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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May 18. 2020

막걸리 이야기

쌀, 물, 누룩, 그리고 시간

'어릴 시절, 주변 어른들을 통해 막걸리 한 모금씩 얻어먹으며 주도를 배웠다,' 라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런 경험은 없다. 부모님은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고, 양가 친척을 통틀어 보아도 고된 삶에 소주를 많이 드시던 외삼촌 외엔 특별히 애주가로 기억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마신 술은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과 함께한 누군가가 선물해준 와인 한 병이었다. 와인잔이 없어 '크리스탈'이란 이미지가 떠오르는 양주잔에 레드 와인을 따라 마셨는데, 엄마는 한 모금 먹고 잔을 내려놓았고, 아빠는 한 잔을 마셨다. 나는 한 잔을 먹고 더 달라고 했더니 아빠가 왠지 기특해했다. 그러나 한 잔 더 달라고 하니 저지당했다. 


아빠는 술을 먹지 않음에도 제법 커다란 유리장에 양주를 모았다. 성인이 되고 가끔 한국에 들어가 부모님 집에 가면 하나, 둘씩 따서 마셔보는 재미가 있었다. 양주는 비싸서 먹을 일이 없으니 잘은 모르지만, 집에서 내가 어릴 때부터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했던 나폴레옹 뭐 코냑 미니어처 병을 까서 크리스탈 잔에 따라 마셨을 때 느꼈던 그 독함과 엄청난 풍미가 기억이 난다.


스무 살이 되고 여자 친구를 만나선 둘이 그렇게나 맥주를 마시고 다녔다. 소주도 먹긴 했으나 조금만 마셔도 머리가 아팠고, 무엇보다 그 미묘한 단 맛이 영 별로였다. 그에 비해 맥주는 끝도 없이 마실 수 있었다. 어떤 날엔 해가 지기도 전에 맥주 마시기 시작해, 별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피쳐를 쌓다 보니 둘이서 10,000cc를 끝냈다는 사실을 알고 한참 웃었다. 여자 친구가 열심히 돈을 벌어 같이 유럽 여행을 갔을 때엔 맥주를 '한 잔 더 달라'고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만,' 하고 말할 때까지 자동으로 맥주를 계속 가져다주던 체코가 세계 최고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에 대해 고민을 하던 시절, 자신과 신나게 맥주를 마셔주던 파트너와 결혼한 일은 아주 괜찮은 일이었다고 은사님 한 분이 말씀해주셨다. 그는 얼마 전 은퇴하였는데, 늦잠을 자고 일어나 남편과 같이 오전 열 시 맥주 한 캔 깔 수 있는 일상이 제법 즐겁다고 소식을 전해 주셨다.


맥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술이지만, 그와 우위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 막걸리이다. 그런 것 치고 그리 자주 먹는 것은 아니나 그 특유의 맛, 감성, 그리고 특히나 한식과의 조합이 굉장히 소중하다. 내가 막걸리를 처음 마셔보게 된 것은 여자 친구, 그리고 그의 엄마와 같이 <보릿고개>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을 때였다. 칼칼하고 얼큰한 순두부찌개, 그리고 기억으로는 고등어구이의 조합이 훌륭했는데, 여기에 더해지는 막걸리의 뽀얀 빛깔, 달달하고 상큼한 맛이 저절로 '크으,' 하고 얼굴을 신나게 찌푸리게 했다. 어쩌다 여태 막걸리를 마셔보지 않았는지. 우리가 연애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때라 여자 친구가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자리를 뜨기에 초조해 보였다. 결국 화장실에 가면서 나와 자신의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노심초사하는 눈초리로 창 밖으로 나를 자꾸 쳐다보았다. 나는 애써 신경 쓰지 않는 척 이야기를 나눴다. 뭔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내성적이고 소심한 나 치고 편하게 이야기를 했던 기억만 난다. 여자 친구는 부리나케도 돌아왔다.


어떤 더운 여름날, 우리는 북한산 둘레길 한 구간을 걸었다. 길지 않은 거리에 비해 반나절이 금방 지나간 것은 도중 이파리 하늘거리는 나무 아래 평상에 자리 잡아 점심을 먹고 이따금 찾아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잔 터였다. 한적하고 초록이 가득했던 둘레길은 해가 주황색으로 빛나기 시작할 무렵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끝이 났다. 이대로 돌아가긴 아쉬우니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하고, 역시 '등산' 이후엔 전과 막걸리지, 하고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연신내역 근처 <호박>이란 민속주점에 찾아가기로 했다. 우리가 두 번째 손님이었다. 싼 가격은 아니었으나, 초록색 플라스틱 병이 아닌 조그마한 항아리에 표주박 반 쪽과 함께 담긴 막걸리는 아주 그럴싸해 보였다.


어둠이 드리울 무렵, 어쩌다 보니 여자 친구의 엄마, 친해질 대로 친해져 '호미'라고 부르던 그가 찾아오기로 했다. 나도 그렇지만 나보다도 더 길치인 여자 친구를 대신해 연신내 역으로 마중을 갔다. 역에서 그를 만나 다시 <호박>으로 걸어오는 길,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와 다시 막걸리를 먹을 생각에 반가웠다. 벌레 소리가 나고, 공기가 시원해지고, 모기 때문에 내 팔뚝이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나는 나의 여자 친구와, 호미와 함께 삶과 쓰잘데기 없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다 낄낄거리며 모듬전과 탕에 막걸리를 마셨다. 다들 제법 취기가 올라 돌아오는 길, 왼쪽에는 여자 친구, 오른쪽에는 호미의 팔짱을 끼고 비틀비틀 걸으려니 왠지 뭉클했다. 지금 바닥에 아가 고양이 넷을 안고 누워있는 아내는 눈 앞에 지켜보고 있어도 보고 싶지만, 그의 엄마, 호미는 더더욱 보고 싶다.


그 이후 미국에서는 막걸리를 사 먹을 일이 없었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긴 싫어 빠듯하나 커다란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금을 안게 되고는 한 팩에 99센트이던 요거트가 79센트로 할인할 때, 그리고 돼지나 소고기는 꿈도 못 꾸고 닭가슴살만 할인할 때 그제야 쟁여두던 시절이었다. 정말, 달러도 아니고 센트 단위로 재정을 꾸리곤 했었다. 그러다 어쩌다 학교 체육관에서 파트 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 대가로 학업의 성취는 조금 포기해야 했지만, 나는 그 전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어느 하루, 막걸리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차도 없던 시절,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 십오 분, 이상하게도 갈 때도 언덕, 올 때도 언덕인 길을 타고 처음으로 한인 마트에 갔다. <국순당>의 바나나, 복숭아, 망고, 그리고 생막걸리를 각 두 병씩, 총 8병을 짊어지고 돌아오다가 돌아버릴 뻔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동실에 넣어두고, 샤워를 하고, 남은 할 일을 마친 뒤 마신 복숭아 막걸리 큰 한 모금, 옅게 낀 살얼음이 목구멍에서 아삭아삭하게 바스러지며 내 온몸을 짜릿하게 했다. 


여자 친구가 아내가 되어 미국에 온 이후 삶에도 안정이 찾아왔다. 이제는 차를 타고 한인 마트에 장을 보러 가게 되었다. 닭고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도 소고기도 사고, <국순당> 생막걸리를 종종 $2.49에 사 오곤 했다. 그러던 어떤 날, 한인 마트에서 쌀가루와 누룩가루를 혼합해 둔 막걸리 키트의 판촉 행사를 하고 있었다. 한 번 먹어볼 수 있을까 물었더니, 주변 어르신들이 하도 달라 그래서 시음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나 아쉬워 입맛을 다시며 주변을 계속 서성였더니 조용히 먹으라며 한 모금 건네주었다. '아, 안 되는 건데, 한 번 드셔보세요,' 하고. 내가 여태 먹었던 막걸리에 비해 풍미가 풍부하고, 불쾌한 단 맛은 적었다. 그대로 키트를 구매해 두어 번 막걸리를 해 보았는데, 물에 가루만 타면 되는 간단한 과정만으로 만들어졌다고 하기엔 너무나 맛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안타깝게도 키트는 더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에는 배상면주가, 느린 마을, 금정산성 등등 훌륭한 막걸리가 많이 있지만 (아직 먹어본 적은 없다), 미국에서는 국순당이 최상의 선택이다. 그러다 아내가 한국에 들렀을 때 시장에서 누룩을 사다 주었다. 아내가 만두를 빚겠다고 선언한 날, 그렇다면 나는 막걸리를 빚어보기로 했다.


막걸리 빚기

찹쌀 1kg, 물에 열심히 씻는다. '왼쪽으로 백번, 오른쪽으로 백번, 쌀뜨물이 맑아질 때까지'라고 하는데, 사실 모르겠다. 매번 스무 번 정도씩은 하는 것 같기는 하나, 그보다 더 씻는다고 물이 더 맑아지지도 않고 팔은 아프고 무엇보다 지겨워 그 정도에서 멈춘다. 이 정도로도 내 입엔 충분히 맛있는 막걸리를 여러 번 만들어 내었으니 괜찮겠거니 싶다.

누룩 200g은 햇빛에 잘 말려 법제한다. 누룩에 들어있는 잡균들을 죽이는 일이다.

끓는 물로 막걸리를 담을 소독을 하고, 생수에 갈아둔 누룩을 넣어 물 누룩을 만든다. 발효를 시켜주는 미생물들을 활성화하는 과정이다. 막걸리에 닿는 모든 것들 -- 병, 국자, 주걱, 체, 보울 등등 -- 은 잘 소독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잡균이 과하게 번식하여 시큼하고 이상한 맛이 나는 막걸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수들을 통해 배웠다.

씻어낸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식힌다.

밥알 사이사이 누룩 물이 잘 배도록 꾹꾹 눌러 으깨준다. 반나절 정도만 지났을 뿐인데, 이미 효모들이 열심히 당분들을 분해하면서 나오는 탄산에 쌀알이 한가득 떠올랐다. 병 입구에 귀를 대면 뽀글뽀글, 톡톡 소리에 신이 난다. 정말 이 녀석들 살아있구나. 한껏 숨을 들이마시면 이미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난다. 서서히 알코올이 형성되고 있다.

발효한 지 하루, 아내가 저녁에 돼지갈비를 굽는다고 했다. 아직 거를 수는 없으나 돼지갈비와 너무나 잘 어울릴 것 같아 윗부분만 떠 내기로 했다. 굳이 따지면 막걸리가 아닌 동동주이다. 아직 발효가 많이 진행되지 않아 느껴지는 쌀의 달달함, 그러나 느껴지기 시작하는 알코올의 은은한 화끈함과 상큼함, 그리고 거르지 않아 섞여 있는 누룩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씁쓸함이 달콤한 돼지갈비, 구수하고 매콤한 청국장, 상큼한 양파 장아찌와 부추무침과 함께 아주 훌륭한 마리아주를 보여주었다. 바깥, 아파트 단지의 풀들 사이로 스프링클러가 치익, 하고 켜진다. 여름의 젖은 냄새가 난다. 내가 어릴 적, 특별한 날 돼지 갈비를 먹던 밀양 근처의 '가든'이 있었다. 넓은 호수 부지에 자리를 잡아, 물 위로 작은 정자들이 떠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빛, 돼지갈비는 지글지글 구워지고, 호수 위로 연잎이 떠다녔다. 물의 냄새가 났다. 스프링클러가 식힌 이 더웠던 날의 저녁은 우리 집을 엘에이의 '팜팜가든'으로 데려다 주었다.

삼일차, 발효실을 겸하는 옷방에 술 냄새가 가득해 2/3 정도를 거르기로 했다. 체에 1차로 거르고, 면보에 2차로 걸러낸다. 거르고 남은 지게미는 한 번 씻어내어 아내의 정원 한 켠 흙더미에서 살고 있는 '렁렁이'의 맘마로 준다. 이 지렁이들은 영양분 가득한 흙을 계속 만들어 줄 것이다. 

곱게 발효된 막걸리 원액, 즉 탁주. 예전엔 탄산수로 희석하여 설탕을 조금 넣어 달달하게 먹기도 했는데, 막걸리를 빚으면 빚을수록 탁주 자체의 구수하고 은은하게 달콤한 맛, 쌀에서 나오는 진한 질감을 점점 더 추구하게 되었다. 이번 막걸리는 10% 안팎으로 느껴지는 알코올 도수와 적당하게 남은 쌀 당분의 단 맛의 밸런스가 좋았다. 예전 <신의 물방울> 만화책을 읽으며 포도로 빚은 와인에 뭔 꽃, 바닐라, 아몬드 등등의 향이 나다 못해 푸른 평원이 펼쳐지는지 어이가 없었는데, 직접 막걸리를 빚기 시작하니 똑같은 재료와 똑같은 방식을 이용함에도 매번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엔 쌀의 은은한 달달함, 거기에 부드러운 상큼함이 더해져 살짝 포도와 크랜베리의 향이 났다.

나머지 1/3은 사흘 더 발효시켰다. 맑게 떠오른 윗술, 이만 여과시키면 청주가 될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막걸리가 더 좋으니 잘 섞어 더 숙성된 막걸리를 걸러내었다. 오른쪽엔 오늘도 자라고 있는 사워도우 천연 발효종. 집안이 발효 파티이다.

이제는 쌀의 당분이 거의 다 사용되어 단 맛이 거의 없다. 쌀의 구수함만이 남았다. 도수는 느끼기엔 13-14%쯤 되는 것 같았다. 작은 한 모금씩 복잡한 풍미를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막걸리는 보통 사람의 술이다. 청주나 소주에 비해 저렴하다는 부분도 있으나 내가 생각하기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술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고됨을 달래주는, 흥을 돋워주는 존재인 다양한 종류의 술 중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맥주를 너무나 좋아하는 만큼 홈브루잉에 대해 공부를 하고, 수업을 듣기도 했다. 결론은 생각보다 필요한 물품과 할 일, 그리고 차지하는 공간이 많아, 지금 있는 집에선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막걸리는 정말 간단하다. 쌀과 물, 누룩이면 제 알아서 술이 된다. 게다가 누룩도 밀과 물로 반죽하여 잘 발효시키면 공기 중 떠다니는 곰팡이들이 알아서 자리를 잡아 만들어진다. 이는 빵과 비슷하다. 물과 밀가루, 그리고 효모. 마찬가지로 열심히 키우고 있는 천연 발효종은 물과 밀가루를 섞어놓았을 뿐인데 공기 중 효모들이 자리 잡아 빵을 부풀게 하고, 특유의 새콤한 풍미를 더해준다. 빵은 구울 때 뜨거운 열이라도 필요하지, 막걸리는 그조차도 필요가 없다. 막걸리처럼 쉽게 빚을 수 있는 술이 없는 것 같다. 

처음 빚었던 막걸리. 뽀얀 우유 같은 빛깔, 달콤 새콤한 맛. 인공적인 달달함 없이 은은하면서 고소한 맛에 깜짝 놀랐다. 막걸리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흰 밥을 꼭꼭 씹다 보면 느껴지는 그 맛이었다. 이렇게 막걸리를 빚어 먹다가 친구가 국순당 생막걸리를 사 들고 온 적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한인마트를 다녀오며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막걸리가 이젠 맹맹하면서 인공감미료의 맛이 가득한 술이 되어 버렸다.

막걸리는 한식을 대표하는 술이다. 미국에 살면서 한식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게 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막걸리는 밥과 거의 같다. 밥과 먹는 음식이라면 거의 다 막걸리와의 마리아주, 우리 말로는 궁합이 좋다. 고소하고, 달콤하고, 든든하다. 거기에 취기까지 돌게 해 주니 그만한 것이 있겠는가.


아내가 처음으로 만두를 빚고 나는 처음으로 막걸리를 빚었다. 이를 자축하며 아내는 지글지글 모듬전을 지져내고, 양파 장아찌를 곁들였다. 김치전, 녹두빈대떡, 동그랑땡, 깻잎전. 누가 뭐래도 만두와 전에는 막걸리이고, 막걸리에는 만두와 전이다. 기름지고 고소한 전, 보들보들하고 뜨거우면서 고기의 감칠맛이 한가득 담긴 만두에 더해지는 상큼하고 달달 구수 하면서 시원한 막걸리, 엘에이 댁 주모, 주부(?)를 자꾸 찾게 된다. 

전날 마신 막걸리를 해장하며 다시 막걸리와 곁들인 뜨거운 만둣국, 남은 전들. 우리의 구수한 고기 국물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이 막걸리이다.

미국에 살면서 긴 시간 동안 나는 한국의 식문화에 대해 자신을 가지지 않았다. 가져야 할 필요도 느끼지도 못했다. 자신을 가지지 않았다는 자각도 없었다. '불고기' 같이 대중적인 음식마저도 '간장 소스에 절인 얇은 소고기'라고 굳이 영어로 번역을 하여 설명했다. '감자탕' 같은 경우엔 '돼지 등뼈로 우려낸 육수에 매콤하게 간을 하여 감자와 여러 야채를 더한 수프'라고 설명했다. '만두'는 '덤플링', '빈대떡'은 '코리안 피자/팬케익', 그리고 '막걸리'는 '라이스 와인'. 외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단어로만.


그 사이에 일본 식문화와 식재료의 마케팅은 굉장히 성공했다. 한국에서조차 더 이상 '초밥'이라고 거의 불리지 않을 정도로 '스시'라는 단어는 '피자'처럼 자리 잡았다. '김'은 '노리'로, '김밥'은 '마키'로, '라이스 와인'이었던 것은 '사케'로, '군만두'는 '교자'로, '풋콩'은 '에다마메'로, '닭튀김'은 '카라아게'로, '튀김'은 '텐푸라'로.


언제부턴가 왜 내가 한식에 대해 이건 떡갈비다, 나물이다, 곱창이다, 라고 호부호형하지 못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아마 나 자신이 한식을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되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왜 내가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음식을, 그 식문화를 그들이 이해하는 언어로만 표현해야 하는가. 딤섬, 브루기뇽, 미소, 티라미수, 커리, 나쉬고랭, 이러한 고유 식문화의 음식명들 사이에 '잡채'가 존재하는 것이 지당하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소기름의 맛이 한가득 우러져 나온 소 수육과 육수. 거기에 알싸함을 더해주는 부추. 마찬가지로 집에서 열심히 발효된 청국장으로 멸치 육수에 끓여낸 살짝 꾸리꾸리 하면서 구수하기 그지없는 찌개. 이것을 시원하고 상큼하고 달달하게 씻어주는 막걸리.

양지 고기로 우려낸 국물에 소면과 만두를 더해 끓여낸 만둣국, 그리고 그 영혼의 단짝, 막걸리.

어릴 적, 북엇국과 콩나물국, 육개장을 그렇게나 좋아해서 어른들은 내가 술을 많이 먹을 거라고 했다. 나아가 순대, 순댓국, 만둣국, 해장국, 술국, 국밥, 설렁탕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얘는 글렀다고 했다. 아내가 콩나물 오징어 국밥을 끓여주었다. 막걸리로 취하면서 해장을 했다.

짭짤하고 매콤한 부대찌개, 그리고 닭고기 김치찜에도 막걸리는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중국 마트에 갔다가 어쩌다 할인을 하길래 막창을 사 왔다. 아내가 열심히 손질해 그릴에서 바짝 구워내었다. 쫄깃하고 부드러우면서 바삭한 식감, 아내의 훌륭한 손질로 아주 적당하게 느껴지는 꾸리꾸리한 내장 특유의 향, 매콤한 고추 양념 소스, 구수한 콩가루, 뜨겁고 시원한 누룽지, 이 모든 것을 역시나 상큼하고 달달하게 씻어내주는 막걸리.

아내가 이틀을 꼬박 준비한 족발. 평소보다 향신료를 많이 쓰고 잘 삶아내 더욱더 풍미가 깊었다. 구수하고 쫄깃한 감자전, 도토리의 고소함이 느껴지는 아내가 쑤어낸 묵, 매콤 달콤하기 그지없는 막국수, 역시나 시원하게 해장해주는 콩나물국, 그리고 막걸리.

친구가 놀러 왔다. 아마 나 다음으로 아내의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어주는 친구는 올 때마다 우리가 꿈도 못 꾸는 비싼 사케를 사 온다. 그의 엄마는 아내가 고구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항상 '코!-구마'를 구워다 주신다. 아내가 각을 잡고 힘을 썼다. 그러곤 나에게 말했다. '내가 한식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했어'. 


직접 채워낸 피순대. 직접 만든 두부, 그리고 언젠가 김장해두었던 김치의 볶음, 상추 절임, 소 수육, 돼지갈비, 고추전, 호박전, 녹두 빈대떡, 양파 장아찌, 콩나물국, 바싹 구운 황태채, 거기에 곁들인 막걸리. 


최고의 주막이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

이젠 이렇게 얘기한다. '이건 '막걸리'라고 해, 쌀, 물, 누룩으로 발효시킨 한국의 전통술이야. 아, '누룩'은 곡식에 곰팡이를 앉게 한 발효원이야. 달달하고, 고소한 사람들의 술이야'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라는 프로그램에서 '빌레'가 종종 얘기했다. '막걸ㄹ리, 유세요!' 라고. 나는 나의 막걸리가 제법 자랑스럽다. 갖고 있는 누룩이 떨어지면 누룩도 만들어 보아야겠다. 내가 직접 빚은 막걸리를, 아내와 호미와 같이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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