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하는 이야기 15 - 1
태어난 날: 10/15/2019.
우리에게 찾아온 날: 10/31/2019.
우리를 떠나 평생 사랑받을 집으로 입양갈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와 아내는 언제나 걱정 반, 그리움 반으로 임보하던 고양이를 떠내보낸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고 하였던가, 온 애정을 주었던 큰공이를 보내던 날 날씨가 슬슬 쌀쌀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디선가 발견되고 구조되어 보호소로 들어오게 되는 아가 고양이들 중 한 무리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
우리에게 사랑스럽거나 안타깝지 않은 고양이는 없다. 그렇기에 적어도 우리가 만나게 되는 고양이만큼은 도와주고 싶고, 특히 세상 살아가는 법을 하나도 모르는 아가 녀석들을 임보라는 과정을 통해 어엿한 고양이로 길러내는 것에 제법 뿌듯함을 느낀다. 아가 고양이들은 유난히도 귀엽다. 개묘마다 성격, 친근함, 코트의 무늬, 식성 등 많은 성질들이 다른데, 그 모습이 하나같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우리가 열 다섯번째 임보하는 이 녀석들은 몽실몽실한 아이보리 코트가 너무나 예뻤다. 아빠 고양이가 여럿이거나, 혹은 아빠, 엄마 고양이의 유전자가 경쟁하여 자식들의 코트가 천차만별이기 일쑤인데, 이 다섯 남매는 하나같이 아이보리의, 그리고 샴 고양이의 코트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만나본 아가 샴 고양이들이었기에 이토록 솜뭉치 같은 뽀얀 녀석들의 어떤 부분들이 어떤 패턴으로 까맣게 물들어갈 지 두근두근 기대가 되었다.
너무나 보송보송하고 연약하며 따뜻한 털뭉치 다섯 모두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우리의 경험상 아직 젖먹이인 아가 고양이들을 셋보다 더 많이 임보하는 것은 고양이들에게도, 우리에게도 굉장히 힘든 일이다. 세, 네 시간 마다 젖병을 물리고, 소변, 대변 유도를 하고, 이 일들이 언뜻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우린 종종 생각한다. 이것은 언젠가 자식을 낳게 될 때의 연습이 되지 않을까, 하고. 그리하여 나머지 둘은 다른 훌륭한 임보인이 데려가 돌보아주고 사랑해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러나 그 둘이 늘 그렇게 우리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얀 샴 아가 고양이 셋이 우리 집에 찾아왔고, 우리는 이 녀석들을 '만두', '찐빵', '호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자그맣고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아직 귀도 쪼끄매서 너무나 귀여운 녀석들. 아직은 꼬물거리거나 자거나, 그 외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녀석들이다. 어쩌다 이런 어린 녀석들이, 엄마 고양이도 없이 발견되었던 것일까. 발견되지 못했다면 이 녀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구조되지 못하고 이 찬 세상에 어리둥절 남겨진, 우리로선 존재도 모르는 고양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무기력해지기만 하니, 어쩌다 닿은 우리에겐 인연, 이 녀석들에겐 묘연, 이 기적같은 만남에 집중하기로 한다. 우리에게 잠시나마 와 주어서 고맙다, 짜식들아.
만두. 다섯 남매 중 유일한 남자 아이.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무게가 적게 나가는 녀석이었다. 똘망똘망한 눈매가 아가때부터 아주 멋졌다.
찐빵. 과연 이것은 고양이인가 차우차우인가, 뭔가 계속 웃음을 짓게 만드는 표정을 가지고 있다. 미묘 (美猫) 라고는 솔직히 못하겠으나, 너무나 뭉실뭉실, 귀엽고 사랑스럽다.
호빵. 찐빵이와 만두의 중간 같은 느낌인 조그맣고 동그란 녀석. 뭔가 늘 불쌍하고 억울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미안하게도 웃음이 난다.
이 젖먹이 아가 고양이들은 젖병을 이용해 고양이 분유를 먹인다. 젖병을 입에 넣어주면 쪽쪽쪽 빨기 시작하는데, 이 때 하도 열심히 빠느라 귀가 쫑긋쫑긋 움직이는 모습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경우이고, 꽤 많은 아가 고양이들은 까다로워서 아주 천천히, 몇십분에 걸쳐서 먹기도 하고, 시원한 아이스 온도를 좋아할 때도, 반대로 꽤 뜨거운 것을 좋아할 때도 있고, 농도가 묽은 것을 좋아할 때도 있으며, 때론 젖병 꼭지의 형태에도 예민할 때가 있다. 정말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결국 어쨌건 건강히 잘 먹어주면 그걸로 되었다.
잘생긴 만두. 자그만 귀가 정말 귀엽다.
어우, 찐빵이.
엄마와 일찍 떨어진 아가들이라 그런지 유난히도 '쭙쭙쭙' 소리를 내며 서로를 물고 빨고 하는, 소위 말하는 '쭙쭙이'를 지치지도 않고 했다. 그 모습이 안쓰럽지만, 일단 서로 쭙쭙이를 하면 제대로 자기도 어렵고, 시도 때도 없이 배변 유도가 되어 우리도 녀석들도 피곤하니 칸막이로 공간을 나눠주었다. 따끈따끈하게 해준 박스 안에서 이들은 천사같이 잔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뭔가 할 말이 있는 만두.
우리 호빵이. 가여운 호빵이.
호빵이는 많이 아팠다. 우리 집에 온 지 한 일주일 정도, 그리고 태어난 지 삼주일 정도 되던 때 호빵이가 상태가 안 좋은지 묽은 설사를 하며 젖병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런 때는 늘 무섭다. 이 고비를 못 넘기는 고양이가 제법 있고, 우리도 임보를 하면서 한 번은 흑미, 다른 한 번은 작은 공이라는 녀석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적이 있다. 고작 한 번 먹을 때 10-15ml의 분유를 먹는 아가 고양이들은 네 시간 정도마다 가지는 맘마 시간을 한 번쯤만 넘겨도 영양분이 부족해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생명이 위태로워지곤 한다. '먹어야 산다', 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본묘들은 그것도 모르고 상태가 안 좋다고 한 번 안 먹기 시작하면 더 상태가 안 좋아지고, 더 안 먹고, 점점 악순환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럴 때에는 강제로라도 분유를 먹여서 살아갈 영양분을 계속 공급해 주어야 한다.
본묘들이 자의적으로 젖병을 빨 때와, 우리가 억지로 먹일 때 먹는 분유의 양이나 우리의 번거로움은 차원이 다르다. 젖병을 입에 강제로 넣고 짜주려 하면 에베베, 도리도리 하며 다 뱉어내어 턱도 없다. 작은 1ml 주사기에 분유를 채워 두 번 정도만 먹이고, 설사를 하니 수분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또 이온수를 두 번 정도 채워 먹이고, 바로 영양분이 될 수 있는 당분 시럽을 조금 먹인다. 정말 먹기 싫어하고, 뱉어내고, 한껏 주변이 지저분해지지만, 이 정도를 마치면 '아 일단은 됐다', 라고 감사하게 생각하게 된다. 1ml, 정말 턱도 없이 작은 부피이다. 그런데 강제로 분유를 먹일 때는 어쩜 그렇게도 1ml가 줄어들지를 않는지. 그리고 이 작은 부피의 분유가 이 작은 고양이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내가 호빵이를 살리기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네 시간마다 이렇게 3-4ml씩 먹을 때 호빵이가 너무 힘들어 하니, 한 시간마다 딱 주사기 한 번씩만 먹이기로 했다. 그녀는 그렇게 이틀 밤낮을 꼬박 새며 호빵이를 돌봤다.
그럼에도 호빵이는 점점 기력을 잃어갔다. 하루 더 이대로 가면 무지개 다리를 건널 것 같았다. 일을 하러 나왔으나 더이상 희망이 없어 다시 보호소로 데리러 가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일찍 나와야 할 수도 있다는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오전 근무를 하던 중 아내의 문자가 왔다.
'우리 호빵이 살 건가봐. 젖병 빨았어.'
며칠 뒤, 품에 안겨있는 만두와 호빵이.
살아있다는 것, 오늘도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은 그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찐빵, 호빵, 만두는 한 고비를 넘겼고, 이미 귀나 손, 발끝이 서서히 까맣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지만 우리는 이 녀석들의 하루 하루에 울고 웃는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에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조금씩, 조금씩, 이 녀석들은 고양이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