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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Jan 11. 2020

만두, 찐빵, 호빵, 라비, 올리 (3)

임보하는 이야기 15 - 3

만두, 찐빵, 라비, 헐리우드 (Hollywood)에 진출하다.

11/16/2019


호빵이가 건강해지고, 만두, 찐빵, 호빵, 라비, 올리 다섯 남매가 다시 만나고 조금은 평탄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보호소에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 녀석들 중 셋 정도를 버즈피드 (Buzzfeed) 영상에 출연시킬 수 있겠냐는 제의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놀랍고 신기해서 이메일을 읽어보니 사정이 이러하였다. 곧 개봉을 앞둔 캣츠 (Cats) 영화의 배우들이 영화 홍보 겸, 팬서비스 겸 짧은 인터뷰 영상을 제작하기로 했는데, 영화의 테마가 테마이니만큼 고양이들을 데리고 놀면서 촬영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여기에 출연할 고양이 배우들을 우리가 소속된 보호소를 통해 찾기로 했고, 이는 동물 보호와 보호소에 대한 인식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왕이면 사랑스럽고 귀여운 녀석들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 테니, 봉사자들 페이스북 그룹에 소개되는 고양이들 중 우리 솜뭉치들을 예쁘게 본 홍보팀이 우리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아무리 보온 도구를 들고 다닌다고 해도 아가 고양이들에겐 전반적으로 추운 날씨이기도 하고, 설사기가 있는 녀석들이 있어서 조금 고민을 하다가 가장 크고 건강한 셋, 만두, 찐빵, 라비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마치 부모가 된 느낌으로 마음은 저만치 앞서가, 이들에게 '헐리우드 슈퍼스타!'와 같은 경험을 남겨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사실 본묘들에겐 별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언젠가 우리를 떠난 이 녀석들을 떠올릴 때 우리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 하나쯤을 더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을 테다.


다행히도 아주 맑고 쨍한 토요일 아침, 전기 매트, 전자레인지로 데우는 따끈이 디스크, 분유, 젖병, 휴지, 물티슈 등등을 바리바리 챙기고 처음으로 만두, 찐빵, 라비와 길을 떠났다. 이러니 마치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온 것만 같아 잔잔하게 신이 났다.


촬영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 한 40분 정도 북동쪽, 그 유명한 헐리우드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여태 한 번도 가지 않다가 이렇게 가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번에도 테마파크 부분이 아닌 실제 뒤쪽 세트장에 가게 되는 것이었다.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되어 있어 미리 방문권을 조정해야 하며, 입구에서 신분증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북적북적한 세트장들 사이로 만두, 찐빵, 라비를 고이 담은 캐리어를 들고서 걸어가려니 지나다니는 관계자들이 한 번쯤은 그 안을 들여다보면서 'Awww'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속으로 '그럼, 얘네들이 어떤 애들인데', 하는 마음에 이상하게도 뿌듯했는데, 자식 자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세트장에 도착하자 에어컨이 아주 빵빵하게 틀어져 있어 조금 걱정이 되었으나, 촬영을 조율하는 보호소 측 담당자가 녀석들이 따뜻하게 있을 수 있도록 보온 패드, 그리고 많은 담요들을 준비해 주었다. 이 기획에 관계된 스태프들도 이 녀석들을 보고 신이 났다. 다들 손을 한 번씩 씻은 후 돌아가면서 쓰다듬어보고, 안아보고, 사진을 찍고, 한참을 구경을 했다. 아직 낯을 가리지 않아서인지, 그저 이 녀석들이 넉살이 좋은 것인지,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신나게 뽈뽈거리고 돌아다녔다. 우리도 이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귀여워서 한참 바라보고만 있었다. 


촬영 예정 시각이 한참 지났으나 배우가 아직 세트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쪽 분야에 종사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일의 75%는 기다리는 일이라는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라비, 찐빵, 만두와 놀면서 촬영을 할 배우는 바로 제니퍼 헏슨 (Jennifer Hudson), 캣츠의 주연 중 하나라고 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도 있고, 찾아보니 유명한 것 같았으나 이런 쪽으로는 문외한인 나와 아내는, 우리 고양이들이 영상의 형태로 남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생각에 두근두근할 뿐이었다.


한 30분 정도 지나서 배우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우리도 부리나케 준비를 시작했다. 기력 떨어지지 말라고 분유도 한 번 먹이고, 혹시나 촬영 중 실수하지 않도록 배변 유도를 해 주었다. 찐빵이가 아직 배가 조금 아픈지, 살짝 설사를 했다. 그동안 스태프들은 제니퍼 헏슨에게 기획과 내용을 설명해 주고, 조명, 배경 등을 세팅했다.


모두 준비가 되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사인과 함께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정적에 쌓였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제니퍼 헏슨의 목소리가 그 정적을 파고들었다. 오로지 그녀의 목소리, 몸짓만을 위한 시공간.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왔던 느낌이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정말 놀라웠다. 목 뒤로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가 짜릿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이제 우리가 고양이들을 건네줄 때가 되었다. 만두, 찐빵, 라비. 하나, 하나 제니퍼 헏슨에게 건네주었다. 밝은 조명, 눈부시게 쨍한 분홍색 배경 아래 이 하얀 솜뭉치들은 빛이 났다.

녀석들은 사람의 온기가 좋은지, 어디 도망도 안 가고 배우 주변에서 계속 알짱거리며 자신이 가장 잘하는, 귀엽게 꼬물거리는 일을 했다. 다리에도 오르고, 어깨에도 오르려 하고, 배우와 신나게 놀았다. 배우도 고양이를 원래 키우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 꼬질꼬질하지만 귀엽고 몽실몽실한 이 녀석들을 예뻐해 주는 것 같았다. 아내를 보니 숨을 아주 조용하고 얕게만 쉬면서 라비, 찐빵, 만두에게서 눈을 떼지도 못하고, 깜빡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도 그러고 있었음을 깨닫고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그렇게 촬영은 한 20분 정도 계속되었고, 이 시간은 이 녀석들을 구경하느라 쏜살같이 지나갔다. 자식을 보면 이런 느낌일까, 또다시 생각했다. 연극을 할 때 무대 구석의 바위 역할을 하더라도 자신의 아이밖에 안 보인다고 하는데,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잘 노는 모습에 너무 뿌듯하고, 조명 아래 너무 예쁘고, 혹시나 배가 아파서 실수를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고, 혹시나 배우의 어깨에서 뛰다가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고... 이 셋에 집중하느라 피곤해졌다.


촬영이 끝나고 나니 아주 빠르게 정리가 시작되었고, 우리도 다시 녀석들을 받아 들었다. 왠지 다른 모습인 것 같아서 잘 보니, 배우가 안고 노느라 군데군데 화장품이 묻어서 하얀 털이 분홍빛으로 물든 것이었다. 솜사탕 같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웃음이 났다.


우리로 말하자면, 임보한 역사 중 처음으로 이 녀석들 덕분에 돈을 벌었다. 기름값, 그리고 수고했다며 $20과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를 받은 것이다. 우리는 웃으면서 이제 임보 봉사자가 아닌 진정 프로페셔널 임보인이 되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일한 것은 고양이들인데 우리가 그것을 받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주말에 귀찮게 짐을 바리바리 짐을 싸고, 운전도 꽤 하고, 신경도 많이 쓰고, 꽤 큰 시간을 들여 제법 피곤해졌지만, 왠지 자꾸 웃음이 나고 신이 났다. 이 녀석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직도 이 경험이 너무나 신기하다.


브런치 자체에 유튜브 링크 기능이 없는 것 같으니 이 촬영을 바탕으로 한 공식 버즈피드 비디오의 링크를 남겨본다. 이 글을 앞으로 두고두고 읽으면서 우리는 한 번씩은 눌러보게 될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dmm1wTlrdLU


그렇다, 이번 임보 고양이들은 공식 헐리우드 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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