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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Feb 04. 2020

만두, 찐빵, 호빵, 라비, 올리 (4)

임보 하는 이야기 15 - 4, 아픈 아가들.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되새기고 정리하여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 앞엔 그런 경험조차 풍화되어 달콤 씁쓸하며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이토록 손이 많이 가고 걱정도 많이 되었던 임보 고양이들이 없었지만, 어느새 다 자라 버려 곧 떠나버릴 날을 앞둔 요즘 나는 이미 이 녀석들이 그립다.


무지개다리 문턱에 걸쳐 앉았다가 지구에 남아있기로 한 호빵이는 다시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고, 라비, 올리도 우리에게 오게 되어 이젠 다섯 남매가 다 함께 신나게 하루하루를 보낼 일만 남았겠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섣부른 기대였다. 제니퍼 헏슨과 촬영을 하고 우주 대스타가 되었던 저녁, 전날부터 재채기를 한 두 번씩 하던 올리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눈도 부었고, 코도 막히고, 콧물도 나고, 재채기도 더 많이 하고, 영락없는 상기도 감염(URI, Upper Respiratory Infection)의 증상이었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올리, 그리고 늘 올리와 같이 지냈던 라비를 보호소에 데려가기로 했다. 전염성이 강한 이 병은 보호소에 오래 머무를수록 걸리기 쉬운데, 우리가 먼저 데려왔던 찐빵, 호빵, 만두에 비해 몇 주는 더 보호소에 남아있던 라비, 올리가 이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 다섯이 모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라비, 올리는 보호소에 맡겨졌다. 이젠 그래도 제법 튼튼해져서 생명에 큰 지장이 있지는 않을 테고, 며칠 안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우리는 돌아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전염성 높은 URI는 우리 집에 남아있던 고양이들에게도 하나씩 영향을 끼치기 시작해 호빵, 만두, 그리고 심지어 우리 집 성묘 보리와 구름이 마저도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찔찔 흘리고 다녔다. 다행스레 찐빵이 만큼은 이 혼돈에 말려들지 않았다. 


호빵이는 여전히 가장 작고 여린 녀석이었기에 제일 힘들어했다. 코가 심하게 막혔고, 다시 젖병을 빠는 것을 거부했다. 불과 몇 주전 호빵이가 많이 아팠던 경험이 되살아나 아찔했다. 우리는 다시 호빵이에게 주사기로 자주, 조금씩 분유, 당분을 잘 섞어서 먹이고, 이 녀석이 숨을 잘 쉴 수 있도록 습도가 높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 리빙 박스 안에 작은 가습기를 넣어주기도 하고, 따뜻한 젖은 수건을 넣어주기도 하였다. 실제로 습기가 도움이 되는지 호빵이는 그 젖은 수건 위에서 잠을 종종 잤는데, 맘마를 먹일 때 한껏 축축해진 호빵이를 보는 것이 너무나 마음 아프면서도 조금이라도 숨을 쉬는 모습에 안도할 수 있었다. 가끔은 욕조에 뜨거운 물을 한가득 받아두어 화장실을 습기에 가득하게 해 두곤 호빵이와 함께 안타깝고 귀엽기 그지없는 반신욕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정성이 전해졌는지, 사흘 즈음 지난 저녁 호빵이는 다시 젖병을 빨기 시작했다. 몇 주전 아내가 내게 말해주었듯, 나도 그에게 말해주었다. '호빵이 괜찮을 건가 봐. 젖병 빨았어.'

그간 아파서 먹기 어려웠던 맘마를 이제야 다 만회하겠다는 듯, 어마어마한 식탐을 보여주며 분유를 먹었다. 그 덕에 조금씩 체중이 늘고 어엿한 고양이로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어 고마운 우리 호빵이.




매일같이 보호소에 이메일을 보내 라비와 올리의 상태를 물었다. 보호소에서 처음에 직접 병원균에 노출되어 그런 것인지 그들은 생각보다 오래 보호소에 남아 있어야만 했다. 처음에 우리가 다섯을 다 데려올 수 없었던 것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2주 정도가 지나, 드디어 다시 우리 집으로 임보를 올 수 있을 거라는 메일을 받았다. 너무나 신이 나서, 아내에게 말도 안 하고 보호소에 갔다. 고생을 많이 한 녀석들은 우리 집에 남아 있던 호빵, 찐빵, 만두에 비해 턱도 없이 작았고 꼬질꼬질했다. 차트를 보니 항생제도 제법 투여받고, 특히나 라비는 상태가 호전되다 다시 아파져서 정말 오래 치료를 받았다. 돌아오는 길, 이 녀석 털에서 나는 꼬릿 꼬릿 한 냄새가 차를 한가득 메웠다. 하지만 라비와 올리가 추울까 봐, 다시 아플까 봐 창문을 열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이 녀석들이 다시 우리에게 건강하게 돌아와서 너무 감사했다. 아내는 그 꼬질꼬질한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가 애초에 데리고 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걸, 혹은 우리가 호빵이를 돌본 것처럼 이 녀석들도 우리 집에서 그냥 돌볼 수 있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들 때문이었다.


임보 하는 고양이가 아플 때, 보호소에 돌려보낼지, 우리가 집중적으로 보살필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정말 어렵다. 보호소에는 의료 장비라던지, 의약품이라던지, 전문 의료진이라던지 철저하게 준비는 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 마리, 한 마리에 집중을 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우리가 임보 하는 고양이들을 돌보지만, 그러한 전문 지식, 장비, 의약품이 없다. 호빵이는 우리의 정성을 잘 받아주어 금방 나아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보호소의 보살핌이 있었으면 더 금방 나았을 수도 있다. 한편, 라비, 올리를 계속 우리가 돌보았다면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았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안타까운 후회만 남는다. 이들이 늘 건강하기를.


어찌 되었건 이 두 녀석들이 돌아왔다. 아내가 마침 그 전날 밤, 라비와 올리가 곱슬곱슬한 털을 하고 다시 돌아온 꿈을 꿨다고 했다. 꼬질꼬질한 이 녀석들은 실제로 제법 구불구불한 털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시 왔다. 호빵, 만두, 찐빵이와 또 한동안 떨어져 있어 어울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지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역시나 남매라는 듯 다 같이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돌아온 라비올리.

라비

올리

이 녀석들이 결국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우리는 그저 감사하다.


다퉈도, 말썽을 피워도, 귀찮게 굴어도 모두 괜찮다. 

나도, 아내도, 보리도, 구름이도, 만두, 찐빵, 호빵, 라비, 올리도 오늘도 내일도 건강하게만 지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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