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살았던 때가 있었다. ‘훌륭한 사람’의 모습이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이럴 때 ‘근자감’이라는 말을 쓰는 걸까.
그러다 나이가 들어 어느 순간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라는 노래 가사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던 순간이 있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충 이런 가사였던 거 같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부분이 확 와닿았다. 처음 들었을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나이 들어서 문득 가사를 곱씹어보니 꼭 내 얘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이 좋았을 때도 있지만 늘 닿지 않는 어떤 곳을 바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그 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어떤 에세이의 문구처럼 그렇게 원하는 삶으로 건너가 있을 거라고 꿈꾸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도 내 삶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막연히 꿈꾸던 미래의 어느 날을 지난 것 같은데, 이미 충분히 나이 든 것 같은데 그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아무 증명할 것 없이 달라진 삶을 꿈꾸던 나는 어느 순간 좌절감에 빠져버렸다.
어느 책에서 세월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쌓이는 거라고 했는데 내 시간은 그저 흘러가 버린 것만 같았다. 결혼 전에는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됐었는데 지금은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해야 했다.
책임감은 늘었는데 그것이 쌓여 ‘훌륭한 나’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에 예민해지고 소심해졌다.
혼자일 때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남편과 매일 싸우고 있었다. 싸우고 나서 돌이켜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싸울 일이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곤 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육아는 여전히 어렵다.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출산 후 나는 자주 아팠고 지금도 늘 몸 어딘가에 통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 핑계로 아이에게 충분한 것을 해주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차곡차곡 죄책감으로 쌓여갔다.
왜 결혼 전에 무언가를 이루지 않았을까, 후회도 해보았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일을 해도 일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았다. 일을 하면 아이한테 소홀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고 일을 하지 않으면 쉽게 무기력해졌다.
방송 일을 하며 꾸준히 이런저런 글을 써왔다. 지역 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소소한 상들도 받고 장르소설들을 이북으로 출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어린 시절의 근자감으로 어느 순간 내 삶이 달라지기를 꿈꾼다.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곰 마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입만 벌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뭐라도 하는 게 낫다는, 그 믿음 하나로 오늘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 외에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전에 비해서는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에이, 내가 뭐 특별한 사람이 되겠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언젠가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도움이 필요한 시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보고 싶다.
특별히 이룬 것도 없고 대단한 성과도 없던 삶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