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글 최혜진 / 사진 신창용 / 은행나무

by 담담글방
우리가 흔히 못생겼다고 치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전 그 사람만이 가진 선과 형태감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요. 그림 그리는 사람들 특징 같기도 한데 사실 전 모든 존재는 아름답다고 믿습니다.

- 조엘 졸리베


어른이 되어 본 그림책이라고는 장 자크 상페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 , 앤서니 브라운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장 자크 상페의 글과 그림은 좋아했지만 앤서니 브라운의 책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앤서니 브라운 전시회는 두 번 정도 간 적이 있는데 한 번은 결혼 전 남편과 데이트할 때였고 두 번째는 아이와 갔었다. 특별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리고 '알사탕'의 백희나 작가님까지, 그림책 작가라면 그렇게 유명하신 분들만 알고 있던 정도였다.


굳이 그림책을 사서 볼 생각도 못하고 별 관심도 없다가 아이 책을 사주고 읽어주면서 조금 관심이 생겼다. 글이 하나도 없는 어떤 그림책을 보면서는 펑펑 운 적도 있고 아이가 선물 받은 그림책을 보면서 마음이 따듯해지기도 했다.


아이에게 어떤 책을 사줘야 할까, 그 부분에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서점 가서 아이와 함께 골라도 성공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고 베스트셀러를 사줘도 왜 인기인지 모를 책들도 많았다.


그래도 아이 덕분에 좋은 그림책을 접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좋은 글과 그림을 보다 보면 그림책을 쓰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림은 못 그리지만 미술을 전공한 언니를 꼬셔서 함께 그림책을 내보자고 설득하던 즈음이었다.


알라딘을 둘러보던 중 그림책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 있어 어떤 그림책 작가들인지 어떤 내용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내용이 좋으면 언니에게도 선물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책을 받은 날, 가벼운 마음으로 훌훌 넘기다가 색연필을 가져와 밑줄을 마구 긋기 시작했다.


그림책을 그리고 쓰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멋진 걸까? 다른 작가들 인터뷰를 볼 때보다 마음 따듯해지는 부분들이 참 많았다.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처럼 '메두사 엄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 머리카락으로 자신과 아이 주변에 거대한 보호막을 치고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갑니다. 엄마의 과도한 관심과 소유욕을 내려놓고 아이와 함께 의논하면서 균형을 잡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엄마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아이 덕분에 엄마로 만들어지는 거라고요... 부모와 자녀의 만남은 다른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두 우주가 만나는 겁니다. 한 우주가 다른 쪽을 잡아먹어선 안 돼요.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니까요.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이의 행복을 먼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 창작자의 마음가짐과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솔직하고 따듯한 인터뷰가 이어졌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던져야 할 질문은 '내가 정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입니다. 어느 창작 분야든 테크닉이 훌륭한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만의 이야기를 할 줄 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방향성 찾기는 혼자서 자연스럽게 이뤄내야 하는 과업입니다. '좀 못해도 상관없어'라고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어요.

- 올리비에 탈레크


생각 이상으로 굉장히 치열한 세계였지만 그 속에서 다음에 쓸 이야기를 두려워하면서도 몹시 행복해하는 작가들의 인터뷰에 어쩐지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 책에서 담은 10인의 작가는

안 에르보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벵자맹 쇼

클로디 퐁티

에르베 튈레

이치카와 사토미

조엘 졸리베

키티 크라우더

올리비에 탈레크

세르주 블로크.


잘 모르는 작가들이지만 그들의 말을 한 줄도 허투루 듣게 되지 않았다. 이렇게 멋진 그림책 작가들이 많다니! 페이지마다 감탄하며 종이를 넘겼다.


전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예술가는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예술가가 하는 일리 대개 혼자만의 공간에 앉아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작품 생각만 하는 건데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장된 자의식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기 안에 함몰되기보다 세상을 바라보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새로운 경험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봐야 합니다. 그래야 한계를 조금씩 깨면서 성장할 수 있어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상상해보는 게 공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게요. 공감 능력이 없으면 상상도 허약해질 수밖에 없답니다.

-올리비에 탈레크


살 때는 몰랐는데 이 책은 제2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이다.


무려 6,708 킬로미터를 이동해 열 명의 작가를 인터뷰한 최혜진 작가님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저는 먹고사는 문제보다 아이가 삶의 재미와 기쁨을 잃는 게 더 걱정되거든요. 아이가 힘든 길을 선택하더라도 본인이 좋고 자유로움을 느낀다면 저 역시 그 선택을 믿습니다. 창의력에 대한 조언요? 호기심을 잃지 말 것. 열려 있을 것. 늘 같은 방식으로만 생각하지 말 것.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것. 자신에 대한 확신을 너무 갖기보단 두려워할 것. 단, 즐거움을 놓치지 말 것. 두려움과 즐거움 사이에서 균형 잡는 것이 어렵겠지만, 그 둘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나아가는 게 인생의 본질이라고 가르쳐주죠.

-세르주 블로크


10인의 작가님들의 멋진 아틀리에도 기억에 남는다. 아틀리에를 장식한 소품과 책들, 공간이 주는 정서가 참 좋았다. 언젠가 그런 멋진 작업실을 가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