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外 6권

0116~0123

by 담담글방

20220116.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 안현주 엮고 옮김


챈들러가 창조한 개성 강하다는 캐릭터 필립 말로 탐정 이야기는 못 읽어봤다. 그의 글은 읽어본 게 단편집 한 권 정도인데 무척 독특하다고 느꼈다. 작가들의 글과 관련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고 제목도 좋아서 사보게 되었다.


실업자가 된 챈들러는 아내와 함께 크루즈를 타고 태평양을 돌다가 불현듯 소설을 쓰겠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이때 나이가 44세였다... 1939년 51세의 나이에 마침내 첫 장편 소설인 <빅 슬립>을 출간했다. 1945년 무렵에는 '챈들러리즘'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소설가로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작가들이 쓴 글쓰기에 대한 에세이나 서간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글을 쓰는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이야기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추출해야 하지요. 아무리 말을 아껴도 장기적으로 보자면 글쓰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스타일이고, 스타일은 작가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입니다. 스타일에 대한 투자는, 성과는 느리고, 에이전트의 비웃음과 출판사의 오해를 살 겁니다. 그러다 서서히 당신이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겠죠. 글을 쓰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작가는 항상 성공할 거라는. 노력한다고 되지는 않아요. 내가 생각하는 스타일이란 개성을 반영한 것이고, 개성을 반영하려면 먼저 개성이 있어야만 하니까요.


이 책에는 챈들러가 다양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그 안에 당대 유명한 작가들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언급하는 내용이 많은데 그 표현에서 역시 그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


시릴 코널리 씨가 그나마 남들보다는 무딘 칼을 던지며, 헤밍웨이는 육 개월 정도 휴가를 떠나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더군요. 이 말에 숨은 의미는 헤밍웨이가 그동안 사춘기적인 자세를 활용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갈채를 얻었으니 이제는 지적으로 더욱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왜요? (중략) 헤밍웨이가 쓰는 작품들은 감정이 메마른 송장들은 쓸 수 없는 것들입니다. 코널리 씨가 쓰는 것들은 송장도 쓸 수 있고, 쓰고 있죠. 그런 것도 나름 장점이 있고, 어떤 건 아주 훌륭하기도 하죠. 다만, 그런 글을 쓰기 위해 굳이 살아 있을 필요가 없을 뿐입니다.

한때 신랄하게 비판하던 헤밍웨이에 대해 아마도 그 나름 최대한 좋은 표현을 한 것이리라. 거침없고 기발하다.


전에 봤을 때는 이상하게 썩 안 읽혔던 챈들러의 다른 책들도 오랜만에 읽고 싶어진다.




20220117

-일기 (완독) / 황정은 지음 / 창비


200페이지가량의 짧은 에세이지만 그 안에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근력운동을 줄였다. 어느 날 저녁에 플랭크로 4분을 버티다가 눈물이 나서, 내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이튿날부터 하지 않았다. 3월과 4월 내내 플랭크를 하지 않았다. 백 스쿼트와 밀리터리 프레스, 데드 리프트는 횟수와 무게를 줄였고 푸시업은 생각날 때만 열 번씩 한다.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서. 그 대신 일주일에 나흘은 산보를 다니자고 마음먹었다. 산보마저 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앉아서 읽고 쓸 수 없다.


글은 저자가 집에서 키우는 식물의 이야기를 할 때도 다소 낮게 가라앉아 있다. 어쩌면 '일기'라는 제목에서 기대되는 소소하고 가벼운 이야기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일기'라는 사적 영역의 글쓰기인 제목이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흔(痕)'이라는 챕터였다.


그러나 지금 내 삶은 그 일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 말고도 다른 일들이 내 삶에 있었고 나는 삶과 읽기와 쓰기를 통해 조금씩 학습하면서 본의든 아니든 조금씩 변해왔다. 그 일은 내 전부가 될 수 없다.
(중략)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그 일을 말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문득 말하기 시작했고 말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그 일을 말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았다. (중략)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떤 사람들에겐 결코 심상할 수 없고 평범할 수 없으며 지나가는 말이 될 수 없는 말. 그 말을 읽은 덕분에 나는 이 글을 썼다. 그리고 굳이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그 수치심은 당신의 몫이 아니라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아니라고.


길게 썼던 글을 지운다.


어떤 날들의 기록이고
어떤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이기도 해서,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들이 잘 피해 갈 수 있도록 '일기'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중략)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마음들을 나도 사랑합니다.

다들 평안하시기를.


평안하시기를. 나도 작가님의, 그리고 어디선가 혼자만 아는 피해 사실에 고통받는 분들이 평안하시기를 기도해본다.





20220118

- 마음의 발걸음 / 리베카 솔닛 지음 / 김정아 옮김 / 반비



리베카 솔닛의 아일랜드 여행기. 저자의 다른 <멀고도 가까운>을 재미있게 봤는데 아일랜드 여행기는 좀 더 읽어봐야 할거 같다.






20220119

-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올 한 해 정말 좋은 평을 받고 많이 읽힌 에세이 책이다. 많은 작가가 언급하고 알라딘에서는 2021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계절 출판사를 좋아하기도 하고 표지도 귀엽고 평도 좋고, 책을 안 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독서지도사인 저자의 눈에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 그들과 함께한 풍경, 어린이라는 세계를 존중하는 배려와 애정에 읽는 동안 마음이 따듯해진다.


내 아이에게 어떤 특정 행동을 지속해서 미워지려는 아이가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 글을 보는 동안 그 아이 입장에서 좀 더 이해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0220120

- 럭키/ 김도윤 지음/ 북로망스

저자는 현재 '김작가 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11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자기 계발과 투자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성실함이 가장 큰 미덕인 시절도 있었다. 해가 뜰 때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성실히 일하면 그럭저럭 잘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21세기에는 '스마트한 성실함'이 필요하다. 단순히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앞서 소개한 유튜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유튜브 채널 운영이 잘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실함이 미덕이라는 이유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잘 안되고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뒤집어서 하나씩 바꿔봐야 한다.


실패의 이유를 알고 변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 와닿는다.


하지만 제가 더 강조하고 싶은 얘기는 처음에 운이 좀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계속 밀고 나가라는 거예요.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 끝까지 도전하거든요.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 왜냐면 성공할 때까지 하기 때문에!' 이런 정신으로 하니까 성공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20220121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 정창권 지음 / 돌베개



조선시대 살림하는 남자라니, 기획이 재미있게 와닿았다. 자료조사겸 도움이 될 부분이 있을 것 같아 구매했다.


추사는 1840년에 55세의 나이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이때 추사 곁에는 노비 두 명이 있었다. 다음은 유배 3년째인 1842년에 추사가 예산 집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이다.

- 갑쇠(노비)가 시절병(전염병)으로 앓아 지내더니 무사히 출장을 시켜 지금은 염려를 놓사오나 그 사이 그런 심려를 어찌 다 적겠사옵니까? 한의(노비)도 감병을 시키느라 즉시 못 보내고 이제야 보내오며, 이 동네에도 차차 조금씩 시절병이 진정되어가니 다행이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부인에게 존칭을 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 극존칭을 하는 편지는 새로웠고 노비의 상황과 다른 살림살이에 대해 유배지에서도 챙기는 모습이 인간적으로도 정감이 갔다.

조선시대에는 부부 사이에도 서로손님을 대하듯 예의를 지키고 공경하며 살아가는 것을 이상적인 부부관계로 보았다. 그것이 바로 유교, 성리학적인 부부관이었다.


우리 부부도 서로 손님을 대하듯 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본받아야할 거 같다...


높은 벼슬에도 생각보다 궁색했던 양반의 살림살이와 그걸 조선시대 남자들이 어떻게 기록하고 부인과 싸우기도 하며 꾸려갔는지 재미있어서 술술 읽힌다.




20220122

- 책 한번 써봅시다 / 장강명 글 아내 그림 / 한겨레출판


기자 출신 작가가 쓰고 아내가 그린 책 쓰기에 대한 조언.


결국 돌고 돌아 '나는 무엇을 쓸 것인가, 나는 어떤 작가인가'의 문제다. 이것이야말로 초기에는 직접 써보며 발견하는 수밖에 없다.




매일 15분 책 읽기는 꾸준히 하고 있지만 한줄이라도 기록을 남기는 일은 자꾸 밀려서 숙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