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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Oct 06. 2020

파티 누들 이야기

아껴 먹기 너무나 어려운, 잔치 국수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이다. 치열하게 클라이밍, 캠핑 트립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도 아니고, 마음먹고 장을 보러 갈 일도 없고, 특별히 사람 만날 일도 없고, 바쁘게 보낼 한 주가 시작되기 직전, 그저 차분하게 집 안에서 편안하게 쉬는 그런 날이다.

 늦게까지 자고 싶었고, 그럴 줄 알았으나 나이가 드는 것인지 오늘도 기가 막히게 여덟 시 반쯤 잠이 깨어 버렸다. 마루로 나와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으려니 보리가 내 팔 안쪽으로 푸짐하게 자리를 잡곤 겨드랑이 안쪽으로 머리를 쿡 찔러 넣었다. 숨이 잘 쉬어지는지도 모르겠는 그 자세로 보리는 나에게 어리광을 부렸고 구름이는 배 위로 올라와 콧물을 뚝뚝 흘리며 꾹꾹이를 했다. 그 따끈따끈하고 그릉거리는 존재들 덕에 나는 조금 더 졸다 일어났다.

 어제 피곤한 하루를 보냈던 만큼 조금 더 느지막히 자다 일어난 아내를 꼭 안으니 달콤하고 포근하고 따뜻한 잠의 냄새가 났다.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그의 눈과 코, 볼, 귀, 입술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오늘도 어찌 저찌 같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고마울 따름이다. 산뜻하고 맑은 바닷빛 바지와 그 위로 맑게 부서지는 파도같이 하얀 주름진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가 오늘도 사랑스럽다.

 아내는 일어나자마자 고구마를 쪄 내고, 90년대 히트곡들을 노동요 삼아 틀어놓은 채 청소기를 돌리며 아침 시간을 보낸 뒤, 지금은 영화 예능 방송을 켜 놓고 그가 예전에 손바느질로 만들었던 티 코스터를 푼 뒤 미싱으로 다시 뭔가 만들고 있다. 그 와중에 그는 아마 저녁에 또 뭔 맛있는 것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그릇 정리를 한 뒤 며칠 전 잘라먹었던 부추들에게 한껏 물을 주고, 오후엔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중간중간 내일부터 해야 할 일 준비를 하다, 만화를 보다, 우스꽝스럽고 귀엽게 자고 있는 보리, 구름이의 사진을 찍다가, 그렇게 지루한 듯 미묘하게 재밌는, 그리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법 굉장했던 지난주의 늦여름 더위가 슬슬 지나가는지, 오늘은 살짝 구름도 끼고 중간중간 시원함이 느껴진다. 점점 짧아지는 해와 함께 찾아오는 가을이 반가우면서도 아쉽다. 더위에 고생하던 보리와 구름이는 모처럼 늘어지지 않고 꽁 몸을 말고, 이름을 불러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곤히도 자고 있다. 그런 일요일이다.


 이제는 그런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가야 했다. 그 이후로는 격주로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놀토'라는 어마어마한 교육 제도의 혁신이 찾아왔다. 세상에, 이주에 한 번씩 더 놀 수 있다니! 그러나 사실 고등학교 시절 암묵적인 보충이나 자습은 계속되었고, 그 외에도 많은 동기들은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니느라 보통 토요일보다 더 바쁘다고 불평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나의 부모님은 사교육에 큰 뜻이 없었기에 나에게 놀토는 학교에 나가 자습을 하는 것 외에는 비교적 실제로 노는 날이었다.

 그래도 일요일이야 말로 아무런 제약 없이 하루 종일 노는 날이었다. 늘 일벌레인 아빠도 너무 바쁜 기간이 아니면 일요일엔 특별히 할 일 없이 책을 보다가도 어느샌가 다시 졸고, 티비를 보고, 쉬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런 만큼 일요일 낮은 가족이 모여 다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얼마 없는 기회였다. 이에 다 같이 외식을 할 때도 있었지만, 되도록이면 엄마는 일요 특식을 준비해 집에서 가족끼리 밥을 먹을 기회를 만들곤 했다. 브런치로 프렌치토스트나 핫케익을 먹을 때도 있었고, 맛있는 고기를 사다 구워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들은 국수 요리였다. 요즘처럼 별의별 면 요리들이 종류별로 양념이나 국물과 함께 완벽하게 패키징 되어 나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 그리고 레서피를 찾는 데 있어 유튜브는커녕 인터넷이나 컴퓨터 자체도 생소했던 시절, 면 요리를 아주 좋아했던 가족을 위해 엄마는 요리 잡지, 혹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얻은 레서피로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곤 했다. 사실 그 모든 시도들이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다. 예를 들면 짬뽕은 고추기름 없이 멸치만 많이 들어가 화끈한 맛이 부족했으며, 칼국수에는 조개와 바지락이 너무 많이 들어가 명동 칼국수의 고기 맛을 기대해던 내겐 너무 해물 향이 강했으며, 냉모밀은 베이스로 쯔유가 아닌 일반 일본간장을 써 달달함과 감칠맛 대신 짠맛이 도드라지곤 했다.

 그러나 엄마의 잔치 국수만큼은 나의 최애 국수 요리였다. 잔치 국수를 하는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다양한 재료들이 볶아지는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고소하고 달달하게 기름에 코팅되며 볶아지는 당근, 말랑말랑 달콤하게 익어가는 호박, 고소한 계란 노른자 지단, 담백한 흰자 지단, 맑게 끓여지는 멸치 육수, 그리고 열기와 함께 삶아지는 소면의 냄새. 열두 시쯤 되면 세 부자는 식탁으로 소환되었고, 엄마는 마지막으로 그 위에 참기름을 몇 방울 두르고 김 조각을 올렸다.

 멸치만으로 낸 국물은 깊은 맛을 내지는 않았지만 맑고 깔끔했다. 잘하지 못하는 젓가락질로 소면을 한껏 들어 올리면 그 삶긴 소면 특유의 향이 참기름 향과 함께 코를 자극하고, 매끌한 무게감이 젓가락에 느껴졌다. 적당히 따뜻한 그 국수 뭉치를 입안에 후루룩 빨아들이면 금방 입이 가득 차, 혀와 입천장을 맞부딪쳤을 때 부드럽게 끊어지는 면의 식감이 좋았다. 거기에 당근 고명, 호박 고명을 집어 먹으니 둘 다 제 방식대로 달달하면서 여전히 남아있는 당근의 단단한 식감과 아주 부드러워져 녹는 것 같은 애호박의 식감의 조화가 좋았다. 거기에 계란 고명은 어찌나 폭신한지. 엄마가 몇 시간을 준비한 것이 무색하게 나는 3-4분 만에 잔치 국수를 흡입하곤 적당히 맹맹하면서 맛있는 국물도 끝까지 마셔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아내의 파티 누들.

 잔치 국수는 이름 그대로 잔치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 손쉽게 먹이기 좋은 음식이라고 한다. 고명, 국물을 미리 다 준비해 놓으면 면만 잘 삶아 헹군 후 내면 되고, 빨리 먹을 수 있어 회전율이 좋으니 아주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효율적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 작은 가족 단위에 있어서 그 많은 재료들을 다듬고 조리하는 것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가족과 마을 단위의 문화가 강한 멕시코의 타코 또한 아내가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면 할 일이 너무나 많아 차마 부탁할 수 없는 식문화인 것과 비슷하다. 한국의 반찬이라는 개념도, 베트남의 월남쌈이란 개념도, 에티오피아의 인제라라는 개념도, 인도의 커리라는 개념도, 중국의 훠궈라는 개념도, 개인보다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공동체에 훨씬 적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오랜 역사 속 '잔치'라는 나름 의미 있는 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잔치 국수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먹어볼 일이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공동체에 녹아든 음식이지만, 아이커닉한 이미지를 내세우기엔 특수함 없이 너무나 일상스런 요리가 아니었나 싶다. 국수를 좋아하는 나는 집 밖에서도 딱히 먹을 게 없으면 잔치 국수류의 음식으로 신나게 배를 채우곤 했다. 동네 상가에서 돈까스와 부대찌개도 많이 먹었지만, 잔치 국수도 많이 먹었다. 집에서 먹던 것과는 달리 멸치 육수 베이스에 감칠맛이 유난히 많이 났던 것을 보니 아마 미원이 제법 들어갔을 터였다. 거기에 김이 한가득, 깨가 한가득, 그리고 국물을 한껏 머금고 있던 유부에선 뜨거운 국물이 뿜어져 나오곤 했다. 내가 살던 동네의 김밥 천국 잔치 국수에는 김치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개운했다. 전철역 바로 앞 국수 프랜차이즈 집에는 '생면국수' 이름으로 잔치국수를 팔았는데, 여기엔 '국시장국'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도록 짭조름하고 깊은 감칠맛이 나는 국물에 매콤하게 먹을 수 있도록 시치미까지 준비되어 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어릴 적, 분수가 뿜어져 나오던 63 빌딩 부페에서 할머니 환갑 생신잔치를 한 적이 있다. 그 수많은 음식들 중 나는 잔치국수가 가장 좋았다. 신기하게도 멸치 국물과 더불어 도가니 국물이 잔치 국수 베이스로 준비되어 있었고, 나는 그것에 확 꽂히고야 말았다. 몇 그릇을 계속 가져다 먹던 나는 한 그릇 더 갖다 먹으려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엎어졌는데, 과식을 했던 모양인지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토해버리고야 말았다. 옆에 있던, 간신히 혼자 걷던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부모는 '저런 거 보면 안 돼, ' 라며 따님을 안고 갔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흑역사다.

 하여튼, 이처럼 잔치 국수라는 개념은 너무나 넓고 보편적이라, 어찌 보면 추상적인 것이었다. 그만큼 한국인의 일상에 녹아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잔치 국수는 사실 비빔밥만큼이나 평범하면서도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일지도 모른다. 비빔밥이라는 것도 특별한 방식의 '요리'가 아닌, 이것 저것 넣고 비벼 먹는 '패러다임'의 총칭이라고 생각한다.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그때 그때 무엇을 넣을지 생각하여, 때론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나물에 약고추장을 넣고, 때론 아보카도와 그릴한 닭가슴살에 마늘 간장 소스를 부어 먹는, 이 모든 형태가 비빔밥인 것이다. 화가 날 때면 한 밤 중 양푼에다가 맛있는 것을 있는 대로 다 갖다 넣고 비벼 먹는 그런 클리셰적 연출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밥덩이 위에 날 생선을 올려 먹는 개념이 '스시'로 굳어진 것처럼, 밥에 이것저것 올려 비벼 먹는 것이 '비빔밥'이란 개념으로 굳어진 것처럼, 시원하고 맑은 국물에 소면을 넣고, 이런저런 고명을 올려 먹는 잔치 국수도 보편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고소하거나, 기름지거나, 매콤하거나, 진한 국물에 면과 고기 등을 올린 '라멘'이 자리 잡았듯 말이다. 라멘도 정말 좋아하지만, 라멘은 일 년에 한 세 번쯤 먹고 싶다면, 잔치 국수는 일주일에 한 번쯤은 먹고 싶다. 비빔밥과 김치를 세계화하는데 이렇게 노력했던 정부라면, '잔치 국수'도 세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름도 얼마나 확 입에 감기는가. '파티 누들.' 주인장, 드랍 더 빝!

아내의 잔치 국수

 미국에 와서는 먹을 기회가 없었던 만큼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 가던 잔치 국수에 대한 기억이 다시 되살아난 것은 아내가 활동하는 요리 커뮤니티에서 아주 유명해진 잔치 국수 레서피 덕분이었다. 어느 날 아내는 그 커뮤니티에 가입하더니 등급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댓글도 달고, 글도 쓰고, 거기서 알게 된 레서피로 신나게 밥을 해 먹고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꽤나 깐깐한 그 커뮤니티에서 준회원에서 정회원으로 오르는 일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고, 어느 날 그가 '식빵'에서 '바게트'로 등업을 했을 때 왠지 모르게 그와 나는 신이 났다.

 나는 아내의 요리와 살림 실력에 늘 놀라곤 하지만, 아내에 따르면 그 커뮤니티 안의 사람들에겐 그 정도는 다 기본 값이고,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고인물들이 잔뜩 모여있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보며 영감을 얻고, 새로이 지식을 얻는 모양이다. 나는 내가 속해 있는 분야에서 어차피 나는 재능이 없고 그렇게 똑똑하지 않으니 굳이 열심히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나태해지곤 한다. 그렇게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을 핑계를 찾는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오늘은 조금 더 열심히 일을 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 사이, 아내는 이제 '바게트'에서 '크림빵'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다. 이미 '크림빵'이 되어 '타르트'가 되기 위한 준비 중일지도 모른다.

 아내의 잔치 국수 레서피도 그 커뮤니티에서 얻은 것이었다. 예전에도 그 명인의 족발이었는지 레서피도 이용한 적이 있는데, 아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 기대감이 있었다. 레서피를 알면 끝이지, 요리가 별건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리는 없다. 예전, 아내가 도시락으로 준비해 주어 맛있게 먹었던 냉파스타를 내가 한 번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 레서피를 부탁한 적이 있다. 그가 했던 그대로 따라 했음에도 어찌 그렇게 소스와 야채, 마늘, 향신료가 따로 노는지... 악보를 따라 음악을 연주하려면, 기본적으로 악기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아내에겐 요리 실력과 자신만의 레서피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아내의 레서피가 인터넷 곳곳을 돌아다니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내는 산더미 같은 멸치를 손질해서 육수를 내었고, 하루 꼬박 베란다에 내어 놓고 숙성시켰다. 멸치 외에 들어가는 재료를 보니, 살면서 본 가장 커다란 다시마 조각들, 파 등이 잔뜩 우려져 제 명을 다하곤 하늘거리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에는 역시 재료가 아낌없이 들어간다. 파는 음식은 이렇게 재료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국물이 이렇게나 깊고 맑으면서도 감칠맛 가득할 수 있는지. 멸치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그들이 뛰놀던 깊은 바다의 시원함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어릴 적 먹던 옅고 담백한 멸치 국물과는 다르게 나를 확 잡아당기는 개운한 맛은 마치 콩나물 국밥처럼 나를 해장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레서피 원작자의 의도에 따르면 부추와 김, 양념장, 그리고 통깨 외 다른 고명은 허용되지 않았다. 레서피대로 먹어 보니, 아주 순수하고 원초적인 맛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잔치 국수에는 계란 고명이다. 아내가 준비해 준 지단을 올려 먹으니 고소한 풍미가 더 나를 행복하게 한다. 거기에 아주 상큼하고 아삭하게 잘 익은 배추김치. 한 젓가락에 면이 열 개 넘지 않도록 계속 신경을 썼다. 이 맛있는 한 대접을 3분 만에 끝내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을 가지면서 국수를 먹을 수 있도록 아내가 야채전을 굽고, 예전에 빚어둔 만두를 쪄 내었다. 정말 잔치상 같았다. 이다음 잔치 국수를 먹을 때엔 꼭 막걸리를 다시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천천히 먹고 싶어도, 입안 한가득 소면을 넣고 얼마 남지 않은 입 안 공간에 이리도 깊고 시원한 국물로 두어 번쯤은 꽉 채워 넣었다. 이 집, 잔치 한 번 화끈하게 한다.


 이 먼 타지에서 아내가 어찌어찌 마음 맞는 이들과 같이 추석을 맞아 송편을 빚으러 떠난 어느 한가한 일요일이었다. 저번에도 느꼈듯, 아내가 없는 시간은 내게 있어 자유가 아닌 그리움이었고, 딱히 할 것이 없던 나는 얌전히 일을 했다. 남은 육수로 잔치 국수를 해 먹으라며, 아내는 자세하게도 잔치 국수 레서피를 알려주고 갔다.

 육수를 끓이고, 소면을 한 3분간 삶는 동안 부추는 10초쯤 데쳐 참기름에 버무렸다. 계란 지단을 먹고 싶어 계란을 깨려던 찰나, 아내가 어젯밤 베이킹을 하고 남겨둔 계란을 발견해 적당히 구워 썰어 내었다. 산뜻하게 잘 익은 열무김치를 곁들였다.

 따뜻한 국물에는 여전히 깊은 감칠맛이 배어 있었다. 아내가 해준 것에 비하면 투박하지만, 그의 향기가 나 그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 덜어졌다. 면기에 넘칠락 말락 하는 맑은 국물은 어쩌다 하루 종일 일하며 피곤해진 나의 마음을 씻어주었다. 오늘도 부추의 알싸함과 지단의 고소함은 잔치국수의 맛의 스펙트럼을 넓혀 주고, 열무김치는 매번 입을 씻어 주었다. 혼자 먹는 국수는 평소보다 훨씬 더 빨리 먹게 된다. 게걸스럽게 소면을 한 입 가득 채워 넣고, 부추 한 줄기, 지단 한 점, 그리고 열무김치 한 점을 더 채워 넣었다. 뜨겁고 시원한 국물도 한 모금 머금었다. 그러다 보니 한 4분 만에 결국 다 먹고야 말았다. 아쉬우면서도 짜릿함이 느껴졌다.

 그 날 저녁, 아내는 빚은 송편을 가지고 와 덥혀서 내게 주었다. 구수하고 달달한 깨 설탕, 그리고 단단하면서 고소한 밤이 가득했다. 추석은 추석이다. 역시 잔치에는 파티 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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