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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한 May 31. 2023

싱숭생숭한 날들

튤립이 지고 데이지가 만개하더니 어느덧 꽃양귀비가 피었다. 아톰과 아쿠는 아침에 창고문을 개방하면 마당과 텃밭을 두어 바퀴 돌며 꽃구경을 하고 어제와 달라진 풍경을 확인한다. 아쿠가 약간 섬세하고 감상적인 구경꾼이라면 아톰은 엄벙덤벙 구경을 구실로 영역을 돌아본다. 더러 꽃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분들이 계신데, 환기도 안되는 밀폐된 실내공간이 아니라 사방 바람이 통하고 확 트인 자연에서 고양이들이 오며가며 잠깐 꽃구경하는 것까지 트집을 잡는 건 좀 황당하다. 심지어 어떤 분은 냄새만 맡아도 죽는다는 억지도 부리는데, 꽃이 무슨 독가스도 아니고 그렇게 치명적이라면 자연 속에 고양이들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 시골에서 고양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건 사람 그 자체이고, 텃밭을 파헤친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살포하는 쥐약이다. 밭에 거름처럼 뿌리는 유박 비료도 치명적이며, 수풀 속에 숨어있는 뱀도 정말로 위험하다. 시골길에서 속도를 높이는 자동차로 인해 로드킬도 빈번하고, 야산을 돌아다니는 들개의 습격도 요즘엔 문제가 심각하다. 사실 내가 걱정하는 건 바로 이런 정말로 치명적인 것들이다. 얼마 전 집 바로 아래쪽에 누군가 땅을 사서 농막을 설치하고 주말농장처럼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그곳의 농막 주인이 고양이 혐오자였다. 어느 날 풀을 뽑고 있는 나한테 말을 걸더니 고양이가 자기네 밭에 들어와서는 땅을 파헤치고 돌아다닌다며 '고양이 퇴치제'라도 써야겠다며 협박을 했다. 



설마 고양이를 죽이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라고 반문했더니 말을 얼버무리며 왜 고양이한테 밥을 주냐는 거였다. 이날은 나도 기분이 별로여서 고양이를 해치거나 죽이면 동물보호법 위반이고 가만 있지 않겠다고 맞섰다. 다행히 아직까지 별다른 이상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요즘 하루하루가 노심초사다. 나뿐만 아니라 이웃집에서도 네마리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어 그곳에도 이 사실을 알리고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2년 전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이웃들이 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기껏 주말에만 들르는 고양이 혐오자의 출현으로 갑자기 이곳이 싱숭생숭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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