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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Aug 20. 2020

캔 이야기

한 개에 오 센트씩

 그냥 그런 날이 있다. 커피를 마셔도, 맛있는 밥을 먹어도, 알뜰하게 장을 보며 제법 충실하게 하루를 보내도, 기분 좋은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따스한 늦은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달리고 와도,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쳐지는 그런 날이. 아내가 아침 열 시부터 자정이 넘게까지 집안일을 하고, 장 본 재료들을 다듬고, 김치를 담그고, 조만간 내가 놀러 간다고 싸줄 도시락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애매하게 늘어져만 있었다. 이럴 때는 뭔가 하려고 애쓰기보다도 일찍 자는 것이 제일이다.

 다음 날 아침, 알람을 맞춰 놓지 않았는데도, 고양이들의 노랫소리에 잠을 깬 것도 아닌데도 상쾌한 기분과 함께 눈이 떠졌다. 정신이 들자 여느 때처럼 방문 앞에서 보리, 구름이의 '으아옹! 믜애옹!' 소리가 들려와, '아홉 시겠거니' 생각하며 나간 마루에는 찬란한 한여름 햇빛의 냄새가 가득했다. 오늘은 정신도 맑고, 내 마음속에 에너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러한 하루가 찾아왔음에 감사한 마음을 안고, 커피를 올리고, 세수를 하고, 그동안 이 에너지를 어디에 쓰면 좋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두어 달 동안 잘 밟아서 모아둔 알루미늄 캔들 생각이 나 모처럼 재활용 센터에 가져다 팔기로 했다.


 플라스틱이나 유리병, 혹은 알루미늄 캔의 재활용을 장려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는 California Refund Value (CRV)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용기에 담긴 제품을 구매할 때 소비자는 재질에 따라 5센트나 10센트씩 추가로 지불하고, 그 용기를 재활용 센터에 가져다주면 그만큼씩 다시 돌려받는다. 보증금 같은 개념이다. 우리의 생활에서 이렇게 CRV가 붙는 재활용 가능한 유리나 플라스틱 용기는 많이 발생하지 않지만, 나의 맥주 생활로 인해 발생하는 알루미늄 캔의 양, 그리고 그에 따른 CRV 비용은 무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마시는 맥주 캔을 잘 눌러 밟고 모아, 한, 두 달마다 재활용 센터에 가져다주고 보증금을 받아 온다. 

재활용 센터

 처음으로 캔을 모아 보증금을 받으러 갔을 때에는 조금 긴장이 되었다. 재활용 센터에 길게 늘어진 줄에는 홈리스(Homeless)나 노인, 사회적 혹은 경제적 약자들, 인종으로 따지자면 히스패닉이나 흑인들로 보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동양인은 나뿐이었고, 처음으로 찾아온 선글라스 낀 백인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재활용품을 기부하곤 멋진 하얀색 포르쉐를 타고 떠났다. 나의 삶이 캔을 팔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나 흔쾌히 캔을 기부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라 그 줄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다렸다. 내 앞으로는 재활용품이 한가득 담긴, 허리까지 오는 원통형 쓰레기통이나 사람 시체도 담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비닐봉지를 거느린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생계를 위해 전문적으로 재활용품을 모으는 이들에 비하면 내가 들고 온 맥주캔 봉지 하나는 아직 꽉 차지조차 않았다. 고작 이 정도 보증금 돌려받자고 이렇게까지 기다려야 하나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들기 시작하다가도 내 앞의 이들이 불평 하나 없이 차분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 묘한 질서에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다. 한 20분 정도 기다리니, 도저히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 차례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재활용 센터 직원은 이게 다냐며 웃었고, 아주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30초 만에 캔의 무게를 재고, 그에 상당하는 돈을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지급해주었다. (원칙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캔 하나당 5센트씩 받을 수 있지만, 캔 하나, 하나 처리하는 것은 너무나 피곤한 일이라 캔 더미를 무게로 재어 단위 무게당 값을 매긴다.) 집에 돌아오기까지 총 30분 정도, 아주 단순한 계산으로 그 시간 동안 번 돈 20 여불, 나쁘지 않은 시급이었다.


 이렇게 모아둔 캔을 팔러 가는 일이 생각보다 할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의욕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은 맞기에 자꾸 미루며 마음의 짐을 키우곤 한다. 언젠가 아내가 '같이 가서 기다릴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이것 만큼은 그와 함께하고 싶지 않다. 생활에서 발생한 재활용품도 아닌 그저 내가 그동안 잔뜩 마신 맥주들의 캔 보증금을 받는 일이다. 맥주라는 개념 자체를 취미로서 즐기는 부분도 있지만, 나는 분명 알콜에 의존하고 있다. 걱정에 가득 차고 불안할 때,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을 때, 화가 날 때, 잠을 잘 수 없을 때 나는 맥주를 찾고, 매일같이 맥주 캔은 쌓여만 간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 늘 미안하면서도 또 그렇게 맥주를 찾는다. 알콜 의존 자가 검진을 하면 거의 대부분이 답들이 내가 알콜 의존이라고 얘기한다. 다만, '직장에 영향을 미치는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하여 그런 일만은 없도록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으로 부여잡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내가 알콜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고 합리화하는 일은 유치한 일이다. 아내는 그런 나를, 언제나 잠자코 기다려준다. 가끔 넌지시 '조금 줄이는 것은 어떨까, ' 혹은 '그렇게 싼 맥주를 많이 마시는 것보다는 너가 좋아하는 맥주 하나를 제대로 마시는 것이 어떨까, ' 정도로 얘기해주며 내가 알콜에 지배당하지 않고,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기다려주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맥주 캔을 팔러 가는 일은 내가 다시 나를 돌아보는 일이며, 최소한의 속죄다. 이것으로 인해 아내를 땡볕 아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오는 돈은 아내에게 '도토리'로 건넨다. 다람쥐가 여기저기 도토리를 숨겨 놓았다 잊어버리는 것이 도토리나무로 자라듯 아내는 집안 여기저기 현금을 숨겨두는데, 그는 이를 잊고 있다가 어디선가 발견하면 신이 나서 파머스 마켓에 가서 브로콜리 1.5불어치를 사 오거나, 예쁜 테이블 러너를 사 오거나, 캠핑을 갔을 때 나한테 현금이 없어 나한테 꿔 주거나, 알뜰하게 잘도 사용한다. 캔 판 돈 안 주는 대신 맥주를 안 마시면 훨씬 이득이 아닌가 하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참 어렵다.

아내의 도토리

 하루도 쉬지 않고 아침 여덟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운영되는 재활용 센터에는 활력이 넘친다. 신나게 흘러나오는 남미 음악 특유의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몸을 흔들거리게 된다. 한국 음악에 한이 담겨 있다면, 이들의 음악에는 흥이 담겨있는 것 같다. 센터 앞에는 마땅한 주차 자리가 없다. 대신 인도와 드라이브웨이가 애매하게 넓어서, 적당히 차들을 구겨 넣거나, 나 같은 경우는 한두 블럭 떨어진 골목에 주차를 하고 걸어온다. 센터 앞, 커다란 플라스틱 원통이 잔뜩 쌓여 있고, 많은 이들이 자신이 수집한 재활용품을 플라스틱, 캔, 유리, 종류별로 통 몇 개에 담아 분류한다. 그러고 직원들은 줄에 선 사람 한 명 한 명씩 재활용품의 무게를 저울에 재고, 이는 뒤에 있는 사무실에 자동으로 전해져 그에 맞는 금액, 그리고 영수증을 건네준다. 그 옆에는 커스토머 서비스 센터가 있어서 가끔씩 혹시나 재질이 잘못 입력되었거나, 무게가 생각보다 적다거나, 전산 오류가 났다거나 할 때 이를 정정하여 준다. 이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직원들은 신기하게도 의욕이 넘치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세상이 이만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정도로 협조적이라, 아무리 길어 보이는 줄도 항상 15-20분이면 줄어들어 내 차례가 된다. 신나게 춤을 추며 내 캔의 무게를 담는 아미고 (Amigo)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웃음이 나고, 나는 나에게 도토리를 건네어주는 아미고에게 그라시아스! (Gracias!) 하고 인사를 한다. 집에 와 아내에게 도토리를 전해 주면 왠지 그날 저녁은 조금 더 맛있는 느낌이다.


 생계에 도움이 되고자 이렇게 재활용품을 모으는 이들이 많은 만큼, 가족 구성원끼리 오는 경우를 종종 본다. (COVID-19 사태가 나기 이전) 어느 날, 나에게 엄마뻘, 그리고 할머니뻘 정도 되어 보이는 보이는 두 히스패닉 여성분이 내 앞에 줄을 서 있었다. 할머니는 목 라인을 따라 화려한 꽃무늬가 수놓아지고, 뭉실뭉실 구름같이 소매나 허리 아래로 여유 있게 펼쳐져 있으면서도 허리를 따라 라인이 잡혀 있는, 하얀, 새하얀 멕시칸 스타일의 블라우스를 입고 계셨다. 그의 귀에는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될 것 같은 얇고 기다란, 아래쪽에 조그마한 푸른 보석이 달린 은장의 십자가 귀걸이가 달랑거리고 있었고, 입술에는 아주 밝은 오페라 색의 립스틱이 진하게도 입혀져 있었다. 그는 그 옆에 있는, 딸일까 며느리일까 사실은 아예 타인일까 궁금스러웠던, 나이키 마크가 새겨진 버건디색 반팔티에 까만 모자를 쓴 보다 젊은 여성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굳이 그 둘은 손을 꼭 잡고, 줄에서 한 사람씩 줄어들 때마다 힘들게 한 손으로 재활용 꾸러미를 바닥에 끌며 한 발짝 내디뎠다. 그 할머니에겐 이것도 소중한 외출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Muchas gracias, "라 얘기하며, 꼭 손을 잡고 재활용 센터를 나섰다.


 COVID-19 판데믹이 이 사회를 뒤덮기 시작하면서 나는 집에 갇혀 불안과 스트레스에, 혹은 그것을 핑계 삼아, 마시는 맥주의 양이 늘어만 갔다. 파트타임으로 클라이밍 짐에서 일하던 것은 잘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지도 교수는 계속 일하라며 채찍질하고, 나는 그렇게 맥주로 도망을 쳤다. 캔은 유래 없이 빠르게 쌓여 갔고, 도저히 모아 둘 공간이 없어져 그냥 갖다 버려야겠다, 생각하기 직전,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의외로 재활용 센터는 열려 있었다. 식당 같은 곳도 닫혀 있을 무렵에도, 재활용 및 쓰레기 처리 센터들은 필수 기업(Essential Business)으로 분류되어 영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중 많은 곳들이 자체적으로 영업을 포기했고, 이에 쓰레기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한동안 쌓이거나, 재활용품은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고 일반 쓰레기와 같이 매립되고 있다는 기사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왔다. 그럼에도 내가 찾던 재활용 센터는 여전히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황이 어떤가 궁금하기도 하고, 이렇게 많이 모인 캔을 그냥 매립하는 죄책감도 들고, 이 정도면 돌려받을 수 있는 30불이 아깝기도 해서 마스크를 두 장 겹쳐 끼고 가 보기로 했다. 재활용 센터는 평소보다 아무래도 한산했다.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있었고, 거리두기에 대한 사인을 여기저기 붙여 두고, 손 세정제를 비치해두고, 플라스틱 막대와 사슬로 조금 더 질서 정연하고 안전하게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었다. 

 찾아온 손님들도 놀라우리만큼 이를 잘 따라주었다. 모두들 마스크를 잘 끼고 있었고, 애초부터 긴 줄이 거리두기를 위해 더욱 길어져 센터 바깥까지 늘어졌음에도 모두들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대부분 사회적, 경제적으로 힘들어 보이는 이들, 혹은 노숙자들이 많았다. 이 판데믹이 찾아왔을 때, 나는 이런 약자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게 될까 궁금했다. 이들에겐 더 잃을 것이 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에 과연 협조해 줄까. 그러나 재활용 센터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편견이었는지 깨달았다. 사회의 힘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만큼, 그들은 더더욱 그들이 살아남는 데 있어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로 하고 있었다. 바다에 갈 자유를, 교회에서 예배를 할, 머리를 자를,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달라는 부유 백인층의 어리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도 내 맥주 꾸러미 두 개를 들고 줄을 섰다. 앞에 있는 사람을 보니 예전에 거기서 본 적이 있던 할아버지였다. 그간 캔을 팔지 못했는지, 혹은 그간 캔을 내다 버리지 못했던 가구가 많아 그만큼 많이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인지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재활용품 꾸러미를 안고 있었다. 줄이 앞으로 당겨질 때마다 작고 구부러진 몸으로 느릿느릿 그의 재활용품 봉지를 하나씩 끌고 갔다. 그 또한 나를 알아보았는지, 얼마 없지 않냐며 자기 앞으로 가라고 양보를 해 주었다. 나는 고마워하며 그의 앞으로 갔고, 나는 그가 그의 재활용품을 옮기는 일을 도왔다.


 갑자기 뒤쪽으로 소란이었다. 혼잣말을 중얼중얼 외우는, 브레이드로 땋은 긴 머리를 붉은 수건으로 돌돌 말아 올린, 뼈가 보이는 것처럼 마른 흑인 여성이 재활용품 봉투를 끌고 줄 끝에 서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마스크가 없었고, 직원과 줄에 서 있는 이들이 그를 막으려 했다. 그러자 내 앞에 있던 어떤 이가 자기에게 마스크가 하나 더 있다며 차로 향했다. 그 여자는 마스크를 껴 주었고, 줄에 설 수 있었다. 

 또다시 소란이 일었다. 재활용품을 팔러 왔는데, 이 부족하고 복잡한 주차 공간에 후면 주차를 할 줄 모르는 것이었다. 아주 낡은 그 차에는 뒷 유리창도 없었다. 그러자 또 줄에 서 있던 누군가 화를 내며 그 운전자에 다가가 내리게 하고는 자신이 주차를 해 주는 것이었다. 운전자는 고마워하며 자신의 재활용품을 팔기 위해 줄의 끝에 섰다.

 할아버지가 자리를 바꿔준 후, 나의 앞에는 어떤 어린 히스패닉 남성 청소년이 서 있었다. 등짝에 '니카라과'라고 쓰여 있었으니 그쪽 출신인가 보다 싶었지만 사실 나는 니카라과가 어딨는지, 수도가 어디인지, 어떤 문화,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키는 나만하면서 나의 반 정도로 마른 그는 재활용품을 거의 스무 통어치 질질 끌고 있었다. 고작해야 열다섯, 열여섯으로 보였다. 여전히 재활용 센터에서 흘러나오는 아주 신나는 음악에 흔들흔들 그루브를 타고 있었다. 곧 그의 차례가 되었고, 알고 보니 아마 이 재활용 센터의 단골이었나 보다. 직원들이 그의 뒤통수를 빡! 한대 치면서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오늘도 고생한다, '라는 느낌을 풍겼다. 돈을 받고 나서도 그는 직원들과 한참 얘기를 했고, 직원은 그에게 미지근해 보이는 스프라이트를 한 병 건넸다. 그제야 마스크를 잠깐 벗고 스프라이트 한 모금을 마시는 그는 참 밝아 보였다.


 오늘 내 캔 무게를 달아주는 아미고는 아주 멋졌다. 커다란 솜브레로를 쓰고, 아래쪽이 넓어지는 나팔 청바지에 부츠, 위에는 딱 맞는 푸른 회색빛 셔츠를 입고 있었다. 단추를 명치까지 풀고, 셔츠는 땀 때문에 명치 주변이 더 짙은 푸른색으로 젖어 있어 -- 이제는 이런 말을 하면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 '상남자' 같았다. '그라시아스 아미고!', '데나다 아미고!' 짧은 대화가 오갔고, 오늘도 한 20불 벌었다. 내 뒤의 할아버지는 자신이 담아온 재활용품 봉지의 매듭도 잘 풀지 못했다. 멋진 셔츠의 아미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도왔고, 보다 못해 나도 두어 개 풀어주고 나왔다.

 집에 돌아가려 두 블럭 걸어 차를 타고 유턴을 하였더니 오른쪽으로 작은 골목에 바로 내 뒤에 있었던 그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다시 그의 쇼핑 카트를 끌고 그 골목을 걸으며 재활용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었을 테다. 이 다음에, 맥주를 조금 조절할 수 있게 되어 몇 달을 모아서야 캔을 팔러 갔을 때 그를 다시 만난다면, 받아온 20 몇 불 정도의 일부는 그에게 나누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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