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엔딩

by 이용한


꽃 같은 날들 그리고 꿈같은 봄날


지난 주 우리집엔 복사꽃이 피어나 마당을 환하게 밝혔다. 그렇잖아도 복숭아나무를 캣타워처럼 이용하는 아쿠와 아톰은 툭하면 나무에 올라 신기한 듯 복사꽃을 구경했다. 나는 또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아서 복사꽃을 구경하는 고양이들을 넋 놓고 구경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뭐 하는 거지?’, 이 좋은 그림을 그냥 둘 수 없어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아랑곳없이 녀석들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다니며 휘청거리는 꽃가지의 스릴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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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와 아톰이 복숭아나무를 오르내리는 시기는 대중이 없었다. 딱히 이유도 없었다. 밥을 먹고 우다다를 하다가도, 마당을 거닐다 그냥 심심해서, 때로는 거기 나무가 있으니까 습관처럼 오르는 것 같았다. 가끔은 가지에 앉은 쇠박새나 동고비를 사냥하러 평소와는 다른 몸짓으로 나무를 오르기도 하는데, 단 한 번도 사냥에 성공한 적은 없다. 꽃이 만개하면서 나비와 벌이 날아드는 건 녀석들에게 나무에 오르는 그럴듯한 이유가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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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쿠는 벌에게 관심이 많아 꽃나무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캬르르 캭캭, 채터링을 하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저러다 벌에 쏘여 솜방망이가 퉁퉁 부어봐야 벌 무서운 줄 알 텐데. 아쿠는 복사꽃을 대하는 자세도 대체로 진심인 편이었다. 녀석은 지긋이 꽃향기를 맡아보거나 슬쩍 맨손으로 꽃을 건드려보곤 했다. 반면에 아톰은 그런 낭만 따위 즐길 새가 없다며 바쁘게 가지 끝까지 올라왔다 서둘러 내려가곤 했다. 천성이 급한 성격이라 그런지 아톰은 생각보다 먼저 행동하다가 발을 헛딛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래저래 어찌됐든 나무에 올라 복사꽃을 구경하는 고양이는 언제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쨍하게 맑은 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복사꽃과 고양이가 어울린 모습은 눈이 시렸고, 아침볕이 퍼질 무렵 꽃 사이를 넘나드는 고양이의 모습은 마음까지 분홍으로 물들였다. 구름이 잔뜩 끼어 하늘이 희부연한 날에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가지 끝에 겨우 올라앉은 고양이와 뿌연 여백이 어울려 마치 한지에 수묵채색화를 그려놓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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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양이가 이토록 좋아하는 복숭아나무는 시골로 이사를 온 다음 해, 그러니까 12년 전에 심어놓은 나무다. 그동안 수많은 고양이들이 마당급식소를 거쳐 갔지만, 복사꽃이 만개한 나무에 보란 듯이 올라간 고양이는 없었다. 다들 밥을 먹고 바쁘게 제 갈 길 가기 바빴다. 하지만 아쿠와 아톰만은 달랐다. 그저 전용 캣타워처럼 자연스럽게 복숭아나무를 오르내리는 거였다. 어쩌면 나는 순전히 이번 봄을 위해 12년 전 복숭아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그런 셈이고, 그 옛날의 식목이 신의 한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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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복사꽃이 지고 있다. 하지만 열흘 넘게 복사꽃과 함께한 아쿠와 아톰의 꽃 같은 날들은 잊을 수가 없을 것만 같다. 녀석들이야 이 꽃 같은 날들을 쉬 잊겠지만, 어디선가 흩날리는 복사꽃 한 점만 봐도 나는 이 꿈 같은 날들을 내내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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