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임부

by 따따따

아파트 단지 뒷쪽에 사는 고양이들에게 가끔씩 파우치를 까준다. 지난 겨울 언제던가 들렀을때 정기적으로 먹이를 챙겨주는 아주머니가 한 분 있었는데 요새는 마주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쪽에 가서 기척을 내면 매번 어떤 고양이던지 큰 경계심 없이 나오는 것으로 봐선 실은 그 주위에 그들 먹고 살 길을 열어주는 다른 분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분식집과 요양원이다.)

나는 자주는 아니고 가방에 먹을게 있을땐 주고, 지나갈 일이 생기면 준다. 정기적으로 줄만큼 부지런하거나 책임감 있는 사람은 못되니까.

동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가급적 어두울때 파우치 두어개 까주고 치우는 정도.

산 입은 불쌍하다. 깨끗한 먹을 것을 약간 나누는 것 정도는 사람으로 태어난 아량이면 조금 양보해도 충분하다. 나는 사람한테 기부도 하니까 동물을 두고도 이런 말 할 자격 있겠지ㅋ.

여튼 한번은 주위에 가니 배가 불룩하니 젖이 불은 암코양이 한마리만 자동차 밑에서 뇽-한다.

배가 얼마나 부른지 뱃속에 적어도 일곱마리는 들어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나오더니 돌위에 까준 파우치를 먹는데, 아마 가벼운 놈 같으면 폴싹 뛰어올라 몸을 최대한 풀숲에 숨긴 후 잽싸게 뇸뇸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만삭의 고양이는 앞다리 두개만 겨우 올리고 힘겹게 먹었다. 배는 무겁고 날은 더워오고 지쳐서 돌 한칸 오를 기력도 없는 게구나.

그런데 그 사이 새끼 데린 어미 한마리가 살금살금 내려와 고양이 임부가 먹는 모습을 몹시 빠안히도 보더니만 냉큼 자기 새끼를 내려보내서 같이 먹게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고양이 임부는 새끼고양이에게 엄청난 경계의 표시를 내었지만, 위에서 그 어미가 빤히 보고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긴 그 어미도 아주 돌깡패는 아닌게 자기는 입 안대고 새끼만 보내 먹게 하는게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하는 모양새였다.

만삭의 고양이댁은 있는 힘껏 큰 소리로 저리가-저리가-해도 이 발랑 까진 어린것은 든든히 뒤에 버티고 서서 레이져를 쏘고 있는 제 어미 빽을 믿고 얼굴 한번 들지 않고 양껏 먹고 있는걸.

그런 만삭댁이 가엾어서 내가 가서 좀 저지해주고 싶었지만, 고양이 싸움 재밌다고 오며가며 구경하는 주민들 눈치 때문에 구석진 데서 기다렸다가 어린것과 어미에게 핀잔을 주며 새 파우치를 까주고, 뒤로 밀린 만삭의 고양이댁을 다시 불러다 앉혔다.

이리와-와서 먹어도 돼.


만삭의 고양이댁은 그 이틀후에 한번 더 만난후론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새끼는 다 낳아서 거두긴했을까.
짧은 장마 그 이후엔 엄청난 더위가 계속되었는데 과연 식구 건사하는데 성공했을까.
배가 불룩해가지고 혼자 힘겹게 다니던 그 모습이 마치 있지도 않은 여동생 같이 느껴져서 마음이 오래 오래 짠했던 바람에.
요새 마음이 약해지고 눈물이 흔해져서 별 것 갖고 입안이 다 짭짤해진다니까...

너무 더워서 그 쪽으로 가본지도 오래되었다.

며칠전 저녁에 만난 아파트 단지 공동수돗가 주변 어스름한 나무밑에 새끼 두마리를 데리고 타달타달 쉬러온 어미를 보니 만삭 고양이댁 생각이 나서 마지막 남은 파우치를 하나 까서 주니, 팔랑팔랑 소리도 없이 도망가던 어린것 둘을 불러세워서 제법 노련해보이는 삼색의 젊은 어미가 셋이 머리를 가지런히 맞대고 나눠먹는다.

만삭 고양이댁도 누군가의 기껍고 고마운 나눔으로 한끼 정도는 무사히 수월케 넘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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