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정리를 시작했다

윤선현 지음 / 인플루엔셜

by 담담글방

정리에 관한 책을 서너 권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 둔 지 몰라서 사놓고 못 읽은 게 1년은 되는 것 같다. 이사 온 지 그 정도 되었는데 이전 집에서 쓰레기까지 몽땅 들고 오는 바람에 정리할 게 많을 때 관련 책들을 구입한 걸로 기억한다.


오늘 이 책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알라딘 굿즈로 산 다이어리들을 찾으려고 이방 저 방을 뒤졌던 덕분이다. 네 개의 다이어리는 찾았지만 하나는 여전히 어디 둔 지 모른다. 그래도 정리 책까지 찾을 수 있었으니 예상외의 성과였다.


책은 표지의 책날개 문구부터 시선을 끈다.



정리는 테크닉이 아니라 인생설계입니다.



저자 윤선현 님은 대한민국 1호 정리 컨설턴트라고 한다. 정리 컨설턴트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에 정리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전국을 다니며 2,000여 건 이상의 컨설팅'을 하고 '2018년 드라마 <당신의 하우스 헬퍼>의 캐릭터 자문을 맡았으며 동명의 원작 웹툰은 그를 작중 롤 모델로 삼아 연재 중'이라고 한다.


인트로의 문구는 마치 내가 쓴 것만 같았다.



모든 일이 내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다.
어지러운 공간이 내 삶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언젠가 정리를 하겠지만,
'언젠가'가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다들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놀다가 친하게 된 엄마가 있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서 놀고 싶다는 아이들의 아우성에 갑작스럽게 우리 집으로 갔다. 집이 지저분하다는 말에 "저희도 그래요"라며 들어오더니 막상 집을 보고는 "정말 심하네요"라며 지저분하다는 말이 으레 하는 말인 줄 알았다고 했다.


정리를 못해서 굉장히 너저분해 보이긴 했지만 쓰레기를 쌓아두거나 먼지가 많은 상태는 아니고 벌레를 무서워해서 몇 년째 세스코 서비스도 받고 있었다. 나는 물건이 바닥에 많을 뿐 위생에는 문제가 없다며 급한 대로 바닥을 정리했고 이후 표현이 직설적인 그 지인은 처음 우리 집 왔을 때 '개판'이라 놀랐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는 집을 그 꼴을 해놓고 사람을 초대했다며 깜짝 놀라셨고 우리 집에 오시는 날이면 늘 한숨을 푹푹 쉬시며 집을 치워주곤 하셨다. 본인이 잘못 가르쳤다는 자기반성과 함께.


원래부터 정리를 못하는 편이긴 해도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루 스무 시간씩 잔다는 신생아 때도 아이는 잠을 안 잤는데 움직이는 모빌이며 바운스며 이런저런 잠재우기 용품들을 사들여도 소용이 없었다. 낮잠을 15분 이상 안 자는 아이를 키우며 보육기관에 보내지 않고 하루 종일 있다 보면 밥과 간식을 차려주고 빨래를 여러 번 해서 널고 개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가쁘게 지나갔다. 아이 낮잠을 재우며 함께 잠이 든다는 엄마들의 얘기를 들으면 부럽기만 했다.


아이는 밤에도 네다섯 번 이상 깼는데 몸은 늘 무겁고 너무 졸려서 잠을 좀 푹 자고 싶은 마음에 병원에 입원이라도 해서 푹 자고 싶다고 입방정을 떨다가 실제로 유선염으로 입원한 적도 있었다. 너무 아파서 잠을 푹 자기는커녕 팔을 들어 올리기도 힘들고 염증이 안 잡혀 아침마다 주사기 몇 개씩 화농을 빼내던 고통만 이어졌다.


남편이 육아에 집중하기 전까지는 곧 이사갈 집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상태로 살았다. (실제로 욕실을 수리해주러 오셨던 설치 기사님이 조만간 이사 가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시기도...) 그게 아이한테 너무 미안하다.


그런데 작업실을 얻어 혼자 있으면서도 점점 지저분해지는 공간을 보며 자꾸 이 공간에 오는 게 처음처럼 기쁘지 않았다. 책 제목처럼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은 진즉부터 찾아왔지만 지금이 어쩌면 더는 버틸 수 없는 그런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정리를 통해 얻으려 하는 것은 '정리된 그 상태'뿐이 아니다. 정리는 목적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심플한 삶을 통해 이루고 싶은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 정리라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책을 읽다 보니 나도 아주 작은 정리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정리를 안 해두면 그게 필요할 때 다시 사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그 결과 고양이 발톱깍이가 세 개라던가, 비슷한 기능의 믹서기는 네 개라던가, 양말이 짝이 안 맞아서 새로 살수록 더욱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이 많아진다든가 하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흰색 티셔츠가 필요해서 샀는데 사자마자 안 보여서 또 샀더니 바로 찾게 되어 돈만 낭비하는 그런 일들이 매일 반복되고 있었다.



불안과 행복은 상호 배타적이다.
미루기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잠재된 불안은 일상의 평화와 행복을 잠식한다. 그러니까 '미루지 않기'는 작은 일이 아니다.


밑줄을 쫙쫙 그어가며 읽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여도 이렇게 다시 보고 조금이라도 변하려고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그렇게 믿으며.


이 책을 읽은 후 침대 위 책들을 치우고, 화장실에 쌓아둔 쓰고 난 클렌징 솜들도 치우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