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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Jun 19. 2020

갈 때가 되었다.

다 커버린 녀석들

 오늘 아침 마루는 흐리다. 책상을 보니 비도 조금 온 것 같았다. 잠시만, 뭐라고? 화들짝 잠에서 깬다.


 어이고, 난리가 났다. 책상 위, 나의 랩탑, 핸드폰, 컴퓨터 키보드, 그리고 카메라가 물 위에서 참방 거리고 있다. 그 옆으로 넘어져 있는 꽃병, 거기서 살고 있는 싱고니움과 몬스테라가 불쌍하게도 널브러져 있다.


 넘치는 에너지에 훌륭한 피지컬을 가진 이 녀석들은 이제 조금만 디딜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내 책상 위까지도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 책상 의자를 멀리 치워두지 않은 내 탓이다. 랩탑은 켜지는 것 같고, 데스트톱도 별 문제는 없다. 카메라는 렌즈를 위로 향한 채 두었더니 뒤쪽 패널이 물에 잠겨 있다. 세상에. 전원을 켜 셔터를 눌러보니 다행히도 잘 찍힌다. 젠장, 이 녀석들 핑계 삼아 드디어 풀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습기가 차긴 했는지 뷰파인더가 계속 뿌옇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있는 동안 이 자식들은 내 다리 주변을 알짱거리며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그릉그릉,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 보드라움과 따스함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이미 이들을 용서해 버렸다. 아이고, 내 새끼들. 동그라미 세모 세모들이 갈 때가 되었다.


 '까복이, 까북이, 까몽이, 까뭉이', 실직적으론 '복이, 북이, 몽이, 뭉이'라고 불렀던 우리의 열여섯 번째 임보 고양이들은 임보 활동의 바른 예, 꿈과 이상이 되어 주었다. 마치 이 전 '라비, 올리, 만두, 찐빵, 호빵'을 임보하며 고생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처음에 살짝 눈이 아팠지만, 약도 잘 먹고, 안약도 잘 넣고, 무엇보다 알아서 정말 열심히, 신나게 먹고, 알아서 습식 사료에도 적응하고, 두어 번 정도 실수 후엔 알아서 화장실도 가리고, 얼마 있어서 알아서 건식 사료에 적응하고, 잘 뛰어놀면서 제 알아서 어엿한 고양이가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제 두 달의 나이, 그리고 2파운드의 무게를 채워서 다음 주 월요일이면 떠나간다. 보호소에 돌아가면 순식간에 입양할 사람들이 나타나겠지만, 우리의 욕심에 우리 주변, 우리와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데려갈 수 있도록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다. 정말로 운이 좋게 그 노력은 의미가 있어서, 네 녀석 모두 이 동네 사는 이들이 입양하기로 했다. 이렇게 행복함만 가득한 임보를 언제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까복, 까북, 까몽, 까뭉.

열여섯 번째 임보 고양이, 쉰넷 녀석들째. 

태어난 날: 4/10/2020

임보하게 된 날: 4/27/2020

제 집으로 가는 날: 6/22/2020


복이 


북이


몽이


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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