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ONG손 엄마의 발도르프 인형 도전기(1)

by 담담글방

3년 전, 아이가 발도르프 학교에 편입할 때까지만 해도 살면서 다시 바늘 잡을 일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이런저런 만들기 이벤트가 많아 어느새 사부작사부작 따라 하다 보니 가지 소소한 결과물들이 남았습니다.


최근 어린이날 선물로 아이에게 줄 발도르프 인형을 만들다 보니 스스로 기특해지며 그동안 만들어 온 것들을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문 사진에 있는 무지개 인형들을 만들었습니다.(E.H어머니 제공 사진)

아이 학교에는 1학년 신입생들이 들어올 때마다 상급 학년에서 선물을 해주는 전통이 있는데 각 학년마다 선물할 품목들을 정합니다. 선물을 사서 주는 경우도 있지만 저희 학년은 항상 선물을 만들어주곤 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선물 만들기였습니다.


양모 펠트지를 오리고 바느질해 양모솜을 넣어 만드는 일곱 빛깔 무지개 인형 작업에서 가장 고난도(?) 작업은 바느질이었습니다. 버튼홀 스티치라고 처음 들어보는 기법이었습니다.


E.H 어머니 제공


막상 해보니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으면 실이 꼬여 다시 풀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하려고 하면 또 기억이 안 나서 옆에 앉은 같은 학년 어머니께 몇 번이고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올 해의 선물 만들기는 끝났습니다.


작년에는 아이들 식판 깔개를 선물했습니다. 예쁜 천을 재단하고 솜씨 좋은 어머님들의 재봉질로 완성했습니다. 금손 어머님들 덕분에 저는 도안과 오리기만 했습니다. 비교적 쉬운 작업이었습니다.


사진 E.H어머니 제공(유기농 아이 용품 브랜드를 운영하는 분이라 저희가 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 전해에 만든 건 실로 뜬 무지개 바구니입니다. 저는 다른 어머니들께 열심히 배워가며 두 개를 만들었지만 학년 대표님께 선물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저희 아이가 아주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왼쪽 사진이 제가 만들었다가 반려당한(!) 두 개의 바구니입니다.


선물은 다른 어머님들이 만든 것 중 가장 잘 된 바구니를 선별해서 해주었는데 선물용 바구니를 보면 제 건 반려당할 수밖에 없고 당했어야만 했다는 것을 쉽게 납득하실 것입니다. (오른쪽 사진입니다)





개인적으로 처음 만들었던 건 천으로 된 필통입니다. 도안에 맞춰 바느질을 해야 하는데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수준이라 언니가 도안대로 천을 다 맞춰준 후에야 바느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완성은 해서 보냈는데 그때 사진은 찾을 수가 없고 3년 써서 꼬질꼬질해진 현재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물론 몇 번 빨긴 했습니다만...)



혼자 끙끙대며 만들었던 필통과 달리 그다음은 알려주는 대로 따라가면 되는 마음 편한 작업이었습니다. 학교 어머님들과 함께 학급에 장식할 양모 천사 인형 만들기를 했는데요.


양모 인형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양모 바늘에 몇 번 찔려 피를 보기도 했지만 막상 해보니 엄청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아이 태어날 때 이후 처음으로 직접 만든 인형을 주는 것이 너무 뿌듯했습니다. 그날 배운 기술(?)로 주변에 선물해주기도 했습니다.


위 사진은 저희 학년이 만든 건 아니고 다른 어머님들이 만든 걸 샘플로 받은 사진입니다
저희의 결과물은 이렇습니다. 각양각색 어머님들 개성이 담긴 양모 인형이 완성되었어요.


재작년에 엄마들이 모여 반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들어준 땅속 요정 인형도 소개해봅니다. 대충 보면 산타할아버지 같기도 합니다.



땅속 요정을 만든 후 오랜만에 양모 만들기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라 이런저런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양모와 도구들이 잔뜩 든 상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아이들 공깃돌도 몇 개씩 만들어 학교에 보내야 했는데 첫 사진은 어항돌을 단단히 넣어 만들지 못해 제출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사진의 공깃돌은 학교에 제출할 수 있었고 가장 마지막으로 만든 공깃돌은 가장 퀄리티가 좋았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렸네요...


아이 신발주머니입니다. 다들 멋진 자수를 놓아주셨는데 저는 가장 쉬운 패턴으로 정말 급하게 해 줘서 아이가 불평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학교의 과업 중 유일하게 아예 시도도 못해본 것은 오이리트미 옷이었습니다. 저런 도안을 보고 만들어야 했는데 끝내 자본의 도움으로 완성해야 했습니다. 함께 일곱 분 정도가 주문 의뢰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애초에 바느질에 소질이 없습니다. 특히 도안을 보고 따라 하는 걸 못 합니다.


제가 얼마나 도안 보는 것에 재능이 없느냐 하면 저는 고2 가사 시간에 한복 저고리 만드는 수업에서 실기 빵점을 맞았습니다. 고2에다가 내신이 반영되는 실기였습니다. 점수가 실기 30에 필기 70의 비율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열심히 도안을 보고 저고리를 만들었는데 누가 봐도 희한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꼴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를 일으켜 세우시곤 제가 만든 저고리를 흔들어대며 혼을 내셨습니다.


“아이고,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만들 수가 있냐. 도안 안 보고 만들었어? 동정은 이 위로 바느질을 했어야지. 솔기 부분도 안으로 해야 하는데 이게 뭐니?”


뭐 대충 그런 얘기였습니다. 수업 시간에 진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혼자 집에서 해왔는데 도안을 보고 바느질을 한다고 했지만 시접이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위로 나오고 동정은 바느질 방법을 잘못 선택해서 너덜거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대로 제출하면 점수를 줄 수 없으니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오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고 저는 결론적으로 저고리를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들 중에 엄마가 해준 경우도 많았는데 저희 엄마도 딱히 그런 재주가 없으신 것 같았고 선생님이 그렇게 망신을 주셨는데 새로 과제를 해가는 성실성을 발휘하고 싶은 의지도 없었습니다.


가사선생님께서는 결국 제 한복저고리를 빵점처리하셨고 저는 덕분에 열심히 공부해서 가사 필기시험 만점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제가 몹시 괘씸했을 것입니다.


지금 그 에피소드는 하나의 재미있는 추억 정도로 기억됩니다. 내가 이런 거 얼마나 못하는지 아냐며, 한복 저고리 빵점 맞은 사람이라는 이력을 어필하면서 이 정도도 정말 기적 같은 일임을 같이 작업하는 어머님들께 어필해 봅니다.


그런 제가 아이 덕분에 다시 바늘을 잡게 된 겁니다. 막상 해보니까 욕심도 나고, 더 많은 것들을 만들어주고 싶기도 합니다. 인형 만들기, 뜨개질하기, 바느질하기 등등 단순 작업은 명상과 같아서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종종 피를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뿌듯합니다.


아이가 좋아할 때는 그 기쁨이 몇 배가 됩니다. 앞으로 또 무슨 과제가 주어질지 모르지만 또 열심히 배워보고 싶습니다.






아이 어린이날 선물로 발도르프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작년에 아이가 동네 축제에서 보고 사달라고 졸랐는데 이십만 원이 훌쩍 넘어 포기했던 인형입니다.


그때 인형을 사주는 대신 "엄마가 만들어줄게!"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인형 만들기 DIY를 사서 혼자 만들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사서주자니 너무 비싸게 느껴지는 데다 이미 열 살인데 막상 사주면 금방 관심이 시들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느덧 잊힌 인형이었습니다.


혼자라면 못했을 인형 만들기를 같은 학년 어머님이 아이 생일 선물을 준비하게 되어 함께 팀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발도르프 인형을 비롯해 다양한 수공예 만들기 강사로 활동하시는 아이 학교의 상급 학교 어머님 덕분에 총 5회 정도 수업을 들어 무사히 선물을 전해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선물한 인형의 완성본은 다음 기회에 공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발도르프 학교에 아이를 보낸다고 다 이렇게 만들기를 하는 건 아닌 듯합니다. 학교마다 학년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직장맘들의 상황도 있어서 기성품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제가 우리 아이 학교 좋으니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떠냐고 주변에 이런 이벤트를 소개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합니다. 본인들은 절대 못할 거 같다고요.

절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접니다. 정말로요...


어쩌면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했던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작고 소중한 것들을 만들었고 아이와의 추억도 그만큼 쌓이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