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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스 Jun 11. 2023

지나치게 이성적인 남자들의 사연

방어기제 3 : 사고

'더 글로리'의 하도영 같이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차갑고 이성적이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에 벽을 느끼지만 동시에 호기심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감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저 사람에게 무슨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감정은 우리의 내면이 보내는 메시지다. 자신의 내면을 알지 못하면 자아실현의 길은 막히게 된다.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야 하는 상황들도 있지만, 매사에 지나치게 이성적인 사람들은 '사고'를 방어기제로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고(생각, 이성)'는 건설적인 과정이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세상사에 대응할 수 없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지 못한 채 키워간 '사고'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덮고 방어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진실을 외면하게 하거나 고통스러운 현실을 은폐해 버리며 내면의 성장을 방해한다.


이성적인 성향의 사람들 중 유독 여성보다 남성의 비율이 높다.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해도, 아직은 남성이 여성보다 현실적이고 강인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 듯하다. 반면 심리학 측면에서 보면 지나치게 이성적인 남자들은 감정적인 사람들보다 오히려 마음의 상처에 민감하고 약하다.


약점이 없어 보이는 이 남자들의 사연을 지금부터 알아가 보자.


매사에 후회가 없는 A군


A군은 참 쿨하다.

지나가 과거에 대해서는 미련도 후회도 없다. 주변 사람들은 A군을 부러워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며 칭찬한다. 그는 열심히 준비해 온 시험에서 낙방을 해도, 대시했던 여자에게 거절을 당해도 좌절하거나 상처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번 시험이 어려웠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저 여자가 남자 보는 눈이 없네' 등 실패에는 다 외부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에는 다 근거가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매사에 후회가 없다.


항상 긍정적이고 쿨한 A군은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자기기만이 일상이 돼버린 사람들
#착한거짓말 #합리화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들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린다. ‘넌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뿐이야'라고 말해도 통하지 않는다. 자신이 느낀 (부정적) 감정, 동기, 행동을 논리적(사고 과정)으로 '정당화'하면서 자기기만이 아닌 이성적 판단이라고 스스로 프레임을 씌운다. 다시 말해, 불편하게 느껴지면 핑계를 대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우리는 타인이 자기기만을 하고 있는 상황은 잘 포착하지만 정작 자신이 하고 있는 자기기만은 둥글둥글하게 넘어간다.


합리화는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사고 방어기제의 형태이다. 어느 정도의 자기기만 없이는 하루를 버티기가 힘들 것이다. '결국에는 다 잘될 거야'라는 말도 사람들이 상실감이나 후회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합리화 방어기제다.


일상에서 합리화가 하는 중요한 역할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자존감을 일시적으로 높여주는 것이다. 누군가 나 대신 승진했을 때,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유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회사 내 인사체계의 탓을 하는 편이 마음이 좋다. 스스로에게 왜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지 되풀이해서 해명하고 있다면 '합리화' 방어기제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시그널이다.


방어기제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기작(mechanism)이듯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합리화 방어기제를 사용하게 된다. 다만, 나에게 닥친 현실 중 (전체를 보지 않고) 일부만 수용하며 합리화를 하는 경향이 반복된다면, 정작 우리가 정말로 바라는 소망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성장하기를 바란다(적어도 내면아이는 그렇다). 합리화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은 결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인간 AI로 불리는 B군
이번생은 처음이라서, 남세희

B군은 회사에서 로봇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일처리가 기계적이고 정확하다. 어느 팀에 가나 업무에 대한 파악이 빠르고 문제해결 성과도 뛰어나다.


그래서인지 B군은 인기가 많다. 사람들은 똑똑한 B군과 친해지고 싶어 하지만 정작 B군은 친구가 없다. 왜냐하면 B군은 친구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이 그에게는 숙제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는 직장에서 적당히 일하고 주말에 고양이랑 지내는 일상을 몇 년째 반복하고 있다. 꿈은 딱히 없고 하루하루 아무 일 없이 적당히 살아가는 것이 그의 인생의 목표다.


삶에 활력이 없는 똑똑한 사람들
#냉철 #주지화 #방어기제

이성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나, 상황을 초월하고 '*초연'해 보인다는 것은 결코 심리적으로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이들은 '주지화'(attention)를 통해 방어기제를 발동하고 있는 것이다. 

*초연하다 :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


사고 방어기제로서 '합리화'가 특정 사실에 대해 진실보다 더 그럴듯한 설명을 시도한다면, '주지화'는 모든 불쾌한 감정을 막아버리려고 한다. 합리화가 자신을 가끔 속이는 '악의 없는 거짓말'이라면, 주지화는 계속 진행 중인 새빨간 거짓말로 불쾌한 감정은 부정하고 냉정한 생각만 수용한다.


몸의 감각에 주목하면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차오르는 눈물, 답답한 가슴 등 이런 감각은 우리가 슬픔을 느끼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생각하느라 바쁘면 이런 감각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자신의 진짜 감정을 모른 채 지낼 수밖에 없다. 어떤 슬픔(부정적 감정)이 인식돼도 '몸의 감각'에서 '생각(사고)'으로 금방 주의를 돌려 자신을 속여버린다. 즉, 주지화란 감정을 알려주는 '몸'에서 무감정 지대인 '지성'으로 주의를 돌리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다.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주지화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몸'을 편안한 상태로 유지하지 못한다. 평상시에 자세나 태도가 경직되어 있거나 소위 '로봇'처럼 뚝딱거리는 느낌이 든다면, 몸이 느끼는 감각을 사고로 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중일 수 있다.

무슨 일에든 별로 열정을 느끼지 못하고 늘 객관적이고자 애쓰는 사람, 아주 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주위에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를 움직이는 '감정'이라는 에너지를 충분히 사용하고 있지 못하게 되면 삶은 무미건조하게 되고 삶을 풍성하게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예측 불허한 감정을 무의식 중에 두려워하고 있어서 '생각(사고)'이라는 '무감정 지대'로 달아나버린다.


'사고' 방어기제를 만든 내면아이

'사고'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들 중에 '가짜로' 성숙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짜로' 성숙했다는 것은 '성숙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으로 자란 자아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들은 어리고 의존적이거나 감정에 휘둘리면 위험하다고 느끼게 만드는(부정적 감정에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가정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부모가 크게 성공한 사람이고 자기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르면 그 자녀는 보통의 어린아이처럼 두려움과 변덕스러운 감정을 겪으며 성장할 여유가 없다고 느낀다.


그런 (가짜로) 조숙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한 방황기를 거친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알몸으로 나타나는 꿈을 꾸기도 하고, 평소 자신이라면 절대 용납하지 않을만한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영화 속 캐릭터에 꽂힌다. 이는 그들이 가진 교양 있는 이미지가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드러낸다.


사고 방어기제
해체하기

방어기제는 직면을 하는 순간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작점이 된다.


자신이 '사고' 방어기제를 얼마자 자주 사용하고 있는지 자가질문들로 간단하게 확인해 보자.


Q. 혹시 자신의 지성을 높이 평가하거나 아주 유창한 말솜씨를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가?

Yes라면 (감정을 피해)'사고'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말솜씨로 자신의 부족함과 수치심을 가리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을 수 있다.

 

Q. 당신보다 지성이나 말솜씨가 떨어지는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한심하거나 무시하고픈 마음이 든다면 위 질문에 Yes를 하는 입장과 동일하다.


Q. 너무 흥분해서 말이나 생각을 똑바로 못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사고'를 통해 자신의 약점을 숨기는 데에 익숙할 수 있다.


Q. 당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누군가를 멍청하거나 미련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쓴 적이 있는가?

이제 그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입장이 되어보자. 그의 수치심이나 굴욕이 느껴진다면 당신이 피하려고 애쓰고 있는 감정이 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방어기제든 스스로 놓으면 오랜 시간 피해왔던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고 고통이 찾아온다. '합리화'를 통해 스스로에게 던져왔던 습관적인 선의의 거짓말을 마주해야 하고, '주지화'에 물든 자신의 성격을 재검토하면서 더 많이 느끼고 더 적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한 층 더 성숙하고 풍요롭게 흘러가게 될 것을 확신한다.


*Reference)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 조지프 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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