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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Jan 02. 2020

고양이와의 아침

귀엽고 바쁘다.

포근하고 무거운 이불의 촉감을 느끼며 반쯤 잠에서 깬 것은 방문 앞에서 '북둑북둑' 하고 무언가를 긁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지난밤 술도 좀 마셨겠다 조금 더 자고 싶어 신경 쓰지 않아보려 했지만, 지치지도 않고 계속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큰공이로 추정되는 녀석의 모습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 일어나 보기로 했다. 


역시나 문을 열자마자 방으로 들어오려는 큰공이를 간신히 막아내고 마루로 나서니 고양이 여덟이 한가득 쏟아지는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각각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도 기지개를 켜고 물을 마시러 부엌 쪽으로 걸어가려니 여덟 녀석이 '니양, 먕먕, 아아, 그루룽' 거리며 내 다리를 둘러싸며 따라왔다. 녀석들의 맘마 그릇을 쳐다보니 텅텅 비어 있어, 물 마시는 건 뒤로 미뤄두고 먼저 맘마를 주기로 했다. 보리, 구름, 큰공이를 위한 건사료를 '토르르르', 경쾌한 소리가 나게 부어주고 아가 고양이들 습식사료 패킷을 하나씩 뜯어주었다. 


다들 정신없는 듯 차분한 듯 신나게 맘마를 먹고 나선 다들 다시 제 할 일들로 돌아갔다. 찬란한 햇볕을 한껏 온몸에 묻히고선, 신나게 노는 녀석들도 있고 늘어지게 뒹구는 녀석들도 있으며 솜뭉치처럼 몽실몽실하게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평범한 토요일 아침이 이미 뿌듯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물을 한 컵 마시고, 모카포트에 커피를 담아 스토브 위에 올려놓았다.

여덟 고양이를 이 작은 범위의 한 컷에 담는 것은 제법 드문 일이라 제법 신이 났다.

치즈 어른 고양이 보리.

턱시도 청소년 고양이 큰공이.

하얗고 까만 샴 아가 고양이들 만두, 라비, 올리, 호빵, 찐빵.

고등어 청년 고양이 구름이.  

찐빵이, 혹은 똥쟁이.

왠지 모르게 '이것은 고양이다', 그리고 특히나 '이것은 샴 고양이다',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진이었다. 언젠가 아주 옛날 피라미드 안쪽 벽화에 그려져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의 고양이의 형상을 띠고 있다고 생각했다. 샴 그 특유의 푸른 눈, 하얀 몸통과 까만 발끝, 꼬리, 얼굴, 귀는 참 독특하다. 다른 코트의 고양이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태어났을 때엔 거의 전체가 하얗다가 자라면서 끄트머리 부분들만 이렇게 까맣게 물들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제법 특별하다. 그리고 모든 고양이는, 특히나 아가 고양이들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는 귀엽다... 안 그랬으면 이미...'

당당하게 걷고 있는 찐빵이 뒤로 찐빵이의 제물들이 놓여 있다. 아직도 제대로 화장실을 가리지 못하고 찐빵이를 대표로 이 귀여운 아가 샴 고양이들은 여기저기 똥, 요즘은 특히나 많이 먹어서 그런지 아주 묽은 똥을 싸 놓고 있다. 바닥 일부를 막아 놓기 위해 쓰지 않는 식기 건조대를 놓았고, 카펫보다는 그나마 나으니 거기다 싸라고 놓은 배변패드, 이 모든 노력에도 결국 고통받는 나의 샌들,  신발 매트, 그리고 바닥 카펫.


오늘 아침에도 나와보니 하얀 부분이 없을 정도로 배변패드가 똥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기특하게도 똥을 밟지 않아 카펫에 도도도 찍힌 똥 발자국은 없었고, 녀석들은 여전히 신나게 뛰어다니고, 찹찹찹 맛있게도 밥을 먹고, 가득 찬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러면 되었지, 하면서 흐뭇하게 배변 패드를 치웠다. '참 관대하고 훌륭한 집사다',라고 나 자신을 칭찬해주기도 했다.


하여튼, 고양이는 귀엽다... 귀여우니까 그렇다. 

보리, 큰공, 만두

밥을 먹고 한동안은 녀석들이 쉴 생각이 없었다. 우리가 예전에 임보 했다가 지인에게 입양 보낸 큰공이가 연말을 맞아 본묘 (本猫집사가 여행을 간 동안 잠시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임보 하던 동안 그렇게나 우리 집 보리, 구름이와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낼 수 없던 녀석이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오자 그렇게나 하악질을 하던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고작 하루 이틀 정도, 금세 보리, 구름이, 그리고 아가 고양이들과 친해졌다. 아주 시크한 모습으로 진득한 애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하였다. 사람을 정말 좋아하던 큰공이 그 모습 그대로.

만두.

이 녀석은 만두. 우리가 임보 하는 이 다섯 샴 아가 고양이들 중 유일한 남자 아가. 노는 것에 환장을 해서 걷는 것보다 날아다니는 모습을 더 자주 포착하게 되는 너무나 신나고 예쁜 녀석이다. 정말 잘 생겼는데 가끔씩 눈이 안 쪽으로 모여서 웃기기도, 귀엽기도 한 녀석이다.

찐빵

그저 사랑스러운 찐빵이. 아주 은근하고, 귀엽고, 알 수 없이 뭔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있어 '진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녀석. 가끔 보면 북극곰 같아 보이기도 하는 이 하얀 털 뭉치는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_<

이 표정을 보고 나의 심장은 이미 정지하였다.

찐빵이는 정말 얌전하지만, 배가 고프면 정말 말이 많고, 난폭하기 그지없어진다. 나머지 남매들을 깔아뭉개고, 신나게 냥냥 펀치를 날린다. 그 기분을 나는 아주 잘 알기에 이 녀석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구르미

구름이는 우리가 임보하던 고양이들 중 결국 우리가 입양하게 된 고양이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구름이 만큼 예쁜 고양이는 거의 없다. 임보 하던 중 '복실이'라고 불렀던 만큼 탐스러운 털, 끝없는 애교, 세상 평화를 원하는 조그맣고 복실복실하고 따스한 구름이. 겨울을 맞아 잔뜩 털이 쪄서, 하루에도 몇 번을 넋을 놓고 바라보곤 한다.

큰공이

큰공이의 증명사진 같은 느낌. 왜 이 녀석이 큰공이인가 하면, 큰공이를 임보 할 때에 작은공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그 똘망똘망하고 예뻤던 녀석은 많이 아파서, 열심히 세상과 싸우다 결국엔 무지개다리를 건넜었다. 아마 지금은 어디에선가 한 세 번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찐빵이와 구름이.

찐빵이가 이제 슬슬 높은 식탁에 기어올라 온다. 구름이는 못 올라오게 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손으로 톡톡 쳐서 올라오는 것을 방해한다. 물론 찐빵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 방해 공작이 성공할 때마다 당당한 구름이의 모습.

찐빵이가 포기하고 마루 소파에 올라가 큰공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 그렇게 하악질을 하던 큰공이도 이제 아가들에게 적응한 것인지 제법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

찐빵, 올리, 호빵.

아가 고양이들끼리는 늘 사이가 좋다. 가운데 올리는 어리광이 끝도 없어서, 9주가 된 오늘까지도 다른 남매들에게 쭙쭙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개묘(個猫)적으로 굉장히 귀찮을 텐데도 그저 받아주는 나머지 남매를 보고 있으려면 왠지 흐뭇하다.

만두에게 폭 안긴 올리.

올리는 한동안 아팠다. 그에 비해 만두는 늘 건강하게 쑥쑥 커서, 지금 만두는 올리보다 훨씬 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만두에게 올리는 한껏 기대어 쉬곤 한다.

찐빵

찐빵이는 참 은근하고 얌전하다. 안고 있어도 그릉그릉 거리며 우리에게 말을 걸곤 한다.

찐빵

어찌나 잘 먹는지 어떻게 보면 북극곰 같은 모습에, 작고 까만 발이 그저 귀엽기만 하다.

찐빵이가 부쩍 식탁 위에 올라오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창가 우리의 작은 정글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찐빵이. 사진을 찍는 동안 찐빵이가 톡톡톡 치고 놀아서 고생했을 몬스테라에게 밍구스럽다.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말리지 못해 아내에게 미안하다. 등짝 스매싱과 비슷한 한 소리를 들었으니 나의 대가를 치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사진은 제법 그 값을 하였다.


아침 내내 고양이 녀석들 사진을 찍느라 바쁘고 신났다. 이 멈출 줄 모르는 귀여움, 생명력, 몽실함, 따스함, 호기심, 귀찮음, 엉뚱함, 사랑스러움. 한동안은 이런 아침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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