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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스 Jun 20. 2023

완벽해지고 싶은 욕망의 비밀

방어기제 4 : 수치심

엄마는 나에게 '2%가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딱 2%가 아쉽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완벽주의'가 되고 싶었고, '완벽주의'라는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을 선망해 왔다.


'완벽하다'는 사전적으로 결함이 없이 완전한 상태를 말한다. 나아가 자신이 맡은 일(task)을 흠 없이 처리하고자 하는 태도를 '완벽주의'라고 정의한다. 모든 분야의 프로들은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완벽주의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한 분야를 넘어서 '매사'에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완벽주의자(Perfectionist)’라고 부른다. 그리고 완벽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 완벽주의를 방어기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모든 일에 흠을 보이지 않는 완벽함을 '철저하게' 지향한다면, 그 (완벽함에 대한) 내적 동기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방어기제는 자신의 상처와 결핍을 감추기 위한 기작(mechanism)이다. 따라서 자신이 본래 완벽주의 성향이었다기보다는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완벽주의라는 탈을 쓰고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있을 수 있다.


혹시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잣대와 기준이 높은 편인가? 그리고 그 기준에 맞춰서 상대의 노력을 요구하거나 지적한 적이 있는가? 인간관계에서 상대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잘 보이는가? 모든 면에서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피드백을 종종 받는가?


만약 이 질문들 중에 해당되는 바가 있다면, 집중해서 이 글을 읽어보길 바란다.


완벽주의
팀장 A군의 고충


팀장 A군은 완벽주의자다.

사원으로 입사해서 팀장이 되기까지 제일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해 왔다. 그는 모든 일처리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 다른 동료들보다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다.


A군의 상사들은 성실한 그를 좋아한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A군은 상사의 부정적인 피드백에 유독 약하다. 가끔 그의 업무에 지적을 할 때면 마치 죄인이 된 것 마냥 기가 죽고 자책을 하곤 했다. A군의 성실함만 보면 더 높은 직책을 주고 싶지만, 이러한 소인배의 모습을 보면 승진을 밀어주기가 망설여진다.


A군의 동료들도 역시 일 잘하는 그를 좋아한다. 단, 그와 같은 프로젝트를 맡고 싶진 않다. A군은 자신뿐만 아니라 팀원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팀원들은 한 번도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할 수 있어', '파이팅!'과 같은 형식적인 말은 자주 하지만 자신의 노고를 인정받는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A군은 사내 인간관계도 완벽하게 이루고 싶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아 답답했다. 매일 회사에만 있으니 가족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다. 그럴수록 그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더 매진해 갔다.


치밀하게 수치심을 감추는 사람들
#완벽주의 #방어벽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일'을 통해 확인한다.

나아가 일의 성과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하지 않으면 마음에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자신의 '일'에 대한 평가에 따라 자존감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


지나친 완벽주의자들은 내면에 (원초적인) 수치심이 내재되어 있다(아래 자세히). 그래서 치밀하게 이를 숨기기 위해 이상적인 모습으로 포장한다. 마치 외모 콤플렉스를 화장과 옷으로 가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조금이라도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견디지 못한다. 철저히 감춰뒀던 수치심이 삐져나오기 때문이다.


수치심에 휘둘리는 사람은 대게 자기혐오가 강하다.

완벽하고 우월한 자아상을 만들어놓고 그 이상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를 잔인하게 공격한다. 이들은 오로지 두 가지 가능성밖에 상상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느끼는 열등한 패자, 그리고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완벽한 사람. 더 심각한 건 이들의 시선에서는 바깥세상에도 똑같이 두 부류의 사람밖에 없다. 승자와 패자. 사람은 자기 자신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타인과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기에, 지나친 완벽주의자들은 대체로 인간관계게 어려움을 겪는다. 어느 누가 자신의 부족함에만 집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을까.


물론 '일'은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성장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에 박차를 가했을 때 완벽주의도 빛을 발할 것이다.


'완벽주의' 방어기제를 만든 내면아이

우리 인간은 아주 연약한 상태로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도움 없이는 성장하지 못한다. 우리의 성장 과정은 육체적, 감정적 요구에 부모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우리는 마땅히 대응을 받을 거라는 자연스러운 기대를 품고 이 세상에 나온다.


부모가 그 기대에 맞게 양육을 하면 세상을 안전한 곳이라고 느끼고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감지한다. 이 경험이 자존감의 핵심을 이룬다. 하지만 부모의 대응이 예상(기대)과 완전히 빗나간다면, 아기는 뭔가가 아주 잘못됐다는 걸 감지하고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느낀다. 아기는 자신의 성장이 틀어졌다는 걸 직관적으로 안다. 학대받거나 트라우마가 생긴 아기는 자기 안의 아름다움이 아닌 내적 결함과 추함을 느끼고 집중한다. 이를 원초적 수치심이라 한다. 


어릴 적 경험하는 결핍이 클수록 피해의식과 원초적 수치심은 더욱더 깊어진다. 원초적인 수치심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방어기제에 의존한다. 이 중 하나가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이자, 완벽주의다.

스카이캐슬, 김주영 선생의 가스라이팅

완벽주의자들은 내면에 잔인한 권력자를 품고 산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괴롭다. 무자비하고 엄격하며 자유와 고유함을 억압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초자아(super-ego)라는 환상의 인물(완벽한 존재)처럼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그렇게 내면아이는 '존재'만으로 사랑받지 못하고 매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지나친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이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도 직면도 하지 않는다. 방어기제가 매우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 성격을 띤 완전한 자기 거부와 자기혐오는 수치심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이 된다.


완벽주의 방어기제
해체하기


완벽주의를 해체하고 싶다면 신념부터 바꿔야 한다.

바로,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완벽해 보여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염없이 모자를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완벽함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일 뿐이다. 자신이 완벽한 이상향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꺾어야 한다.


이어서 완벽주의 방어기제를 직면할 수 있는 자가질문들을 스스로 던져보자. 변화는 직면에서부터 시작된다.


Q. 세상에는 승자와 패자만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승자인가 패자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승리'의 정의는 무엇인가? 당신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Q. 남에게 경멸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그 사람의 어떤 특성이 그렇게 거슬렸는가?

동족혐오라는 말이 있듯,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경멸함을 느낀 상대를 통해 자신이 감춰왔던 본연의 모습을 마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Q. 마음속에서 무자비한 목소리가 들릴 때가 있는가? 그 목소리가 당신을 비난하는 내용을 모두 적어보라.

그 기대에 부응하는 당신이 어떤 모습의 사람일지 묘사해 보자. 흠 하나 없는 이상적인 사람인가?

아이가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날 때마다 때리는 부모가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나의 내면에도 이런 폭력적인 양육자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내면아이가 과연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을까?


내면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싶다면 가장 먼저 나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수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우선 자신의 특징과 성향에 대해 가치 평가를 하면 안 된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고 바라본다. 할 수 있다면 소리를 내어 '~한 내 모습 사랑스럽다'라고 말해보자.




오랜 시간이 지나 엄마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 딸이 삶을 살아보니 100% 란건 세상에 없었다고, 그리고 2% 부족해도 꽤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이다.


누구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하기 위해 방어기제에 의지하지만, 용감하게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방어기제에 도전장을 던지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이 글을 완독한 독자들이라면 이미 용감한 사람이다. 이렇게 한 걸음 더 '완벽'보다 '고유한 아름다움'에 더 가까워질 것을 응원한다.


*Reference )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 조지프 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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