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봄, 마을회관 앞에서 엄마를 잃고 3일간 울고 있던 아이를 구조해 다래나무집에 맡긴 고양이가 있습니다. 바로 앙고라는 고양이입니다. 세 살이 되면서 다래나무집 대장이었던 오디를 제압하고 왕좌에 오른 뒤, 줄곧 최고 존엄의 자리를 지키던 고양이. 하지만 대장 자리라는 게 책임을 지는 자리이기도 해서 녀석은 외부 고양이들의 침입을 막고 다래나무집 고양이들을 보호하는 노릇을 충실히 수행해왔습니다. 다래나무집 급식소가 시골냥이들 사이에 소문이 났는지 언제부터인가 아랫마을 고양이들이 하나 둘 출입하기 시작했는데, 개중에는 골짜기 전체를 호령하는 ‘빈대떡(만두귀)’이라는 대장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녀석은 급식소에 와 밥만 먹고 가는 게 아니라 다래나무집 고양이들을 무차별 공격하곤 했습니다. 이 녀석으로부터 다래나무집 고양이들을 보호하는 방패막이 노릇을 한 것이 바로 앙고였습니다. 사실 앙고는 의전을 중시하는 고양이라 누군가 대장 대접을 해주면 한없이 관대해지는 고양이였습니다. 대장으로서 허세 또한 대단해서 폭설이 내릴 때도 아랑곳없이 영역을 순찰하고, 냥독대에 올라 “이 정도 눈쯤은....” 하면서 눈에 보이는 허세를 부리곤 했죠. 하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아들과 간식을 챙겨주는 나에게는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개냥이 노릇을 하던 고양이였습니다. 그런 앙고가 작년 여름 이후 다래나무집에서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언젠간 돌아오겠지, 하고 기다렸으나 아직까지 녀석은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녀석은 재작년 다래나무집에 전염병이 돌아 오디와 맹자를 비롯해 많은 고양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도 꿋꿋이 살아남아 다래나무집과 냥독대를 지키던 고양이였습니다. 나는 녀석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게 아니라 멀리 영역을 떠났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물론 녀석의 나이가 11살이었으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해도 천수를 누린 셈이라 그걸로 위안을 삼겠습니다만,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더더욱 오늘처럼 눈이 내린 날이면 저쪽에서 녀석이 허세를 부리며 내리는 눈을 다 뒤집어쓰고 저벅저벅 걸어올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