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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Apr 16. 2020

보리구름 이야기

영문도 모르고 신난 녀석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기 위해 방문을 연다. 그 짧은 틈을 타 안방으로 들어오려는 회색 그림자를 아주 재빠르고 민첩한 동작으로 막아내고 방문을 닫는다. 휴, 아내가 푹 잘 수 있는 몇 시간을 더 벌었다. 미션에 실패한 구름(2, 여)은 화가 난 것인지, 내가 반가운 것인지, 배가 고픈 것인지, 혹은 셋 다인 것인지 잘 모르겠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리곤 몸을 딴딴하게 말고, 꼬리를 파르르 떨며 '므애에', 하면서 운다. 이 무채색 고양이의 채도 높은 핑크색 혀가 귀엽다. 화장실에 갔다가 거실에 나가 기지개를 폈다가 부엌에 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내내 구름이는 졸졸 쫓아다니며 시끄럽게도 말을 건다. 토르르 밥을 부어주면 그제야 오독오독 밥을 먹느라 잠깐 조용하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부엌 정리를 하고 있으려니 내 눈높이보다 살짝 위, 전자레인지 위로 보리(4, 남)가 어디선가 날아든다. '아! 아!' 하고 운다. 정말이다. 어젯밤 마저 못한 설거지를 하고, 그릇 정리를 하는 내가 계속 그렇게 내게 말을 건다. 부엌 쓰레기봉투를 갈고 있으려니 안절부절못한다. 어휴, 또 비닐봉지 갖고 놀고 싶은가 보다, 싶어 잘 접어 놓은 비닐봉지 뭉치를 던져주니 신이 나서 전자레인지도 뛰어넘어 잡으러 간다. 우다다 소리가 경쾌하다.


밥을 다 먹은 구름이도 신이 나서 보리와 같이 논다. 왠지 모르겠는데 아침은 구름이에게 굉장히 신나는 시간이라 보리와 같이 뛰어놀면서도 끝없이 '므애에', '므의아' 하면서 운다. 방문 앞에까지 가서 우는 녀석의 행태에 아내가 깰 것 만 같아서 거실에서 놀 수 있도록 유도한 후 나도 같이 논다. 커피 한 모금씩 마시면서.


그러다가 난데없이 화장실에 가서 모래를 북북북 판다. 보리가 시원하게 똥을 싸면서 '우으우어우워어ㅓ어ㅡ엉' 하고 운다. 구름이는 화장실 전문가라, 한 3분 정도 모래를 파낸다. 주로 화장실 밖으로까지 신나게 모래를 퍼 날린다. 쉬를 하고 나와선 신나게 또 '므애에엥' 하면서 날아다닌다. 아 정말 어이가 없고 귀엽고 신이 난다, 이 자식들아. 한동안 정신없는 아침 시간이 지나면 둘 다 잠잠히 굴러 다닌다. 요즘 구름이는 캣타워가 좋다. 보리는 그냥 바닥에서 뒹굴뒹굴 지낸다.

시끄러운 구름이. 조금 잠잠해지고 나면 캣타워에 앉아 예쁜 척을 한다. 아니, 예쁘다.

보리는 세상을 부술 기세로 뛰어다니다가 그 장난스러운 표정을 가지고 뒹굴거리며 쉰다. 보리는 뛰어놀다가 변기도 깨 먹고, 블라인드도 박살을 낸 전과가 있다. 이런 거대하고 센 녀석.

가끔은 세상 사이가 좋아 같이 잔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가끔씩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는 것 같은데 이렇게 사이좋게 같이 잘 때도 있단 말이지, 너무 신기하고 다행이야', 하고 아내에게 얘기한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돌아보지도 않고 '우리도 그렇잖아?'라고 답한다. 역시 그는 현명하다.

집에 콕 틀어박힌 우리는 서로가 24시간 같이 있는 시간과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조정을 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같이 지내면서도 서로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런가 하면 고양이에게 그런 것이 없었다. 일을 하건, 장을 보러 가건, 운동을 하러 가건 하루에 집에 없던 시간들이 이 사태로 인해 거의 0으로 줄어들자, 그들의 집사들이 제대로 24시간 내내 그들 곁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제법 맘에 드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뭐라고 '아아', '므애엥' 거리며 말을 걸고, 그릉그릉거리고, 배에 올라와서 한참 자고, 꾹꾹이를 하고, 부비적거리고, 24시간 내내 이 녀석들을 보는 것이 나도 제법 맘에 든다.

구름이의 고양이 요가 스튜디오. 아내가 요가 매트만 펴면 그렇게 그 위에 앉아 아내의 요가 수련을 하는 동안 자리를 지킨다. 매트가 없이 요가를 할 때엔 그 옆 카펫에 잠자코 앉아서 아내를 지켜본다. 이의 효과로는 요가를 하면서 귀여워서 신이 난다는 것과, 너무 귀엽고 평화로워서 요가를 그만두고 그냥 누워있게 한다는 중요한 것들이 있다.

따끈따끈하고 복실복실한 구름이 냄새가 난다.

내가 빵을 굽는 것이 신기한 보리. 집에 틀어박혀 계속 새로운 음식을 요리하고, 빵을 굽는 것이 신기한지 이 모든 것의 냄새를 맡아보곤 한다.

낮잠을 잘 때에도,

저녁에 소파에 누워 책을 읽을 때에도 함께하는 우리 고양이들.

커다랗고 듬직한 보리이지만, 어리광이 너무나 많아서 안아달라고 자주 운다.

어휴, 이 예쁜 새침데기 구름이.

넓은 집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굳이 넷이 모두 식탁에 모여있는 시간이 너무나 많다.

포근포근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녀석들.

한 때엔 식물들까지 식탁 옆에 자리 잡아서 아주 많은 생물들이 높은 밀도로 이 작은 영역에서 다 같이 삶을 영위하였다.

귀여운 구름이

귀여운 구름2

박스성애묘 보리는 어떤 박스에건 들어가려고 한다. 열심히 라탄 공예를 하고 있는 아내의 작업물을 상자스런 형태로 인식하곤 들어가려는 것을 아내가 막아보려고 목덜미까지 붙잡았지만 허사였다.

평안

몬스테라 한 줄기, 뿌리내리라고 수경 환경을 만들어주었더니 구름이가 몬스테라 차 (茶)를 마신다. 이 엉뚱한 모습들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고양이가 없었을 때엔 얼마나 덜 재미있었을까.

아는지 모르는지, 많은 사랑을 주고받는 우리의 고양이들.

상자 성애묘 보리. 몸이 살짝 낄만한 상자도 너무나 좋아해서, 어딜 가든 보리를 위한 상자를 찾아보게 된다.

이렇게 장난을 쳐도 가만히 있어주는 착한 녀석.

고양이가 이래도 되나 싶은데, 굉장히 높은 확률로, 특히 더운 날이면, 이렇게 벌러덩 누워서 굴러다닌다.

뭐 이 녀석아. 귀여운 녀석아.

지금은 둘 다 곤히도 잔다. 이름을 불러도, 옆에 살짝 가도 모른다. 오늘 낮에도 다 같이 잘 놀았으니 이젠 쉴 때인가 보다. 내일 아침에도 신나게 떠들고 뛰어다니고 안아달라고 징징거릴 우리의 보리와 구름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건 이들은 우리가 집에 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우리가 집에 있다는 사실이 싫지만은 않다.


몇날 며칠을 비가 오더니 어제는 모처럼 맑았으나 쌀쌀했고, 오늘은 햇살이 따가운데다 공기마저 따스했다. 이를 맞아 둘이 같이 장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 열려 있는 안방 창문 틀에 두 녀석이 꿈벅 꿈벅, 바람 냄새를 맡으며 졸다가 나를 보자마자 눈이 땡그랗게 되었다. 한 3초 후, 현관 문을 여니, 순간 이동을 한 두 녀석들이 꼬리를 바르르 떨면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아내라면 이렇게 얘기했겠지, '아이고, 내 새끼들'. 나는 두 번씩 이 녀석들을 쓰다듬고, 맘마를 토르르 따라준다.


'복실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의 아가 구름이. 많이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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