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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Jun 13. 2020

순두부 이야기

입에 착 감기는 얼큰함

 얼마 전, <삼시세끼>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차승원씨가 두부를 만드는 모습에 손호준씨와 유해진씨가 신기해하고 놀라워했던 모습을 보며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처음으로 두부를 만들었을 때, 나도 그러한 반응을 보였다. 한인 마트에 가면 종종 두 팩에 99센트 하는 두부를 굳이 아내가 직접 만들다니. 처음에는 아까워서 두부 그 자체만을 먹으며 그 풍미를 즐기곤 했다. 아내가 만든 손두부는 평소에 먹던 두부와는 차원이 다른 몽실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를 보여주었다. 반대로 아내의 손두부를 먹다가 어쩌다 시판 두부를 먹었을 때, 그 뻑뻑한 식감과 맹맹함에, 어떻게 여태 이걸 맛있게 먹었을까 싶기도 하였다. 시판 두부와 손두부의 맛 차이가 왜 이렇게 큰지 찾아보니, 시판 두부는 식용유를 짜 내고 남은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아내의 첫 손두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강원도 어디선가 두부집에서 두부와 비지국을 먹었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초당 두부로 유명한 강릉 어디가 아닐까 싶다. 요즘 그 쪽에선 두부로 아이스크림도 만든다고 하는데, 궁금하다. 하여튼 어릴적, 나는 콩을 아주 싫어했다. 콩을 잘못 먹고 심하게 토하고 아팠던 기억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두부집에선 너무 뜨거워서 한참 김이 나는 폭신한 두부와 포근하고 맑은 비지국에 간장 양념을 살짝 얹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때는 좋았다. 아빠, 엄마, 삼촌, 작은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다 같이 강원도 어느 콘도에서 묵으며 맛있는 것들을 먹던 때였다. 그것이 언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삼촌, 그리고 고모의 가족은 외국으로 떠났다. 그 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성화를 오롯이 받아내던 아빠는 언젠가 그의 동생과 통화를 하며 그에게 '너는 뭘 했냐며 '욕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놀기를 좋아했고, 이는 나의 삼촌을 닮았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게임이라던지, RC카라던지, 모형 헬기라던지, 삼촌의 취미를 아주 좋아했고, 그처럼 북어국을 좋아했다. 왠지 삼촌이 안쓰러웠다. 나의 아빠도 안쓰러웠다. 나의 아빠는 자신의 인생은 실패라고 말하였다. 아마, 나 자신도 그 실패의 일부일 것이다. 아빠가 울면서 무너지던 모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곤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모습 또한.

 두부와는 관계가 없으나, 외갓댁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였다. 언젠가 큰삼촌, 작은삼촌, 이모, 엄마, 다 모여 신나게 장어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한국에 들어갈 때면 엄마는 나에게 계속 장어를 사 주었다. 언젠가부터 작은삼촌은 연락이 끊겼고, 큰삼촌은 이혼을 하여 그의 처자식은 해외로 떠났다. 큰삼촌은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졌는데, 알고보니 췌장암이었다. 그 이후, 외갓댁, 그 작은 아파트, 현관 바로 옆에서 무기력하게 앉아있던 큰삼촌의 모습에 나는 계속 마음이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친가 할머니, 할아버지 덕에 서울로 이사오고 나서, 매주 주말이면 그들 댁을 찾았다. 그들은 나의 엄마에게 모질게 굴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나에게, 내 동생에게 그 놈의 '전교 1등이 [...] 망하는 기다, '라고 말하고도 한참 후의 일이다. 나의 아빠, 엄마는 여전히 그들에게 고통받고 있다.

 그래도 조금은 사이가 좋았을 서울 살이 이른 시절, 우리는 할머니집 앞에 있던 '북창동 순두부'에 종종 가곤 했다. 해산물은 싫어했으니, 나는 늘 고기 순두부를 먹었다. 부글부글 끓는 뚝배기에 엄마는 날계란을 톡, 까 넣어 주었다. 뜨거워서 온 입이 데면서도, 그 폭신한 순두부의 식감이 좋았다. 온 감칠맛을 끌어모은 듯, 입에 감기는 맛이 좋았다.

 반면 나의 엄마의 순두부는 미묘했다. 맹맹한 멸치 육수와 내가 세상 싫어하는 조개와 함께 끓여낸 찌개를 그래도 열심히 먹었으나, 즐길 수는 없었다. 그래도 순두부 자체는 언제나 그렇듯 뜨겁고 폭신해서 그것만 열심히 떠 먹곤 했다. 이마트에 가면 긴 비닐봉지 포장에 들어있던, <풀무원> 순두부 말이다.

 북창동 순두부는 놀랍게도 LA에서 역수입된 브랜드였다. LA에 정착하고 나니, 많은 이들이 북창동 순두부, 즉 'BCD tofu'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아주 어릴적 한국에서나 한 두 번 먹어보고, LA에선 외식을 거의 하지 않으니, 별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유명하긴 한지 한인 마트를 찾으면 인스턴트 식품처럼 포장된 BCD 순두부 찌개가 신나게 팔리고 있었다.

 아내가 두부를 만드는 것에 익숙해지고부턴, 두부를 부재료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청국장, 된장찌개 등에 툭 썰어 넣기도 하고, 으깨어 만두에 빚어 넣기도 하며, 기름에 고소하게 부쳐 먹기도 하였다. 볶은 김치에 곁들이면 여전히 손두부 자체의 고소함이 도드라졌다. 그리고, 두부를 굳히기도 전, 순두부를 이용하여 종종 찌개를 끓이게 되었다.

 정말로 뜨겁다. 두부를 한 입 베어물면 너무 뜨거워 입 안에서 식히지도 못하고 삼켜버린다. 매끈한 두부의 질감이 식도를 따라 흐르며 나의 위장을 태우는 느낌이 나를 신나게 한다. 국믈은 어찌도 그렇게 얼큰하고 감칠맛이 도는지, 기억 속 '북창동 순두부'보다도 훨씬 맛있다. 고추기름의 맛, 손두부의 고소함, 아내가 블렌딩한 여러 종류의 육수, 수많은 야채. 아내의 요리는 점점 더 맛의 근원을 분별해낼 수 없게 되어간다. 그것이 요리의 경험이자, 기술, 노련함이다. 

 순두부의 핵심은 두부와 얼큰한 국물, 그리고 달큰한 애호박이다. 애호박에 한껏 배인 매콤하고 뜨거운 국물, 폭신한 식감, 거기에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달콤함.

 깻잎지, 아주 완벽하게 익은 열무 김치, 탄수화물에 탄수화물을 더하면 완벽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밥과 함께하는 감자볶음, 그리고 감칠맛 덩어리인 명란젓. 순두부 찌개에 이보다 어울리는 반찬도 없을 것 같다.

 동네 사는 이웃, 우리에게 늘 케익을 구워주는 그에게도 한껏 반찬과 순두부찌개를 포장해서 가져다 주었다. 그는 한국의 반찬 문화, 그리고 순두부 찌개가 유난히 맛있게 느껴진다고 하였다.

 

 브런치에 한식 태그가 한창이다. 가족과의 소중한 기억과 한식에 대한 콜라보라고 한다. 나는 비뚤어진 사람이라 가족에 대해 긍정적인 기억만큼 부정적인 기억 또한 많아, 한식과 가족은 별개라고 종종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언제나 그 기억을 다독여주듯, 덮어주듯, 나에게 그러한 음식들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게 해준다. 그의 순두부 찌개를 먹으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잘 참으면서 그 뜨거운, 커다란 순두부 덩어리를 한입 채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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