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을 준비

23.8.11

by 담담글방

언제부터였을까.


책을 읽을 때 밑줄 그을 필기구가 없으면 안절부절못하게 된 것이.


책 읽을 준비가 안 됐다고 여겨지던 것이.


카페에 책만 들고 간 날, 카운터에서 펜 하나 빌리는 게 어려워 그냥 짧게 읽고 돌아오기도 하던 날의 시작이.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 못 하는 그날부터 책을 빌려 읽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도 카페에서 책을 보는데 밑줄 그을 것이 없다. 오히려 좋은 글귀를 만날 때마다 덜걱거리며 진도가 안 나가 브런치 서랍을 열어 메모라도 한다.


결국 카페 사장님께 펜을 빌렸는데 하필 사인펜이다. 그거로라도 마음에 들어온 문장을 작게나마 표시한다.

빌려서라도 펜을 손에 쥐게 되자 갑자기 문장이 명료하게 눈에 들어온다.


읽고 있어도 시선 끝에 스치고 지나가던 문자들이 또렷하게 다가오는 신기한 경험이다.


잠깐이라도 빌리길 잘했다.


이상한 건 밑줄 칠 도구 없이 일단 읽은 후 나중에 다시 집에 가서 보면 그 문장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읽던 그때만 좋았던 문장일 수도 있다.


첫 느낌으로 밑줄 칠 때의 기분은 기억을 환기해 내서 할 때보다 강렬하다.


손과 눈이 함께하는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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