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그날을 떠올리지만 가족들은 오랫동안 그날의 어둠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당장 눈앞의 시야를 가리는 어둠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그날 이후로도 서로를 부둥켜안고 더 아픈 현실을 버텨야만 했다.


수많은 밤을 뜬 눈으로 지새 봤기에 누구에게나 평온한 밤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긴 밤을 떼꾼한 눈으로 지새우고 나면 건조한 심장 잡음 만이 방안을 가득 메운다. 그날의 나를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이들의 밤을 더듬거린다. 그들의 밤도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그날의 밤이 있었기에 누군가의 밤을 헤아린다. 난 오늘도 눈을 감고 오늘의 밤을 삼키지 못한다.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말들을 머금은 채 누군가의 밤과 그날의 밤에 안녕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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