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용서하는 것, 그리고 화낼 이유 같은 건 없다.

2020년 9월 25일 금, 날씨: 비 온 뒤 다시 여름.

by 비니비니캐럿캐럿

최근 Video production과에서 흥미로운 과제를 하나 받았다.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건데, 한국에서도 한국어로 인터뷰를 한 게.. 초등학교 때 소년소녀 동아일보(?) 아주 짧은 기자 활동할 때였나... 근데 이걸 영어로 해야 한다니.. 교수가 처음에 과제에 대해서 설명해 줄 땐 언어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COVID에 인터뷰이를 어떻게 찾아서 어떻게 인터뷰를 해야 하나 걱정이 먼저 앞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난 의지의 한국인. 결국 해낼 것이다.

저번 학기 때 촬영을 해야 하는 과제는 잠깐 동안 같이 살았던 한국인 동생이 모델로 도와주곤 했었는데 이제 이 친구도 학기가 시작하고 일도 바빠지면서 부탁하기가 어려워졌고 나도 조금은 새로운 모델과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단 욕구가 들었다.




한 달 전쯤 파트타임일을 시작한 버블티 가게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사장'과 일하는 게 나는 너무 즐겁다.

이 사장님 때문에 더 크고 브랜드 파워가 있는 프랜차이즈에서 연락 온 걸 마다하고 작은 가게로 온 이유다.

사장님은 알고 보니 가게를 오픈 한지 얼마 안 되셨고 본 직업은 '가수'였다. 오 마이 갓. 유머러스하고 언제나 나이스 한 사람이 가수였다고? 한국에서 연극과 영화 쪽을 했었던 나로선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한 점을 생각해서 '가수'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왜 그랬을까. 사장님이 가수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와우 가수라니! 이 생각보다 자녀들도 있으시니 생계를 위해 가게를 내셨구나. 얼마나 힘드셨을까. 혼자만의 지레짐작을 하게 됐다.

이게 내가 사장님을 인터뷰해야겠다는 시초가 됐던 것 같다.

정말 이상하다. 사장님이나 매니저랑 최대한 일하는 걸 피했으면 피했지 같이 일하면서 즐거웠던 경험이 극히 드문데 이번엔 그 반대라니. 나는 이 사람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오는 걸까. 내가 나이스 하다고 해서 이 사람이 100% 인자한 성인(聖人)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말투와 제스처 그리고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에티튜드가 자기 자식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직원들에게도 똑같다는 것. 나와는 조금은 달라 보이는 이분의 아우라를 부족한 기술이지만 담고 싶었다.




금요일 오후 약 5시쯤 인터뷰는 시작됐다.

몇 가지 질문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궁금했던 한 가지는 이거였다.

"아티스트의 길은 쉽지 않고 때때로 당신을 고통스럽게 한다. 가수로서 가장 슬프거나 힘든 순간이 언제였어요?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대답을 짧게 요약하자면, 이분의 가장 기뻤던 순간과 힘든 순간이 겹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명한 아티스트인 David Foster와 작업할 기회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었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David와 작업할 기회가 생긴 것이 가장 기뻤던 순간이기도 하다고.

본인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자책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으로 극복했다고 한다.

나는 얘기를 듣고 왠지 모르게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문득 그때가 떠올라 살짝 울컥할 뻔했다.


결론적으로 이 뜻깊은 인터뷰는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자 경험이 되었다.

누군가의 인생 스토리를 듣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영광이다.

시작 전엔 서툰 영어로 소통이 잘 안될까 봐 걱정됐지만 역시 그냥 걱정은 걱정일 뿐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언제 나를 용서해주었나? 용서는 뒷전으로 하고 그냥 묻어두진 않았나? 후회로 남고 싶지 않은 일들 투성이지만 까 보면 후회투성이들 뿐일 때가 많다. 후회를 후회로 남지 않으려면 아마도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게 먼저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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