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책상에 엎드려 한참 달게 자는데 누가 내 귀에다 이어폰을 꽂는 바람에 깜짝 놀라 푸드덕거리며 잠을 깨어 닭처럼 화를 내며 이어폰을 빼 던졌다. 이어폰의 주인인 부반장이 야야 정신 차려 이어폰이야 진정해 노래가 너무 좋아서 들어보라고 한 거라며 다시 꽂고 들어보란다. 잠이 덜 깬 나는 혓바닥이 꼬여서 투덜대며 뭐야 이게 귀신 나올 거 같은 노래라고 닭처럼 썽 내면서 다시 책상에 엎드렸었다. 그때 부반장이 이거 이상은 노래라고 했었는데 그게 공무도하가라는 곡이었다.
한참뒤에 갬성 돋던 대학생이 되어 싸이월드에 ㄴㅏ는 눙물을 흘린다 류의 이야기를 갈기고 소리바다에 불법음원이 자유롭게 파도치던 시절에 공무도하가를 다시 만났다. 완벽히 꽂혀서 아쉬운 대로 이상은의 공무도하가 영어 앨범을 사고 닳도록 들었던 적이 있었다(공무도하가 앨범은 절판이었다) 이상은 언니는 공후를 타며 눈물을 흘리며 노래했을 백수광부의 처처럼 노래를 불렀다. 부반장은 조숙한 아이였는지 이런 심오한 곡을 고딩때 듣다니 역시 상위권은 달랐다. 공무도하가의 백수광부 스토리에 어쩐지 단단히 반해 김훈 작가의 공무도하 소설도 읽었더랬다. 한동안 닳도록 듣다가 그 CD는 어디 갔는지 행방도 모르고, 신비한 고대의 이야기보다는 근거에 기반한 현실에 몰두하고 사는 지금이다. 지난밤에 에어컨 때문에 다리가 시렵더라니 폭풍우 치는 강의 출렁다리를 위태롭지만 무사히 건너는 꿈을 꾸어서인가 아무 관련도 없는데 갑자기 공무도하가가 생각났다.
公無渡河공 무 도 하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공 경 도 하
임은 끝내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타 하 이 사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당 내 공 하
가신 임을 어찌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