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빙수 Mar 17. 2021

몽키시, 9주년 맥주

끝없는 맥주의 진화

 2박 3일 캠핑을 다녀오는 동안 밀린 인스타그램 피드를 바쁘게 내리던 엄지가 순간 멈추고 눈썹이 올라갔다. 9주년을 맞이하는 몽키시 브루어리가 한 주간 기념 맥주들과 굿즈들을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매년 '그래, 이 즈음이었지, '하면서도 또 매년 까먹는 그런 정보다. 그러나 이번엔 브루어리의 생일이 공교롭게도 나와 아내의 결혼기념일과 정확히 같은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내년부터는 기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작년 락다운이 시작되기 두 주 전 우리는 비숍에 다녀왔다. 커다란 불확실성과 소소한 행복이 얽혔던 한 해가 꼬박 지나 우리는 또 그 멋진 곳을 찾았지만, 참 징하게도 이놈의 판데믹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나와 아내는 한 살 나이를 더 먹고, 제법 즐겁고 소중한 추억이 담긴 결혼 생활이 일 년 어치 더 쌓이게 되었다.


 매해 브루어리의 생일마다 커다란 파티를 여는 몽키시는 작년 이 즈음 아직 상황이 심해지지 않았음에도 공공의 안전을 위해 파티를 열지 않기로 했다. 꼬박 한 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파티를 열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게 새삼 놀라우면서도 놀랍지 않다. 그렇게 자유라는 명분 하에 끝까지 락다운을 어겨가며 뻐팅기던 브루어리나 레스토랑에서는 확진자들이 쏟아져 나왔으니, 몽키시는 분명 올바른 선택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판데믹은 인재다.



 

 몽키시에 들락거린 지 어느덧 4년째,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브루어리인 것 치고는 어쩌다 처음으로 들르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이크로/독립 브루어리 문화가 발달한 이 동네에서, 맥주를 좋아한다면, 특히나 헤이지 IPA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가 봐야 한다는 얘기만 주변에서 끝없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몽키시의 헤이지 IPA를 처음 먹었을 때의 감각은 기억하고 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 찐 단호박 같은 짙은 노란빛에 잔 너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그 액체에서는 곡식의 은은한 달콤함, 씁쓸한 홉의 향, 그리고 폭발하는 것 같은 열대 과일의 새콤달콤한 향이 뿜어져 나왔다. 침이 새어 나왔다.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있으려니 상큼한 과일 향,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홉의 향, 그리고 구수한 보리와 밀의 향이 커다란 흐름으로 찾아왔다. 그래도 맛있는 헤이지 IPA는 꽤 먹어보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홉을 얼마나 때려 부었길래 이런 맛이 나는 것인지, 이들이 과연 이윤을 남기고 있기는 한지 늘 궁금하다.


 몽키시의 탭 룸은 정말 작았다. 테이블은 고작 네, 다섯 개, 그리고 서서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놓여 있는 오크 통이 또 한 네다섯 개,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맥주와 함께 맘껏 가져다 먹을 수 있도록 프릿젤 과자를 산더미처럼 준비해 놓았고, 매일마다 찾아오는 여러 종류의 푸드 트럭들이 나를 유혹했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몽키시를 찾아갔을 때 시킨 이동식 화덕 안에서 구워낸 버팔로 치킨 피자, 마르게리따 피자, 그리고 너무, 너무 매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으나 계속 먹게 되었던 치즈를 가득 채운 할라뻬뇨에 곁들인 몽키시 맥주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몽키시의 맥주 메뉴는 1-2주 간격으로 바뀐다. 매번 딱 그 정도로만 브루잉을 한다. 정말 히트를 쳐서 클래식으로 자리 잡는 맥주들은 매년 한, 두 번씩 브루잉을 하고, 그 외에는 늘 새로운 시도를 한다. 보리와 밀의 비율을 달리 한다던지, 가끔은 세몰리나라던지 메밀이라던지, 독특한 곡식을 사용한다. 가장 많이 바뀌는 것은 아무래도 홉의 종류이다. 

 아주 클래시컬한 시트라(Citra)나 갤럭시(Galaxy) 홉을 가득 채워 넣은 맥주, 'Foggy' 시리즈는 'Foggy window',  'Life is foggy' 등, Hazy IPA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구현화시킨 맥주다. 밀도 있는 액체의 질감에, 자몽이나 포멜로, 오렌지의 향이 확 몰아치면서, 전혀 달지 않고 오히려 쌉싸름하게 마무리지어지는 깔끔한 맛이 좋다. 'Life is foggy'나 'Foggy window'가 기본이라면, 'Life is foggiEST'나 'FoggIEST window'는 홉을 한참 더 때려 붓거나 알콜 함량을 높여 그 개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곤 한다. 


 브루어리 안에서 한 잔씩 맥주를 마실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몽키시의 컬트적인 인기는 캔 릴리즈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판데믹이 찾아오기 전, 몽키시는 일주일 중 하루나 이틀, 완전히 랜덤한 요일들을 골라 새로 브루잉한 맥주를 바로 캐닝하여 출시하곤 했다. 한 번 캔 릴리즈를 할 때마다 100 케이스 정도를 팔았다. 한 케이스는 4캔짜리 6팩, 개인당 최소 단위는 1팩, 그리고 최대 단위는 3팩 정도였다. 그러니 한 명이 1팩씩만 산다고 가정을 하면 600명, 모두가 최대 단위로 산다고 하면 고작해야 200명 정도만 출시된 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가격은 또 어떤가 하면, 네 캔, 즉 1 팩에 #$20-25불이다. 알콜 함량 7-8%의 Double IPA면 $22, 알콜 함량 10-11%의 Triple IPA면 $24, 대충 한 캔에 $5.5이라고 하면 제법 비싼 가격이다.


 캔 릴리즈 날이면 영업시간 30분 전쯤, 오후 세시 반쯤 몽키시는 그들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로 그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딱 네시부터 트위터로 맥주 몇 팩이 남았는지, 몇 명이나 줄에 서 있는지, 오 분 정도 간격으로 업데이트를 했다. 주로, 오후 다섯 시 반이나 여섯 시쯤, 즉 릴리즈를 한 지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 즈음이면 품절되곤 했다. 아니, 그깟 맥주가 뭐라고. 

 

출처: Monkish Twitter

 처음으로 내가 캔 릴리즈를 간 날은 어쩌다가 학교 수업이 취소된 날이었다. 세시 반쯤 집에 도착했는데, 왠지 몽키시에서 릴리즈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교통 체증이 없다면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 오후 늦게 퇴근 시간이 시작되면서 40분이 넘게 걸릴 예정이었다. 트위터를 체크해보니 충분히 물량이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몽키시에 찾아갔다.


 트위터를 보니 30명 정도 줄을 서 있다고 쓰여 있었으나, 현장에 도착하니 더 많아 보였다. 정말 웃기고 놀라우면서도 나 또한 가만히 줄에 서서 기다렸다. 수량을 맞추기 위해 한 사람당 손목 밴드를 채워 주었고, 한 사람당 사 갈 수 있는 제한이 있으니 굳이 갓난아이들까지 데리고 와 할당량을 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집에 돌아가며 맥주의 냉기가 빠져 맛이 변할까 보냉백은 물론, 쿨러나 전기냉장고를 차에 싣고 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요즘은 나 또한 조그마한 보냉백 하나를 늘 들고 다닌다. 아니 진짜, 그놈의 맥주가 뭐라고! (점점 느끼는 것이지만, IPA의 향은 아주 예민해서 실온에서 금방 약해지곤 한다.)


 천천히 줄어드는 줄에는 막 퇴근한 공사 현장 직원도 있었고, 껄렁껄렁해 보이는 스케이터도 있었으며, 스크럽을 입고 있는 의사나 간호사들도 있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트럭을 몰고 들어와 줄에 선 '페덱스' 직원도 있었다. 모두에게, 이 몽키시 맥주는 피곤한 하루와 한 주를 신나게 달래주는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Swap Meets'란 맥주는 그렇게 처음으로 몽키시 캔 릴리즈에 찾아가 사 온 맥주였다. 'Nelson Sauvin'이라는 홉이 중점이 된 이 DIPA (Double IPA)에서는 정말로 향긋하고 달콤한 포도 껍질의 향이 가득했다. 그러나 정작 맛은 달큰함 없이 아주 깔끔했다.

 나는 홉의 씁쓸한 맛과 풀이나 나무의 향도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좋아하는 프로파일은 달콤 상큼한 트로피컬 과일의 향이다. 이에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홉은 Nelson Sauvin이다. 망고, 포도 껍질 안쪽, 사과, 그리고 자몽향이 어우러진 향. 'Brodcasting Live'는 이 Nelson Sauvin 홉을 가득 채운 맥주로, 매년 내가 기다리는 최애 맥주이다. 2021년의 Brodcasting Live는 또 어떤 맛일까.


 그런가 하면 브루잉의 최전선에 있는 몽키시는 그 어떤 브루어리도 사용해 본 적 없는, 아직 상업용 이름도 없는 이상한 홉을 가져다가 맥주를 만들 때도 있다. 이 'Bonded in Passion'이란 맥주는 남아공의 'Southern Passion'이라는 홉을 이용해 브루했었다. 날카롭고 강렬한 것이 마치 한껏 캠프파이어의 불을 키워 그대로 맥주에 담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거칠고 스모키한 향이 어찌나 독특하고 신기하던지, 꿀떡꿀떡 마실 수 있는 맥주는 아니었으나 한 모금마다 경이로움을 느끼며 마셨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있어 나는 몽키시를 정말로 좋아한다.



 

 매년 브루어리의 생일마다 몽키시는 평소보다도 더 정성을 때려 넣은 맥주를 빚는다. 작년, 8주년 기념 같은 경우에는 여덟 가지 홉, 여덟 가지 곡식을 넣어 8%의 알콜 함량에 맞춰 맥주를 만들었다. 재작년, 7주년에는 7가지 초콜릿을 갈아 넣은 스타우트를 만들었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그렇다면 올 해엔 어떤 맥주일까, 아무래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판데믹이 시작된 이후, 주렁주렁 줄을 서서 캔 릴리즈를 기다리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대신, 아침 10:00에 온라인으로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었고, 10:02 정도면 늘 매진이 되었다. 그 후 주차장에 주차를 해서 트렁크만 열어 두고, 마스크를 꼭 끼고, 몽키시에 주문 번호와 주차 위치를 기록한 문자를 남겼다. 내 아이디를 꼭 닫힌 운전자석 창문에 비추면 그들은 오더를 확인하고 트렁크에 맥주를 놓아두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이젠 단골이 되어버린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 주었다. 

 로컬 브루어리의 가장 큰 장점은 캐닝한 뒤 며칠 안에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향의 휘발성이 강한 IPA는 더더욱 그러하다. 3월 9일에 캐닝한 맥주를 3월 9일에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다.

10.3%의 Triple IPA, 독한 녀석이다. 

 내가 너무나 아끼는 몽키시의 9주년 맥주. 판데믹 속에서도 그들의 맥주 맛은 변하지 않았고, 쉽지 않았을 한 해에 최대한 잘 적응하며 그들은 살아남았다.


 9주년 맥주에는 내가 그리 좋아하는 Citra와 Nelson Sauvin 홉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선보인 적 없는 'Phantasm'이란 새로운 재료가 들어갔다고 했다. 뉴질랜드의 'Marlborough Sauvignon' 와인용 포도의 껍질을 동결 건조해 분쇄한 가루란다.


 그 사실을 처음엔 모르고 이 맥주를 마셨다. 향긋하고 달콤한 포도 껍질 향이 비강을 가득 채웠다. 넬슨 홉을 때려 부었나 보다 생각을 했다. 향이 너무나 보드랍고, 달달하면서 은은해서 행복할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Phantasm'이란 새로운 재료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다. 몽키시 맥주 중 좋아하는 녀석이 정말 많지만, 단연 그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생각했다. 한 캔, 한 캔 줄어드는 것이 너무나 슬프면서도, 한 모금, 한 모금이 황홀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한 해가 갔다. 그렇게 나도, 몽키시도 잘도 살아남았다.


https://youtu.be/Wh1YBpYehE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소고기는 맛있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