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을 걸어 나에게로 와요

by 이용한


아비와 보낸 세번째 겨울.


아쿠와 아톰, 아롬이의 엄마이기도 한 아비와는 이번이 세번째 겨울이다. 나이는 세살보다는 훨씬 많아 보이는데, 녀석과 처음 만난 건 3년 하고도 몇 개월 전(2018년 11월)이다. 어느 날 아침, 아비시니안 한마리가 테라스에서 사료를 먹고 있었다. 캔이라도 하나 따줄까, 문을 열었더니 녀석은 화들짝 놀라 도망을 쳤다. 이후로 녀석은 밤낮없이 도깨비처럼 급식소를 다녀갔다. 당시 외모로만 보면 유기묘인지, 외출묘인지, 누군가의 마당냥이로 살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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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확실한 것은 이미 사람손을 탔다는 것. 5~6개월이 지나 스스럼없이 녀석이 먼저 나에게 다가왔다. 나와 친해져야 맛난 것들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을 녀석은 알고 있었던 거다. 그러나 녀석이 우리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부쩍 다정하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한 건 작년 봄부터였다. 아마도 지금의 아쿠, 아톰, 아롬이의 임신으로 뭔가 고단백 식품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같다.


녀석은 작년 여름내 세 아이들을 데리고 와 잠 자는 것만 빼고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집에서 보냈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서 아이들을 독립시켰고, 이후로는 우리집에 하루 한번 정도만 들를 정도로 발길이 뜸했다. 그러던 녀석이 무슨 일인지, 요 며칠 사이 하루에도 대여섯 번 우리집을 들르는가 하면, 아예 자정까지 이곳에 머물곤 했다. 중성화수술을 받았으니 임신을 한 것은 아닐 테고.....


어쨌든 녀석은 요즘 부쩍 자주 드나들며 이곳의 아이들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하악질을 하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 건 이미 지난 가을부터 일이었고, 눈밭에서 한창 놀고 있는 아쿠와 아톰을 촬영하고 있을 때면, 어느 새 가까이 다가와 그 따위 사진 그만 찍고 테라스에 가서 자기랑 담소나 나누자고 꼬드긴다. 가끔은 저런 신출내기 모델보다 자기같은 베테랑 모델을 찍으라며 몸소 스노워킹 시범을 보인다.


며칠 전엔 작은 사고도 있었다. 폭설이 내리자 아쿠와 아톰은 어김없이 눈밭에 나가 뛰어다니고, 나는 그런 모습을 놓치지 않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출동하는데, 아비가 앞에서 자꾸만 갈지자 훼방을 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비를 밟지 않고 피한다는 것이 그만 눈이 살짝 덮인 빙판에 보기좋게 꽈당한 것이다. 순간 카메라를 떨어뜨리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카메라 든 왼팔을 위로 쭉 뻗어보았으나, 팔꿈치를 갈리면서 손목 힘이 빠져 툭 하고 카메라가 빙판에 떨어진 것이다. 천만다행 렌즈와 바디는 보호했으나, 액정이 빙판에 부딪치면서 촥 금이 가버렸다. 그래도 내 팔꿈치를 갈아서 바디와 렌즈를 살렸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그 와중에 폭설 속을 뛰어다니는 아쿠와 아톰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폭설 속을 걸어서 나에게로 오는 아비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얼얼한 팔뚝을 벌벌 떨면서 기어이 그 모습을 찍었더랬다. 아비 이야기를 하다 배가 산으로 가버렸네. 오늘은 여기까지.


#팔뚝을갈아서만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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