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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한 Jul 12. 2016

고양이낙원을 꿈꾸는 네 곳의 고양이섬

얼마 전 ‘동물농장’이란 프로그램에서 고양이 섬으로 소개해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곳이 있다. 아오시마(青島)라는 곳이다. 이곳에는 현재 주민은 17명인데, 고양이는 수백 마리에 이르러 사람보다 열배 이상 많은 고양이가 살고 있다. 언론에서는 앞다퉈 이곳을 고양이의 천국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과연 이곳이 고양이의 천국인가 하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작은 섬에 TNR도 안된 고양이의 개체수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고양이 개체수가 많다고 무조건 고양이의 천국이라 부를 수는 없다. 사실 아오시마가 고양이 섬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최고의 고양이 섬은 따로 있었다. 다시로지마(田代島)라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2011년 쓰나미와 함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면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었다. 이래저래 섬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곳이 되고 만 것이다. 

이태 전 보름 넘게 일본의 고양이 섬을 여행한 적이 있다. 나에겐 제2, 제3의 다시로지마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둘러본 고양이 섬은 모두 규슈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히메지마(姬島), 겐카이시마(玄界島), 아이노시마(相島) 그리고 또 다른 아이노시마(藍島). 일본에서는 상당수의 섬들이 고양이 섬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섬마다 고양이가 많고, 그것을 기록하는 작가나 사진가들도 꽤 많은 편이다. 우연히 일본 서점에서 두 권의 고양이 잡지를 구입한 적이 있는데, 두 권 다 고양이 섬을 연재하고 있어 놀란 적이 있다. 연재가 가능할 정도로 고양이 섬이 많다는 게 무척이나 부럽기도 했다.


* 히메지마와 겐카이시마

키시 항에서 배로 20분. 히메지마에 도착한 날은 말 그대로 태풍전야였다. 길전옥(吉田屋)이라는 민박집에 짐을 풀고, 나는 먹구름이 뒤덮인 섬을 천천히 거닐었다. 항구로 내려가는 골목을 지날 때였다. 기와를 얹은 일본 전통가옥 마당에 열댓 마리 고양이가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녀석들이 기다리는 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한 손에 빵을 든 아주머니였다. 마당 여기저기에 얌전하게 앉아 있던 고양이들은 갑자기 분주해져서 우르르 아주머니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빵을 한 조각씩 뜯어내 고양이에게 던져주는 아주머니. 그걸 서로 받아먹겠다고 직립해서 야옹거리는 고양이. 아예 아주머니 허리춤에 앞발을 걸친 채 빵을 가로채려는 고양이도 있었다. 그야말로 빵 셔틀이 따로 없었다.

아주머니가 선착장 쪽으로 내려가자 마당에 모여 있던 고양이들도 저마다 흩어져 일부는 선착장으로, 또 일부는 방파제 쪽으로 내려갔다. 선착장에 도착한 고양이들은 물고기 선별장 주변을 기웃거렸다. 물고기 손질을 하면서 어부들이 던져주는 생선 대가리나 부산물이 녀석들의 목표물이었다. 경쟁은 치열했다. 두세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드는가 하면, 두 마리가 서로 싸우다가 엉뚱한 놈이 어부지리를 하기도 했다. 사실 히메지마에서도 가장 치열한 묘생의 현장은 바다를 보며 자리한 방파제 쪽이라 할 수 있다. 냥파제나 다름없는 이곳의 방파제에는 20여 마리 이상의 고양이들이 은신하고 있다. 이따금 이곳에 사람이라도 출현하면 한 번에 열 마리 이상의 고양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곤 한다. 나중에야 그 비밀을 알았지만, 섬에는 바닷가 고양이들에게 양동이로 밥을 배달하는 캣맘이 따로 있었다.

히메지마에서의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본격적인 태풍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민박집에서 보냈다. 이따금 비가 잦아들 때마다 나는 바닷가로 달려가 방파제와 해변을 기웃거리는 고양이와 만났다. 녀석들은 비가 온다고 일정을 취소하거나 변경하지 않았다.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녀석들은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일본의 고양이 섬이라고 해서 길고양이의 삶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외면은 할지언정 해코지나 학대를 일삼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하카타 항에서 뱃길로 40여 분 걸리는 겐카이시마(玄界島)도 고양이 섬이다. 선착장에 내려서 우체국까지 걸어가는 50여 미터 거리에서 나는 무려 30여 마리의 고양이를 만났다. 외부인을 위한 식당조차 없는 작은 섬. 점심 대신 빵을 먹으려 봉지를 뜯는 순간, 나는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열댓 마리의 고양이가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냐앙냐앙 울부짖으며 빵을 나눠먹자고 시위를 벌였다. 하는 수 없이 절반은 내가 먹고, 절반은 고양이에게 던져줬는데, 이후 또 엄청난 광경이 이어졌다. 내가 어디를 가든 내 뒤에 항상 20여 마리의 고양이가 졸졸졸 따라다니는 거였다. 겐카이시마는 바로 그런 곳이다. 피리를 불지 않아도 얼마든지 고양이를 몰고 다닐 수 있는 섬.


* 두 군데의 아이노시마

후쿠오카 인근의 아이노시마(相島)는 애묘인 사이에 제법 알려진 고양이 섬이다. 사실 아이노시마는 과거 조선통신사 객관이 있던 섬으로, 지금은 무너져 그 터만 남아 있다. 히메지마나 겐카이시마와 달리 이곳의 고양이들은 예닐곱 마리 이상 무리지어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앞서 밝힌 두 곳의 섬에서는 고양이가 본래 이렇게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었나 의심이 들 정도였지만, 아이노시마에서는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고양이가 많았다. 다만 섬의 남서쪽 방파제 쪽에는 늘 예닐곱 마리가 무리지어 있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은 고양이뿐만이 아니다. 언제나 고양이보다 많은 수의 솔개와 까마귀도 이곳을 영역으로 삼았다. 사람들이 주로 이곳에 생선 부속이나 음식물을 내다버리기 때문이다. 

아이노시마가 여느 고양이 섬과 다른 점이라면 집고양이를 키우거나 외출고양이를 둔 가정이 많다는 것이다. 집안 마당과 골목에 흔하게 고양이 급식소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아이노시마의 다른 점이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우호적이고, 밥을 주는 것 또한 적극적인 편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골목이나 선착장에서 자유롭게 노닌다. 낚시로도 유명한 섬이어서 주말이면 낚시꾼들 옆에 앉아 자릿세를 챙기려는 고양이들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북규슈 고쿠라 쪽에도 아이노시마(藍島)가 있다. 후쿠오카 쪽의 아이노시마(相島)와는 다른 섬이다. 상도가 한국에도 알려진 고양이 섬이라면, 람도는 일본에만 알려진 고양이 섬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둘러본 바로는 람도 쪽이 일본 현지인의 방문이 더 많고, 고양이 밀도도 약간 더 높은 편이다. 그러나 식당과 숙소의 사정은 람도보다 상도가 낫다. 내가 다녀본 네곳의 섬 중에 사람과의 친밀도가 가장 높은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도 람도라고 할 수 있다. 람도에서는 가는 곳마다 적게는 네댓 마리, 많게는 10여 마리 이상의 고양이 무리가 항상 뒤를 따라다녔다. 언제나 고양이가 그림처럼 앉아 있는 ‘고양이 계단’과 한여름이면 고양이들이 땀을 식히러 들어가 앉아있는 ‘고양이 터널’도 섬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의 고양이들은 소속이 무의미했다. 집고양이와 길고양이의 구분도 모호했다. 이곳에서는 모든 고양이가 서로 어울려 놀았고, 이 집 저 집 경계없이 넘나들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고양이에게 선의를 베풀었고, 고양이는 그런 사람들을 믿고 의지했다. 그 어떤 섬보다 고양이는 사람의 무릎을 탐했고, 사람의 주머니를 노렸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면 만나게 될 풍경을 나는 내내 아이노시마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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