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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May 01. 2020

동그라미, 세모, 세모.

어쩌다 너희를 만나게 되었을까.

다들 낮잠을 잔다. 아내도, 보리도, 구름이도, 아직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태어난 지 반 달 된 아가 고양이 넷도.


나와 아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만두, 찐빵, 호빵, 라비, 올리가 어엿한 고양이가 되어 우리를 떠난지도 몇 달, 아직도 그 녀석들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다시 아기 고양이들을 임보 할 날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다리지 않는다. 구조된 아가 고양이들을 돌볼 수 있는 것은 신나고, 힘들고, 뿌듯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발견되지 못해 길에서 힘들기만 하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고양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세상 최첨단 기술과 인력을 동원해 수색을 해도 어디 풀숲에서 덜덜 떨고 있는 고양이들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는 120%의 확신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올봄은 COVID-19의 영향으로 동물 보호 센터의 구조 활동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평소 지금이면 이미 수많은 봉사자들이 구조된 고양이들을 임보 하면서 본인의 임보 고양이가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고 자랑할 때인데, 고양이를 신경 쓰기엔 인간 코가 석자인 때라 구조되는 고양이는 거의 없고, 반대로 인간이 집 안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남아돌게 되어 임보 자원자들의 대기열만 몇 백 명으로 길어졌다.


그러다 며칠 전 우리에게 연락이 왔다. 눈이 아픈 젖먹이 녀석들 넷을 돌봐줄 수 있겠냐고. 한 30초 정도 고민을 하다가 그 녀석들을 데리러 가기로 했다. 아내가 부리나케 저녁 재료 손질을 마쳤다. 오랜만에 보호소로 운전해 가는 길, 어느새 바깥 온도가 25도다. 창문으로 내리쬐는 따스한, 아니 이젠 뜨거운 햇살에 우리는 노릇노릇 구워진다. 오래간만에 멀리멀리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아, 이제 애들이 오니 안 되겠구나.


보호소에 도착하니 스태프 한 명이 이 녀석들을 위한 분유나 젖병, 필요한 기타 도구, 그리고 약을 챙겨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녀석들이 든 캐리어를 가지고 온다. '여자애 넷이야! (Four girls!)', 라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웃으며 얘기해 준다. 나도 따라 웃는다. 주황, 하양, 검정색이 섞인 제일 앞의 칼리코 녀석이,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스태프가 항생 안연고를 바르는 법을 보여 준다. 차로 걸어오며 캐리어 안을 들여다보니, 녀석은 연고 때문에 눈을 아예 감고 나를 향해 '이옹!' 하고 운다. 그렇게 그 뒤로도 동그라미 세모 세모가 셋 더 있다. 


늦은 오후, 귤색 햇빛이 아름답다. 바람에 따스하고 건조한 냄새가 난다. 아내의 정원에는 식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올해도, 조금 늦었지만, 임보를 시작한다.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어느새 찾아왔다. 콩국수를 며칠 전 먹었으니 여름도 같이 온 것일지도 모른다.


열여섯 번째 임보 고양이

네 여자 아이들

태어난 날: 04/10/2020

우리 집에 온 날: 04/27/2020



"... 한 30초 정도 고민을 하다가..."


여전히 둘 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 요즘, 평소에 비해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었으나 정작 임보 요청이 오니 순간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임보를 하면 할수록 경험과 노하우, 자신감도 쌓이지만, 그 이상으로 걱정이 쌓인다. 아가 고양이들이 신나고 귀엽게 뛰어다니는 모습만 생각했던 임보 초기에 비하면 이제는 우리가 데려올 아이들이 아프지 않을까 하는 걱정, 우리 집 고양이 보리, 구름이가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 쪽잠 자며 돌보느라 우리가 무리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특히나 이런 1주, 2주 차의 아주 어린 녀석들이 오면 변수가 너무나 많아서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일희일비하게 된다. 똥 색깔이 이상하진 않은지, 설사를 하진 않는지, 숨소리가 거칠지는 않은지, 코가 막히거나 재채기가 심하지는 않은지, 털이 빠지는 부분은 없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먹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지, 체중이 잘 늘고 있는지 등등, 임보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점점 늘어만 간다. 가장 위험한 이 시기를 잘 넘겨 안정기에 들어서면 화장실을 완전하게 가릴 때까지 온 집 구석구석에 똥과 오줌을 싸 놓는, 그리고 우유에서 습식 사료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온 몸에 맘마를 묻혀 털이 딱딱하게 굳다 못해 빠지는, '그래, 건강하면 되었다'고 자기 암시를 걸며 참고 기다리는 시기가 찾아온다. 이 모든 것이 지나야 비로소 이 아가 고양이들의 귀엽고 신나는 모습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때가 찾아온다. 그러다 보면 곧 이 녀석들은 떠날 때가 된다. 정말 크지 않을 것 같던, 고양이가 되지 않을 것 같던 녀석이 홀라당 떠나 버린다. 우리의 노력과 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억이나 할는지, 그렇게 가 버린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괜히 뿌듯하고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임보를 한다.


고양이에게 태어나서 3주쯤 되는 때는 아주 약하고 위험한 시간이다. 건강해 보이던 아가들도 유전적, 발생적 문제이건, 면역력이 떨어지는 문제이건, 혹은 주로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다. 네 시간마다 분유를 먹이려고 아가들이 자고 있는 리빙 박스를 열 때마다 부디 잘 있기를, 부디 잘 먹기를 늘 바란다. 이때를 결국 못 넘기고 떠난 '흑미', '작은공'이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혹은 이 시기를 아내의 정성으로 가까스로 이겨내고 무럭무럭 잘 자라서 어딘가로 입양된 '호빵'이에 대해서도. '호빵이는 정말로 내가 다 키워낸 느낌이야. 걔 삶에 내가 끼칠 수 있는 영향은 이미 다한 것 같아. 그래서 호빵이가 다른 데로 간 것이 아쉽지도 않을 지경이야.' 아내가 말한다.


고양이 별에 있을 흑미와 작은공
기특하게도 잘 커준 호빵.

처음에는 정말 '고양이가 귀여워서' 임보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마저도 일 년을 꼬박 고민하고 내린 결정인데도 말이다. 그 당시엔 아픈 고양이들을 임보 할 생각이 없었다. 아픈 고양이는 커녕 건강한 고양이를 임보한 경험도 적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 아픈 모습이 보기 불편했다. '귀엽지' 않았다. 그러나 몇 년째 고양이들을 임보 하면서 그들의 아픈,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모습을 보며 아픈 고양이들을 맞이하였을 때 더 큰 간절함을 갖고 돌보게 된 것 같다. 그 힘을 내는 모습이 예쁘다.


2주 반쯤 되어서 우리에게 온 이 녀석들은 애초부터 눈이 아팠다. 박테리아 감염 때문에 망막이 붉고 흐리다. 그 눈이 너무 안쓰럽고 가엽다. 최선을 다해서 이들을 돌보고 어엿한 고양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열심히 먹고, 눈에 연고를 바르는 것이 너무나 싫어도 참아주는 녀석들이 예쁘다. 눈물 가득, 눈곱 가득,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가끔 눈을 떴을 때 눈을 마주쳐주는 것이 너무나 예쁘다.


알람이 울린다. 새벽 세시 오십오 분. 날이 많이 따뜻해졌지만 새벽의 공기는 늘 차갑고 무겁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 녀석씩 쓰다듬어 본다. 다행히 모두 따뜻하다. 아내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따라 나와준다. '같이 해.' 평소 같으면 아침에 일을 가야 하니 새벽은 아내의 몫이었다. 같이 하면 훨씬 일이 쉽고 위안이 될 텐데, 그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새삼 느낀다. 녀석들은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도 먹는다. 나는 다시 네 시간 후,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맘마를 먹인다. 그 네 시간 후, 열두 시까지 아내가 모처럼 깊게 잔다. 제일 걱정되던, 가장 작고 눈 상태가 안 좋은 녀석도 조금씩, 조금씩 젖병을 더 오래, 더 많이 빤다. 고맙다.


이제는 매 네 시간 먹일 때마다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무게도 그렇고, 모습도 그렇고, 행동도 그러하다. 어서 마저 눈이 말끔하게 낫기를 바란다. 유난히 뭉실뭉실한 꼬리를 갖고 있는 녀석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궁금하다. 어서 어엿한 고양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우리와 오래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서 천천히 크길 바라기도 한다. 이제 조금씩 빛에 반응하고, 성질도 부리고, 배변 유도를 하지 않아도 쉬를 해서 쉬 냄새가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괜찮으니,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좋겠다. 어렵게 이름을 붙였다. '까복', '까북', '꼬뭉', '꼬몽'. 임보를 많이 하다 보면 이름 붙이는 것도 일이다. 녀석들이 있는 리빙 박스 앞에 앉아 생각을 한다. 내가 귀찮다고 지금 아무것도 안 하면 이들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그 생각만 해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어서 까복이를 꺼내 담요로 감싼다. 품에 안겨있는 고양이가 따뜻하다. 그릉그릉, 그릉그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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