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잊혔던 소리.
길었던 야근이 끝나고 정말 오랜만에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야근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일을 며칠 반복하다 보면 점심시간에 잠깐 느끼는 햇빛을 제외하고는 봄이 왔다는 걸 느낄 여유가 없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낄 즘 재택근무 공지가 내려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아직까지 창문을 열어놓기에는 쌀쌀한 날씨였는데 그날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봄 내음이 한가득 밀려들어왔다. 몇 주 만에 찬 바람은 사라지고 따듯한 바람이 커튼 끝에 살짝 일렁이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따듯해진 봄기운을 느끼며 일을 했다.
점심쯤 됐을 때 고요했던 거실에서 ‘탁’ 하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탁, 탁, 탁, 탁 겨울에는 잠시 잊혔던 소리. 버티컬 줄이 바람에 흩날려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찾아올 때쯤이면 우리 집은 작은 바람도 새어 들어오지 않게 베란다 창문을 꽉 닫는다. 그러면 집 안은 바깥공기와 완벽히 차단된 채 긴 겨울이 끝날 때까지 인공적으로 튼 보일러의 온기만이 방안을 가득 메운다. 제법 봄 티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들리는 버티컬 소리를 들으니 잊고 있던 봄이 왔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올해 들어 가장 반가운 소리였다.
살짝 일에 여유가 생겨 묵혀뒀던 빨래를 널러 베란다로 나갔다. 겨울에는 추운 게 싫어 빨래를 너는 일에 소홀했는데 오늘은 열린 문틈으로 봄 냄새가 가득 들어와 빨래를 널고도 한참을 서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도 몇 분 집중하지 못하고 들어오는 볕에 정신을 빼앗겼다. 겨울에도 해가 떠서 볕이 들어왔지만 확연히 봄과 여름에 들어오는 볕과는 차이가 크다. 작년 겨울에 새로 방을 인테리어 하면서 여름 볕을 생각하고 가구 배치를 했는데 생각했던 만큼 예쁘지가 않아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기다리던 볕이 내 책상 위로 쏟아졌다.
내 방 창에는 전에 살던 세입자가 붙이고 간 시트지가 붙어있는데 격자무늬가 그려져 있어 나름대로 멋스러운 볕이 들어온다. 긴 고생 끝에 받은 선물 같아 한참을 카메라로 담았다. 이번 겨울은 유독 길게 느껴지는 계절이었다. 내 몸은 추워서 떨기보다 약해진 마음에 버들거리는 일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봄이 주는 힘은 부드럽고 온화해서 마음과 만났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준다. 유독 오랜만에 찾아온 것 같은 봄날은 버텨가는 일에 있어서 더 큰 자극이 될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른 이불에도 낮에 불던 봄 냄새가 기분 좋게 배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