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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한 Dec 22. 2020

총각무 먹는 고양이


<사료배달을 멈출 수 없는 이유>

* 해마다 이맘때쯤 올리는 총각무 먹는 고양이 이야기입니다. 


저에게는 이날의 장면 하나가 사료배달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골목에서 어미냥과 아깽이가 맵고 짠 총각무 하나를 나눠먹고 있습니다. 고춧가루와 양념이 범벅된 국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어미가 크게 한 입 베어먹자 옆에 있던 아깽이 턱시도가 나도 좀 먹자며 어미를 밀치고 총각무를 독차지합니다. 어미는 한발 물러나 그런 아깽이를 바라만 봅니다. 그마저 삼색이 한 마리는 뒤로 밀려나 입맛만 다시고 있습니다. 총각무를 다 먹은 턱시도의 입과 발은 김치국물이 묻어 흰털이 벌겋게 물들었습니다. 하필이면 가져온 사료가 없어서 나는 주차한 차로 되돌아가 사료 한 봉지를 가져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어서 그릇도 없이 구석에 사료를 내려놓습니다. 두 마리 아깽이는 걸신들린 듯 숨도 쉬지 않고 그것을 먹어치웁니다. 어미도 뒤늦게 새끼들이 물러나자 우적우적 사료를 씹어먹습니다. 세 마리 길냥이 식구는 그렇게 한참 사료를 먹고 나서야 살겠다는 듯 눈빛이 평온해졌습니다. 모든 게 얼어붙은 계절, 고양이는 먹을 게 없어 김치며 언 호박이며 배추 등 무엇이든 먹어야 하고, 그래야 살아남습니다. 한겨울 며칠씩 굶주린 고양이는 저체온증으로 죽을 때가 많은데, 그들에게 아사와 동사는 같은 말입니다. 특히 가을에 태어난 아깽이들에게 이 겨울은 생사의 갈림길입니다. 겨울이야말로 고양이에게 사료 한 줌, 따뜻한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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