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호박죽

늙은 호박으로

by 따따따

딱 요맘때 즈음에 누렇게 늙은 호박속을 긁어서 할머니는 호박죽을 끓였다.

주황색으로 잘 익은 호박속과 하얀 찹쌀새알과 노란 좁쌀에다 검정 서리태를 넣어서 끓인 호박죽.

뭐 딱히 엄청 맛있고 그런건 아니고 쫄깃한 새알 건져먹는 맛에 먹을 때도 있고 그랬지 뭐.

간혹 찹쌀 반죽이 질어서 새알이 완전 팍 퍼져버리면 죽이 아니라 범벅이 되곤 했는데, 그게 더 맛있었다. 그럴때면 할머니는 죽이 잘못 되었다며 혼자 자책했는데 이게 더 맛있데이 하면 맛이 있느냐며 그럭저럭 흡족해했다.

동짓달엔 어차피 팥죽도 해야되고, 굳이 호박죽 같은거 안 끓여도 먹을게 지천이니 엄마는 그다지 탐탁찮아 했지마는 할머니는 꼭 이맘때 끓였다.

엄마는 또 본디 죽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

이 집은 툭하면 무슨 죽이든 죽 끓여서 처치하는게 일이라고 손사래 치며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 엄마,이집 씨인 나도 죽을 좋아하지 흐흫.

얼마전 집에 들렀더니 엄마가 아들 며느리와 함께 호박 속 긁어서 전 부쳐먹은 이야길 하는데, 할머니가 끓이던 호박죽 생각이 나서 잠시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런 날도 있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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