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용 식탁

유부현×고경현×고지은 / 자금이책

by 담담글방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프로그램에서 만나 거의 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K 선배한테 연락이 왔다. 알라딘으로 책을 선물했는데 받을 수 있냐고. 크리스마스 선물 같아 기쁜 마음으로 '선물 받기'를 수락하고 연말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오래 걸려 책을 받았다.


언니가 좋은 사람이라 그런지 언니에게는 좋은 지인이 많았는데 이 책을 쓴 저자 중 한 명도 그런 분 중 한 분이었다.


언니는 책을 보내며 '좋은 사람', '좋은 글'이라는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모르는 작가님의 글이지만 표지부터 흥미로워 책을 빠르게 읽어나갔다.


책의 저자가 세 명이기에 언니의 지인은 그중 한 분이겠거니 했는데 세 명의 저자가 가족이었다.

한 집에 사는 엄마, 아들, 그리고 딸.


'온 가족 작가 되기 프로젝트'는 19년 차 라디오 작가인 딸에게서 시작된다.


방송 작가 J는 '몇 해 전부터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처럼 하루가 다르게 스러져가던' 엄마를 '일으켜 세울 묘안이 필요'해 70대인 그녀에게 '보조작가'라는 타이틀을 준다.


J는 어머니에게 '방송 대본의 소재를 찾는 일에서부터 문장을 완성하는 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 알려드렸고...1천 원, 2천 원의 고료'도 드렸다. 그 후 어머니는 '해처럼 빛나는 얼굴을' 자식들에게 다시 보여주셨다고 한다.


그 과정이 짧은 몇 줄로 압축돼 있지만 글과 상관없이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글 쓰는 기쁨을, 오랜 기억을 끌어올릴 기회를 주는 딸의 사랑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책은 챕터마다 어머니, 아들, 딸의 순서로 이어지는데 중간중간 서로에게 쓰는 편지가 있어 가족 간의 애정과 추억, 평소 하지 못한 마음들을 담아낸다. 사실 책 전체가 서로에게 쓰는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머니 유부현 작가님의 글은 72세에 처음 글을 쓰신 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울림을 준다.



어느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눈물이 핑 돌며 부모님 생각이 나기도 한다.


작가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묘사는 우리 아버지와 많은 부분 닮아있어 놀랍기도 했다. 유부현 작가님과 우리 아버지가 동년배인데 아빠에게 들은 할아버지 이야기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 데다 외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도 있어 부모님께 들은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정말 오랜만에 떠올려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저자는 일식집을 하던 중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빈 가게를 지키는 날이 많던 J의 오빠였다.


그분 역시 동생의 권유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쓰기 우성 유전자가 따로 있는 건지 덤덤하게 써 내려간 솔직한 글들에 어느 순간 빠져들었다.



글을 쓴다는 게 뭘까? 당년히 글을 쓰지 않아서 잘 몰랐다...글을 쓰다보면 내 안의 감성이란 것이 폭발할 때가 있다. 친구들이 들으면 대체 왜 이렇게 됐냐고 껄껄 웃겠지만 예전 같으면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대신 예약명부의 뒷장을 펴놓고 글을 쓰기 시작한 고경현 작가님은 지금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신다고 한다.




세번째 저자, 19년 차 라디오 작가인 J의 글은 문장마다 곱씹어보게 되는 부분이 많다.



저는 심지어 내가 하고 싶었던 표현을,
이미 누군가 한 걸 보면
그 종이를 찢어서 먹고 싶었어요.
글에 대한 갈증, 갈급함, 배고픔이 너무 커서.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엄마에게 해주는 J의 말에서는 저자가 평소 어떤 마음으로 글을 대하는지가 느껴진다. 굳이 비교할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쓰려던 표현, 나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른 곳에서 보면 '아, 사람 생각은 다 비슷비슷한가 봐.' 이러고 넘어갔던 나는 얼마나 가벼웠나 싶은 생각도 잠깐 스쳐 지나갔다.


고지은 작가님이 쓴 내용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이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갔던 날의 추억을 편지 형식으로 쓴 내용이다.


'물고기가 안 잡혀 시무룩해 있을 때 어디선가 북소리, 꽹과리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네 사람들이 대야랑 양동이를 들고 바닷가로 몰려왔잖아.'


'먼 바다 어선들이 그물몰이를 했을때 멸치떼가 길을 잘못 들어서 바닷가로 온 거였고' 그날 저자의 가족들도 신나게 멸치떼를 퍼올렸다.


잔멸치가 아니라 손바닥만한 멸치를 구워 검댕을 입에 묻히고 먹던 순간의 감정과 집집마다 생선을 구워 연기를 피워올리던 공간의 묘사는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주는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잊히지 않는 맛과 순간을,

가족끼리 그런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게, 우연히 멸치떼가 몰려들던 그 바닷가에 그 순간 있었다는 것이 마치 영화처럼, 동화처럼 벅차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재 세 개의 프로그램에서 일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구름과 숲을 찾고 자신을 찾는 글쓰기도 꾸준히 하는 저자의 모습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치열함을 잃어버린 나는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양희경님의 추천사처럼 나도 가족들과 함께하는 글쓰기 프로젝트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평범해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