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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한 May 01. 2017

대만 고양이마을(호우통)과 고양이거리(단수이)

최근 대만에서 ‘히든 플레이스’로 급부상한 곳이 있다. 일본과 한국의 애묘인들에게 성지로 통하는 호우통(侯硐) 고양이 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알려진 바로는 호우통에 평일에는 수백 명, 주말에는 수천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과거 호우통은 대만 최고의 탄광도시였다. 전성기 때만 해도 이곳에는 900호에 이르는 가구가 있을 정도로 번창했지만, 1990년 석탄생산이 중단되자 인구는 급감하고, 마을은 쇠락했다. 몰락의 길을 걷던 마을이 다시 살아난 것은 2005년 고양이 마을을 조성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애묘인들 사이에 ‘고양이 마을’이 알려지면서 덩달아 이곳의 지역경제도 살아난 것이다. 

호우통역 1층에는 고양이마을 상징과도 같은 까만코(黑鼻) 동상이 세워져 있다. 명예역장인 까만코는 고양이 마을이 생기기 전에 이 마을에 살던 고양이라고 한다. 어느 날 녀석은 열차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위해 역내에 동상을 세워 명예역장 모자를 씌워주었다. 대합실이 있는 2층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고양이는 주로 ‘고양이 스탬프’를 담당하는 역무원 고양이(고등어)다. 하필이면 녀석의 자리도 스탬프를 찍는 탁자 위가 지정석이다. 본격적인 고양이 마을은 이곳 2층 대합실과 연결된 구름다리를 건너 철로를 지나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마을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팻말이 있다. 개는 데리고 들어오지 말라는 팻말. 사료와 간식 이외의 사람 음식을 고양이에게 주지 말라는 안내문도 붙어있다. 마을 입구부터 고양이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가 않다. 입구부터 마치 환영인사라도 하듯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앉아 손님을 맞이한다. 마을길을 따라 곳곳에 고양이 집과 급식소도 마련돼 있다. 급식소가 있는 곳에는 당연히 고양이 몇 마리씩은 앉아 있고, 누군가 다리쉼이라도 할라치면 서로 무릎냥이가 되려고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고양이가 접대묘 노릇을 하며, 적당한 거리만 유지하면 멋진 포즈로 모델 고양이가 되어 주기도 한다. 이곳 고양이들에게 사람은 언제나 먹이를 주고 거처를 마련해주는 고마운 존재이자 친근하고 신뢰할만한 반려자인 셈이다.

고양이 마을 고양이들은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과 만난다. 이렇게 사람 손을 타다 보면 쉽게 질병에 걸릴 수도 있지만, 다행히 이곳의 고양이들은 정기적으로 수의사로부터 진료와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쇠락한 폐광촌에서 최고의 관광지로 거듭난 대만의 고양이마을.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곳에 묵을만한 숙소가 없다는 것과 식당이 부족해 점심시간이면 줄을 서서 한참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 옛 탄광마을을 정비 없이 고양이 마을로 조성하다보니 자연스럽긴 하지만 살짝 어수선하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1할도 채 안 된다. 나머지 9할은 부럽고 또 부러울 따름이다.

대만에는 고양이 마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타이베이 북쪽(전철로 30분) 단수이(淡水)에 가면 ‘고양이 거리’도 있다. 단수이 올드타운을 따라 펼쳐진 해안산책로를 일명 고양이 거리라 부르는데, 유하(有河) 서점을 기점으로 약 1킬로미터 정도 고양이 산책로가 이어진다. 유하 서점에 가면 이곳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곁들인 ‘고양이 산보지도’까지 배포하고 있다. 지도에는 고양이 주거지를 비롯해 급식소까지 자세히 표시돼 있다.

고양이 거리의 기점이기도 한 유하 서점은 ‘고양이 서점’으로도 불린다. 이곳에 가면 언제나 예외 없이 10여 마리의 고양이 손님을 만날 수 있다. 서점이 열리면 와서 밥 먹고 쉬다가 문 닫을 시간이면 밖으로 나가는 고양이들(녀석들은 주로 책상 옆 창문에 난 ‘고양이 구멍’을 통해 서점을 드나든다)이다. 사실 유하 서점의 주인은 고양이 거리 곳곳을 다니며 고양이 밥을 주는 캣대디이기도 하다. 그동안 서점을 거쳐간 고양이를 비롯해 그가 이름을 붙여준 고양이만 해도 100여 마리에 이른다고. 남편이 주로 바깥 고양이를 챙기고 있다면, 서점에 오는 고양이를 챙기는 것은 아내 몫이다. 본래 아내는 시인이고, 남편은 카피라이터이지만 이제는 캣맘, 캣대디가 더 익숙한 상태가 되었다. 

고양이 거리는 유하 서점을 끼고 해안을 따라 족히 1킬로미터는 이어진다. 고양이 거리의 절정이자 결말은 고양이 사진가들이 흔히 ‘고양이 광장’(사실은 주차장)이라 부르는 곳이다. 고양이 산보지도에도 거의 끝자락쯤에 위치한 고양이 광장은 해안 산책로에 길고양이 동상까지 들어선 특별하고 의미 있는 공간이다. 동상은 소녀가 아기고양이와 함께 앉아 있는 모습 주위로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둘러앉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늘 10여 마리 이상의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늘 그보다 많은 사진가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만의 고양이 사진가들에게는 이곳이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내가 그곳을 찾은 날에도 광장에는 10여 명의 사진가들이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는 좋은 자리를 내어주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비가 오고 날이 잔뜩 흐린데다 고양이들이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있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무의미했다. 대신에 나는 그들의 배려와 고양이들의 평화로움을 오래오래 마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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