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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Jun 03. 2020

막창 이야기

동그란 창에 담긴 고소함

 '나는 닭고기나 돼지고기는 안 먹는다, '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내가 찾아갈 때마다 감사하게도 LA갈비나 갈비찜, 로스구이 등 호화로운 소고기 요리를 내어주셨다. 우리 집에선 그래도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모두 두루두루 먹었으나, 특수부위나 내장은 부모님이 꺼려했고 이 영향으로 나 또한 먹어볼 일이 없었다.

 내가 삼겹살, 목살 외에 처음으로 먹어본 돼지 부위는 '뽈살'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푹 빠져서 하루에 스무 판, 서른 판씩 게임을 하곤 했다. 혼도 많이 났지만, 할 일도 다 하고 성적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우기며 게임을 하다 보니 자그마치 몇천 승에 열 몇 패의 업적을 가지게 되었다. 게임을 잘하게 되는 것도 신났지만, 무엇보다 항상 같이 게임을 하는 길드가 생긴 것이 좋았다. 다 같이 아이디도 맞추어서 게임을 하였고, 길드 안 가장 어린 나를 다들 예뻐해 주었다. 어느 날, 그중 유난히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게임 스타일도 잘 맞는 이들끼리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게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는 것에 아무래도 걱정할 부모에게 잘 에두르고 건대 입구로 가 그들을 만났다. 그때의 나에겐 형, 누나라고 부르기엔 다들 어른 같았다. 힘들지만 열심히 세상을 살면서 게임과 친목질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으로 다 같이 만나서 피시방에서 게임을 했다. 평소 리더 격인 형은 큰 판을 잘 읽었고, 어린 나는 손이 빨라 그가 하라는 대로 움직이면 늘 이기곤 했다. 다 같이 바로 옆에 앉아 게임을 하니 더욱더 신났다. 그러고 나서 고기를 사 준다고 대빵 형이 모두를 데리고 간 곳은 돼지고기 특수부위 집이었다. 넷이서 만나 '뽈살 4인분'과 '갈매기살' 2인분을 주문하였는데, 둘 다 먹어본 적이 없었다. 요즘 사업이 잘 안 돼서 더 싼 뽈살을 많이 시켰다고, 미안하다고 나에게 얘기하였다. 어리둥절한 나는 어떤 고기일까 궁금하기만 했다. 기름기가 적은 뽈살은 너무나 쫄깃쫄깃했고, 참기름 향이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 오면서 나는 게임을 그만두었으나, 방학 때마다 한국에 들어가면 매번 나는 그를 만났다. 나와 나의 여자 친구는 그의 첫 아이에게 토끼 인형을 사다 주어, '토끼 삼촌', '토끼 이모'가 되었다. 둘째 아이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사업이 조금 더 잘 되어 우리에게 돼지갈비를 사 주기도 했다. 내가 큰 사람이 되었을 때를 위한 투자라고 얘기하였다. 그는 우리가 결혼하기로 했을 때 나보다도 기뻐해 주었다.


 조금 더 특수한 부위를 먹게 된 것은 여자 친구와 별을 보러 다니면서였다. 그가 살던 산청, 지리산 자락, 별을 보는 선생님 댁에 찾아가려면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만나 고속버스를 타고 경상남도 원지로 가서, 시외버스로 갈아타 덕산까지 들어가야 했다. 덕산 시장이 덕천강을 마주 보는 곳에는 국밥집이 있었다. 순대 국밥, 내장 국밥, 고기 국밥, 그리고 히든 메뉴로 이 셋이 섞인 짬뽕 국밥이 있었는데, 늘 짬뽕 국밥을 먹었다. 식성 까다롭고 비위가 약한 나는 이런저런 내장과 귀 등이 들어가 있다는 말에 조금 걱정했으나, 웬걸, 돼지 살코기와는 조금 다른 식감들과 고소한 풍미가 너무나 좋았다. 언제나 좋아하던 순대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매번 갈 때마다 사장님은 나더러 미국에서 공부하느라 고생 많다고, 그리고 여자 친구에게는 언제나 예쁘다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국밥 뚝배기에 정구지를 산더미처럼 넣고, 매운 것을 잘 못 먹지만 좋아하는 나는 생 양파와 생 땡초를 씹어 먹으며 그 뜨거움, 내장의 쫄깃함, 고소함에 신이 났다.

 여자 친구가 수유에서 지내던 시절, <황주집>이란 맛있는 곱창집을 알게 되었다. 방학을 맞아 잠깐 한국에 들어갈 때면, 여자 친구와, 그의 동생과, 그의 엄마, 아빠와 황주집을 찾아가곤 했다. 처음 먹으러 갔을 때 나는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세상에, 소 내장이라니, 소장, 대장이라니. 반찬으로 나온 생 천엽과 간에는 손도 댈 수 없었다. 사람과 연기로 가득한 곱창 집엔 내장이 지글지글, 구수하게 익어가는 냄새가 진동했다. 침이 났다. 곱창 한 점을 입에 넣은 순간, 살짝 눌은 너무나 표면에서 이미 구수함이 흘러나왔다. 한 번 씹으니 식감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고, 뿜어져 나오는 기름과 곱의 고소함은 더 할 말이 없었다. 대창의 '팡, '하고 터지는 기름 맛은 저 세상의 것이었다. 너무 많이 먹으면 내가 저 세상으로 너무 일찍 같아, 일 년에 한 번쯤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지간한 한우 육고기만큼 비쌌지만, 여자 친구의 아빠, 엄마는 내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같이 <황주집>에 가 곱창과 대창을 사 주셨다. 한 번은 배 터지게 곱창과 대창을 먹고 노래방에 가 노래 배틀을 하였다. 나는 여자 친구의 엄마, 호미를 응원했으나 아쉽게도 그의 아빠가 노래를 정말 잘하셨다.

 덕천강 앞에 살았던 여자 친구의 친구, '맹구'는 고작 세, 네 번 만났으나 언제나 마음에 남아있는 친구였다. 처음 만나던 날, 정류장을 겸하는 <덕산 할인마트>에 내리자마자, 그는 내 손을 잡으며 '이게 사람 살리는 손이가?'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여자 친구와, 맹구와, 마찬가지로 처음 만난, 여자 친구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첫사랑, '뱅수'와 지코바에 가서 치맥을 했다. 우리는 맹구네 집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의 최애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를 읽고, 덕천강에서 튜브를 타고 떠내려가며 물놀이를 했다.

 맹구와는 어쩌다 몇 년 뒤 다시 만날 일이 있었다. 그 사이 그의 가족은 덕산에서 나와 진주로 이사를 해 있었다. 그는 역사 선생님이 되기 위해 진주에서 사범 대학에 재학 중이었고, 그 날 저녁 아내와, 나, 맹구는 양념 돼지 막창을 먹기로 했다. 소 곱창, 대창과는 또 다른 쫄깃함이 느껴졌고 달달한 양념이 맛있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했다. 밤이 아주 늦도록 우리는 술을 마셨다.


 아내가 미국에 오고 같이 보내는 나의 첫 생일엔 같이 외식을 하기로 했다. 무엇이 특별할까 고민을 하다가, 다른 건 다 집에서 해도 곱창만큼은 사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연예인 강호동 씨가 운영한다는 <아가씨 곱창>에서 배부르게 곱창과 대창을 먹고 나니 자그마치 100달러가 넘게 나왔다. 그 이후론 먹고 싶어도 가격 생각에 먹을 수가 없었다. '국밥이 몇 그릇인데...'

 한인 마트에 가면  매주 할인 품목에 따라 저렴하게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 특히나 매주 할인 품목만 잘 골라서 사면 돈을 많이 아낄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온라인 전단지가 뜨는 목요일을 매주 기다렸다. 우리의 '취미 생활'이다. 한인 마트에서 냉동 곱창에 가끔씩 눈이 갔다. 하지만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도 않고, 그걸 손질할 자신도 없고, 저렴하지도 않아 늘 포기하곤 했다.

 그러다 마라탕 베이스를 사러 처음으로 중국 마트를 갔을 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다양한 동물의 고기를 아주 세부적인 부위까지 손질하여 상당히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는데, 내장 부위도 그중 하나였다. 특히나 아시안 커뮤니티가 크게 자리 잡은 지역의 중국 마트에는 상태 좋은 생 곱창을 저렴하게 팔고 있었고, 아내는 결국 이를 직접 손질하여 조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손질은 너무나 번거롭고 냄새나는 일이었고, 끓이고 나면 부피가 너무나 많이 줄어 곱창을 이용한 요리는 아내가 투자한 어마어마한 노고와 시간, 견딤에 비해 그의 기대에 닿지 못했다. 물론 맛은 아주 있었지만, 곱창이 괜히 비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돼지 막창

 그러다 최근 중국 마트를 갔을 때 늘 눈여겨보았으나 애매하게 비싸고, 마찬가지로 손질에 대한 걱정에 사지 않았던 'pork bung', 즉 돼지 막창이 할인하고 있었다. 이것이 막창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손질하는 법을 찾아보곤 예정 없이 구매하기로 했다. 충동구매는 언제나 짜릿하다. 아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손질을 준비했고, 나는 손질법을 검색하여 아내에게 전해 주었다. 한 번 뒤집어 속을 잘 씻어내고, 기름과 불순물을 잘 떼어주고, 다시 뒤집어 물로 헹구고, 초벌로 삶고 나면 이제 구워 먹을 준비가 된다.

 다가오는 여름, 해가 넘어감에도 아직 공기가 따뜻하다. 그릴에 불을 지피니 여름의 냄새가 난다. 오후 여섯 시 삼십 사분, 한 사분 정도 아파트 잔디밭 스프링클러가 켜지는데, 우리는 매번 배우지 못하고 그때 그릴을 사용하러 가 굳이 그 물을 맞는다. 치이익, 하면서 흩뿌려지며 물이 증발하는 냄새에 더욱더 여름 같다. 팜팜 가든이다.

굽다가 잠깐 정신을 놓은 새 살짝 탄 부분이 생겼다. 역시 고기는 불 맛이다.

 그릴 뒤로 우리 집 방 창문 앞에 앉아 티비를 보는 보리.

 이게 정말 막창이 될까 둘 다 계속 조마조마했으나 잘라서 이 겹겹이진 동그란 고리 모양을 보니 진짜 막창 같다. 괜히 신이 났다. 막창 기름에 구워진 양파, 아스파라거스, 그리고 호박에서 올라오는 달콤한 냄새와 불향에 배가 너무나 고파왔다.

 전투같이 준비한 막창 구이, 아내는 사진 찍을 틈도 주지 않았다. 하나 집어 먹자마자 너무나 신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으으으음!!' 감탄을 한다. 나도 빨리 한 점 먹는다. 세상에, 살면서 먹어본 가장 맛있는 막창임에 틀림이 없다.

 특제 양념에 한 번 묻히고, 콩가루에 한 번 묻힌 다음, 마늘을 한 점 올려 먹으면...

 되새기면서 글을 쓰려니 배가 고프고, 또 먹고 싶고, 신이 난다. 뜨거운 불에 자체 기름으로 튀겨진듯 바삭한 껍질, 거기에 한껏 배인 불향, 어마어마하게 쫄깃한 식감, 잘 가둬진 육즙과 달콤하고 고소한 기름의 맛. 매콤 달달한 양념과 구수한 콩가루, 거리고 알싸한 마늘, 한 입 먹을 때마다 너무 감탄하게 되었다. 

 자극적이고 기름진 맛을 편안하게 씻어내 주는 누룽지, 그리고 밑반찬 깍두기, 오이소박이, 깻잎지는 시원하고 상큼한 맛으로 식사를 완성해준다.


 아내에게 물었다.

 '손질 한 보람 있었어?'

 '어.'

 '또 할 것 같아?'

 '어, 다 먹으면 또 중국 마트 가자.'

 그리하여 2주 만에 또 중국 마트에 다녀왔다. 두 배의 양을 사 와 손질을 하여 반쯤은 냉동해 두고, 나머지는 야채를 산처럼 쌓아 구워 먹었다. 처음에 언뜻 보기에 많아 보였으나, 몇 젓가락질 지나니 아내와 나 모두 '아, 5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며 슬퍼하였다. 이번엔 기름을 조금 더 남겨 더욱더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곱창보다는 훨씬 손질할만하다는 아내, 그 덕에 내가 이렇게나 맛있는 막창을 먹는다. 언제나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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