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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진오 Jan 27. 2017

17년 전 살던 동네를 찾아가다

추억여행 : :

지금 사는 곳과 걸어서 불과 20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그곳을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가 보았다.

나의 유년시절의 모든 추억을 함께한 그곳. 태권도 도복을 입고 골목을 활보하던 체력 좋고 까불거리던 꼬마 시절의 내가 살았던 그곳.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무려 17년이다. 아마 많은 것이 변해 있으리라.


초등학교 등교길 항상 걷던 언덕

 

내가 살던 곳은 목3동, 초등학교는 목2동에 위치한 양화초등학교였다. 성인이 된 내가 지금 걸어도 족히 15분은 걸릴 만한 거리에 위치한 곳을 나는 매일 같이 걸어 다녔다. 등에는 반듯한 사각형의 책가방을 메고 손에는 새하얀 실내화가 들어있는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그렇게 매일 같이 이 길을 지났다. 가끔 학교에서 축구를 심하게 하고 체력이 방전된 날은 드래곤볼에 나오는 손오공처럼 순간이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이마에 두 손가락을 대고 흉내를 내던 기억도 난다.


<목동 사회 복지관>


어릴 때 누가 '너 어디 살아?'라고 물으면 항상 '복지관 근처에 살아.'라고 대답을 했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크고 누구나 위치를 알던 곳이 바로 복지관이다. 하지만 나는 복지관이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이 동네에 살았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 중에 하나는 어린 시절 잉꼬새를 키웠었다. 당시에 새를 참 무서워했는데 왜 새를 키웠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촌 형의 꾐에 넘어가 새장에서 새를 꺼내려고 두꺼운 장갑을 끼고 새를 잡았는데, 너무 무섭기도 하고 겁이 나서 손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그만 새가 손 안에서 죽고 말았다. 당시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처음 하나의 생명을 죽인 것이다. 그것도 너무 허망하게. 엉엉 울며 집 뒷에 있는 대머리산이라고 불리는 (왜 대머리산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곳에 잘 묻어주었는데 그 땅에 위에 지금 이 복지관이 세워졌다.


요양원 '두엄자리'


그 복지관을 지나 언덕을 올라가면 교회가 하나 나오고 그 옆에 작은 요양원이 하나 있다. 내가 어릴 때도 있었고 지금은 리모델링이 되어 훨씬 깔끔한 모습으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사는 곳, 형 누나들이 가끔씩 봉사활동을 오는 곳, 정도로 생각하고 큰 관심이 없었는데 동네를 방문하기 전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을지 궁금했던 여러 곳 중에 하나였다.



이사 오기 직전 살던 단독 주택


동네에 도착하니 많은 곳들이 변해 있었다. 특히 우리 동네는 주택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주택이 없어지고 신축빌라들이 들어서 있었다. 다행히 내가 이사 오기 직전에 살던 주택은 허물어지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 주었다. 우리 집은 이 주택 2층에 세를 내고 살았다. 당시 주인집 아저씨가 개를 좋아해서 정원에는 항상 진돗개 두 마리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가끔 열쇠를 놓고 올 때면 지금은 없지만 담장 옆에 있던 도시가스관을 타고 담을 넘어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때는 굉장히 커 보이던 집이 지금 보니 굉장히 작고 허름해 보였다.


초인종은 그대로다.


1층 주인집의 초인종은 위에, 2층 우리 집 초인종은 아래였다. 당시에 1층 초인종은 카메라도 있어서 누르면 누가 있는지 얼굴이 보였지만 우리 집은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어릴 때는 저 카메라 달린 초인종이 참 좋아 보였는데.. 17년이 지난 지금도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공원


그 옆에 우리 집보다 더 크고 넓었던 두 곳의 단독주택이 허물어져 작은 공원으로 변해 있었다. 어릴 때 저 골목에서 항상 탱탱볼을 가지고 축구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탱탱볼이 주택 안으로 넘어갈 때면 항상 벨을 누르고 '공좀 꺼내 주세요.'라고 외쳐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주인이 참 귀찮았겠다는 생각도 들고, 실제로 지금은 공원이 된 주택에 살던 할아버지는 우리가 벨을 눌러대면 항상 고함을 치셔서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 집으로 공이 넘어갈 때면 할아버지 모르게 몰래 담을 넘어 공을 꺼내오곤 했다. 당시에는 어려서 남의 집 주거침입을 참 우습게 했다.




집에서 앨범을 뒤져서 겨우겨우 동네 배경이 나온 두 장의 사진을 찾았다. 하나는 경아 누나네, 장수네가 살던 집의 벽에서 찍은 사진. 사진이 찍힌 날짜를 보니 90년 10월 27일 내 생일 다음날이자 정확히 27년 전 사진이고 내 나이가 4살이다. 이 곳은 신축빌라가 지어져 이제 더 이상 사진 속 저 촌스러운 벽돌들은 볼 수가 없다.

하늘이네 앞집에서 찍은 이 사진 속 장소(오른쪽)는 항상 우리가 지나갈 때면 무섭고 사나운 개가 짖어대던 집이었다. 이 곳도 이제 허물어지고 신축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삐그덕 대던 철문 대신 무인 택배함 까지 갖춘 최신 빌라가 자리 잡았다.


어릴 적 살던 그곳은 더 이상 현실에 없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기 전에 살던 낡은 반지하 집. 솔직히 이 곳에 오면서 제일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작고 낡아 녹슨 남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에 옆집과 함께 쓰던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겨울이면 볼일을 보거나 씻기가 참 어려웠던 그곳. 계단을 내려가면 반지하에 두 개의 문이 있다. 왼쪽이 우리가 살던 집. 오른쪽 집은 나의 첫사랑이자 동갑내기 친구였던 희선이가 살던 곳이다. 하지만 이 곳도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새로 빌라가 들어서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일 년 만 빨리 왔어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제 더 이상 비가 많이 내리던 날 비가 새던, 옆집과 작은 화장실을 나눠 쓰던, 낡고 허름했지만 좋아하는 여자애가 옆집에 살던 그 집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내 기억 속에만 남았다..


                                        럭키슈퍼는 아동센터로(좌), 한아름 슈퍼는 여전히 그대로(우)

                                      금성슈퍼는 간판만 남았고 (좌), 쥬라기책방은 정육점으로 (우)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났다.


럭키슈퍼는 아동센터로 변했고

정아슈퍼는 정수기센터가 되었다.

금성슈퍼는 낡은 간판만이 남았고

한아름슈퍼는 유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그 앞에 있던 작은 게임기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그 작은 동네에 왜 이리 슈퍼마켓은 많았는지..


신간이 나오면 항상 전화해주던 쥬라기책방은 정육점이 되었다.

세탁소와 비디오 대여점은 자취를 감췄고

나랑 가장 친하던 범진이네는 아직 그대로 남았고

대문은 초록색 페인트를 새로 칠해져 있었다.




사실 많이 변해있지 않길 바랬다.

내가 기억하던 그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길 바랬다.

언제나처럼 그때의 그 모습으로


하지만 많은 것이 변했고

세월은 그렇게 흘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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